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답하다 | 신동빈 | 심리상담가 | 기후 불안 속 ‘창조적 무망감’이란
- Theodore
- 6월 13일
- 5분 분량
2025-06-12 최민욱 기자
임상심리 전문가 신동빈은 마포구에서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환경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는 그에게 기후변화는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매년 여름과 겨울의 온도 편차가 커지고 에어컨을 켜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변화를 몸으로 체감하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이미 넘어섰다"는 기사들과 환경론자의 분신자살 소식 같은 극단적 뉴스들로 인한 막연한 공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재활용 분리수거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종이팩을 전용 회수기계에 넣어 소액이나마 환급받는다. 햇반 용기도 플라스틱으로 버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고 전용 반납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정수기를 설치할 수 없어 '깊은 물' 같은 종이팩 생수를 구매하고, 음식물 미생물 쓰레기 처리기도 사용한다. ‘음쓰처리기’를 구입할 때는 몰랐는데 지자체에서 50%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친환경 실천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이 있어도 홍보가 부족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개인적 실천은 되도록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가지 포기하기 어려운 게 있다면, 고기. 특히 소고기를 좋아해서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환경을 위해서는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무해런에서 목격한 '쓰레기 없는 마라톤'의 충격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개인 실천이 의미가 있을까, 이미 늦은 거 아닌가 생각하던 중 플래닛03의 기후국가 10대 과제 특별 기획에서 희망적인 사례들을 발견했다. 특히 문태훈의 "국가와 돈" 인터뷰에서 다룬 올림픽의 환경 파괴 문제가 와닿았다. 몇 달 전 동행자와 함께 참가한 '무해런'이라는 마라톤 대회 경험 때문이다.
전혀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쓰레기가 없는 마라톤을 목격했다. 기존 마라톤에서는 일회용 컵, 스펀지, 그리고 특히 시작 지점에서 착용했다가 바닥에 버리는 비닐 우비들이 너무나 많았다. 소수 참가자 규모에서도 이런 친환경 운영이 가능하다면, 올림픽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게 됐다.
이준희 교수의 인터뷰도 인상 깊었다. 기후 대응 기술들이 이미 많이 개발되어 있는데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그리고 "지금부터 충분히 돌이킬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꽤 절망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AI 그린모아모아, 15원의 마법이 만든 변화
무해런에서 본 가능성이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은평구의 자원회수 정책으로 설치된 'AI 모아모아'라는 재활용품 회수기계다. 종이팩 하나에 15원, 하루 최대 500원까지 받을 수 있다. 돈은 정말 얼마 안 되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참여한다. 반년 동안 3천 원을 벌었다.
인터뷰 전일에도 AI그린모아모아를 이용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신동빈
기계의 작동 방식 자체가 재미있다. 재활용품을 넣으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개수와 금액이 화면에 표시된다. 센터에서 마신 페트병이나 종이팩을 집에 가져와서 일부러 이 기계에 넣기도 한다. 돈을 받으니까 재미있다. 완전한 토큰 경제 시스템이다.
아쉬운 점은 하루 500원 제한이다. 700원이 나올 때도 있는데 200원은 받지 못한다. 이 제한을 천 원 정도까지는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많으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만들어서 가져올 수도 있지만, 현재 제한은 너무 낮다.
플로깅 퀘스트, 쓰봉과 바디캠으로 만드는 실전 환경 게임
AI그린모아모아의 성공을 보면서 더 발전된 아이디어를 상상해 봤다. 주민센터에서 바디캠과 봉투를 받아서 플로깅을 하고, 수거한 쓰레기 무게에 따라 리워드를 주는 '플로깅 퀘스트' 시스템이다. 바디캠이 있으니까 부정한 방법을 쓸 수도 없고, 실제로 플로깅을 했는지 추적이 가능하다.
길거리 쓰레기를 주워서 넣으면 돈을 주는 시스템도 있으면 좋겠다. 직원을 한 명 배치하면 고용 창출 효과도 있다. 어렸을 때 장난으로 생각해 본 아이디어지만, 10미터마다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관리자를 두면 일자리도 창출되고 쓰레기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올해 '쓰레기왕'이나 '쓰줍왕' 같은 타이틀을 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과열되면 쓰레기를 만들어서 가져올 수 있다는 문제가 있지만, 바디캠으로 해결할 수 있다. AI 기술이 발달한 지금 영상 확인도 쉬워졌다.
당위보다 유인책, 심리학이 알려 주는 행동 변화의 비밀
이런 게이미피케이션 아이디어들이 단순한 상상이 아닌 이유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타당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유인책을 줘야 행동 변화가 일어난다. 넛지(nudge) 효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탄소 감축 실천이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당위만 강조해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옳은 것은 누구나 알지만 하기 어려우니까 하지 않는 것이다.
AI 모아모아 정도의 소액 보상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것은 중요한 발견이다. 금액의 크기보다는 성취감과 재미가 더 중요하다. 애플워치의 러닝 앱에서 배지를 얻으려고 달리는 것처럼, 실질적인 금전적 가치가 없어도 사람들은 참여한다. 달리기를 할 때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집에 돌아오곤 한다.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벌금 중심 정책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정부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다닌다. 분리수거가 조금 잘못된 쓰레기 봉투 찾아내 배출한 사람에게 10만 원, 20만 원씩 벌금을 물리는 것을 보았다. 분리수거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긴 커녕 반감을 산다. 처벌보다는 보상이 지속가능한 행동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심리학의 기본 원리다.
임상심리 전문가 보는 개인 실천의 딜레마
이런 게이미피케이션 접근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환경 실천에서 개인과 제도 사이의 딜레마 때문이다. 탄소 감축 주민 참여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한편에서는 이것이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기업이나 정부가 가장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데 주민 참여를 강조하면 "개인의 잘못"으로 책임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심리 상담 현장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답이 명확해진다. 당연히 제도권에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이 힘든 것이 맞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힘든 사람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개인 치료와 사회적 변화가 모두 필요한 것처럼, 개인 실천과 제도 개선도 둘 다 필요하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주민을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말이 안 된다. 물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안 되지만, 진정한 협력을 위해서는 제도권에서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현재처럼 벌금 위주의 강압적 정책보다는 보상과 재미를 통한 자발적 참여 유도가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보여 준 지방분권의 가능성
이런 시민 참여를 뒷받침할 정책적 변화도 필요하다. 새 정부에 바라는 정책으로는 지방분권이 핵심이다.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옮기는 결정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해당 부처 직원들은 싫어한다고 들었지만,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 간의 공평한 분담이 필요하다. 변전탑이 있는 지역에는 전기료를 감면해 주고, 에너지 생산 시설과 가까울수록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정책이 현실적이다. 서울로 에너지를 보내는 자원을 만드는 곳에서 그 비용들을 감면해 줘야 한다. 공평하고 합리적인 접근이다.
이명박 정부가 끊어버린 남북 환경 협력의 복원
환경 문제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협력이 필요하다. 플래닛03 기획에서 남북 관계 관련 기사도 흥미로웠다. 이명박 정부 직전까지는 북한과 환경 관련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자마자 단절됐지만, 북한도 신기하게 독자적으로 환경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환경 관련 회의에서 북한 측이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해 와서 깊이 있는 논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환경을 생각할 때 남북 교류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G7 참여 등으로 회복된 국제적 위상을 기후 문제 해결에 잘 활용해야 한다.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
이런 다양한 관점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플래닛03의 특별 기획 덕분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네이버 메인 헤드라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요즘 기후변화 관련 기사가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확실히 체감한다. 환경 전문 매체를 구체적으로 찾아보지는 않지만, 헤드라인에 있는 기사들은 거의 다 읽는 편이다. 플래닛03 같은 환경 전문 매체의 출현은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요즘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많아진 상황에서 이런 대안 언론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정말 순수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매체들이 필요하다.
이번 특집 기획 기사의 가장 큰 강점은 인터뷰가 가공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구나"라는 생생함이 있다. 가공되지 않아서 다른 기사들보다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더 날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의미 있게 읽혔다. 다만 환경에 관심 없는 일반인이나 긴 글을 잘 읽지 않는 요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 앞으로는 이론가나 지식인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정말 뛰고 있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창조적 무망감, 바닥을 차고 올라오는 용기
심리학에서 '창조적 무망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현실의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물에 빠졌을 때 바닥을 차고 올라와야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후우울처럼 기후 문제가 막막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지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환상적 희망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생각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게 현실이야, 그럼 죽을 거야"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 살아야 되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이것이 실존이고 실전이다. 절망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가능한 행동을 찾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망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다. 특히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재미있는 환경 실천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 벌금보다는 보상, 당위보다는 재미를 통해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지속가능한 변화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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