2025-01-24 최민욱 기자
"진정한 가치소비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를 바꾸는 거예요." 관악구의 작은 제로웨이스트 숍 '1.5도씨'를 운영하는 이정연 대표의 말이다. 3여년 전 문을 연 이곳은 친환경 제품을 파는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플랫폼이 되었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 활동부터 지역아동센터 교육까지, 이 대표가 꿈꾸는 가치소비의 새로운 방향을 들어보았다.

환경 감수성이 이끈 새로운 도전
관악구 조원동의 소박한 골목, 수십 년 된 상점들 사이에서 독특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숍 '1.5도씨'다. 2년여 전 문을 연 이곳은 단순한 친환경 제품 판매점을 넘어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연남동이나 성수동처럼 '힙한' 동네가 아닌, 이곳 조원동을 선택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동네에서 힙한 매장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구수한 동네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이정연 대표의 말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변화시키고 싶은 진심이 담겨 있다. 강릉에서 태어나 해수면 침식과 산불, 홍수를 직접 겪으며 자란 이 대표는 일찍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탐앤탐스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던 경험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커피숍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을 보며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감염내과 의사인 언니의 전문적인 조언도 힘이 되었다. "언니가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죠. 평소에도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리필스테이션도 언니가 외국에서 보고 제안했죠. 외국엔 많은데 우리나라엔 왜 없을까 하면서요."

가치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

1.5도씨는 처음부터 특별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보다, 동네 단골 50명만 유치해도 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커피가 우리나라 문화로 자리 잡았듯이, 제로웨이스트도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했죠." 이는 단순한 사업 전략이 아닌, 진정성 있는 환경운동을 위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1.5도씨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때로는 무인으로 운영되기도 하고, 단골 고객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구매하기도 한다. "우리 매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돼요. CCTV가 있지만, 물건을 가져가더라도 '할인해서 준 셈 치지 뭐'라는 생각으로 운영합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 왔다. 매장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우울했던 이웃들이 이곳에서 위로를 받고, 커밍아웃을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부모님께도 못할 이야기를 여기서 털어 놓죠." 제자리를 찾아 방황하던 청년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기도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5도씨의 '메이트'이다. 매장을 자주 찾던 단골들이 1.5도씨에서 만나 형성된 관계로, 3년째 나눔 플리마켓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1.5도씨의 가장 큰 자랑거리죠."
진정한 가치소비의 의미를 찾아서
이 대표는 가치소비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 "가치소비는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에요. 개인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 먼저예요. 내 삶이 건강하지 않은데 환경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철학은 '1.5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슬로건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IPCC 보고서의 1.5도를 의미했지만, 지금은 '1인분에 0.5인분을 더해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자'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이 대표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그 과정을 SNS에 공유하면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의 롤모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품 선정에도 이러한 철학이 반영된다. "일회용이 되지 않는 물건, 환경 문제를 알릴 수 있는 물건을 우선으로 해요. 업사이클링 제품이나 국내산 천연 원료를 사용한 제품을 선호하죠. 완벽한 제로웨이스트는 있을 수 없어요. 대신 그 회사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노력하는지를 봅니다."
특히 남성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성들은 한번 좋다고 생각한 제품은 계속 써요. 피부나 탈모 같은 고민도 많은데, 진정성 있게 조언해 줄 곳이 그동안 없었대요. 저희는 제품을 직접 써보고 추천하니까 신뢰가 쌓인 것 같아요."
이미지 소비를 경계하다
현재 환경운동의 현주소에 대해 이 대표는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 "요즘 환경운동이 너무 이미지 소비화되고 있어요. 인플루언서들이 모여서 사진 찍고, 유명한 카페에서만 행사하고… 진정한 변화는 그렇게 오지 않아요."
"그린보트나 환경 강연회도 마찬가지예요. 최 박사님, 홍 박사님 강의는 공부하기에 좋죠. 하지만 그건 결국 공부일 뿐이에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려 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유명 인사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더 영향력 있을 텐데 말이죠."
특히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현실적인 한계도 지적했다. "4인 가구가 제로웨이스트 숍만으로 생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1~2인 가구 정도가 실천할 수 있는 구조죠. 대형 세제통을 들고 다니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는 실천 방법을 찾아야 해요."
지역사회에서 시작되는 변화
이 대표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경제행정환경분과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환경 문제는 결국 정책 안으로 들어가 풀어내야 해요. 하지만 지금은 관심 있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자기 먹고살기 바빠서죠."
현재 주민참여예산 심사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모여서 14억, 15억의 예산을 1시간 만에 심사해요. 2025년도 사업 40개를 제대로 검토도 못하고 결정하는 거죠. 이러니 청소년, 청년을 위한 사업은 다 밀려나고 노인 위주의 사업만 통과돼요."
특히 청년들의 참여 부족을 안타까워했다. "청년들은 직장 때문에 낮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어렵죠. 그러면 청년을 위한 지원책을 주민참여예산으로 제안하면 됩니다. 회사에서 주민참여예산 위원 활동을 인정해 주는 제도를 만들자고 제안할 수도 있어요. 불만만 털어 놓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요."
함께 꿈꾸는 미래

1.5도씨는 이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마을 안에서 환경에 관심 있는 분들을 모아 정책과 예산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개개인이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미 작은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3년째 미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매장을 통해 만난 메이트들과 다양한 환경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특히 관악구 민간협치 사업으로 '탄소중립 2050'을 4년째 이어가고 있는 것은 큰 자부심이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나와 주변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가치소비는 물건을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우리 동네에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한두 해 살 동네라고 무관심하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발전하지 못할 거예요. 혼자 바꾸는 것보다 함께 바꾸는 것이 더 큰 힘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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