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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ㅣ지구법, 인간 중심 세계관에서 지구 중심 세계관으로

 

황희정 기자 2024-05-30


사진: 1972년 시에라클럽 사건의 중심지였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미네랄 킹 계곡, 출처: 시에라클럽 공식 홈페이지


자연도 소송을 할 수 있고, 환경단체는 자연물의 법적 후견인이 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 윌리엄 O. 더글러스 대법관이 1972년 시에라클럽 사건에서 주장한 소수의견이 지구법의 선례로 일컬어진다. 시에라클럽 사건은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세쿼이아 국유림지에 있는 미네랄 킹 계곡에, 스키장을 건설하려는 월트디즈니사의 개발계획승인처분에 대한 위법성을 다투는 데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이 원고적격인지가 쟁점이 된 일이다. 그때 더글러스 대법관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법학과 교수인 크리스토퍼 스톤의 의견서를 근거로 자연물도 원고적격을 가지며, 환경단체가 자연물의 법적 후견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톤 교수는 법적 권리 인정 요건에 기반해 자연물도 마찬가지로 후견인이나 보호자 또는 수탁자를 지정해 행위할 수 있으며,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이익을 가지며 그 침해를 인식할 수 있고, 자연물을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 드는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스톤 교수의 주장에 깊이 동감한 사람이 바로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다.


산에는 산의 권리, 나무에는 나무의 권리가 있다


신부이자 생태학자였던 토마스 베리는 2001년 '지구법(Earth Jurisprudence)' 개념을 제창했다. 베리는 저서 『위대한 과업』에서 “현재의 법 체계는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다룰 수 없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구의 지질학적 구성 요소와 생물학적 요소에도 각각의 적절한 존재 양식과 기능적 역할을 고려한 법적 권리를 제공하는 법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베리가 말하는 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인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연적 실체도 지구 공동체 역할을 실현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기본 권리는 “자연체계 안에서 구성 요소들이 자신들의 기능과 역할을 실현할 수 있는 서식지와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그는 2001년 회의에서 ‘지구법학의 열 가지 원리’를 발표했는데 그 중에 핵심 요소는 ‘존재할 권리’, ‘서식할 권리’, ‘지구의 진화에 참가할 권리’다. 이 3개의 명제는 전 세계의 '자연의 권리론'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강에는 강의 권리, 산에는 산의 권리, 곤충에게는 곤충의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지구 중심적 세계관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법은 인간 중심적인 법이다. 이 근대법과 지구법의 가장 큰 차이는 인간의 역할과 자세다. 지구법에서 인간은 ‘지배자’가 아닌 ‘대변자’이며, ‘인간중심주의자’에서 ‘지구중심주의자’로 변모한다. 지구법에서 주체는 인간과 법인 뿐만이 아니라 자연까지 포함한다. 국가의 안보가 아닌 지구의 안보가 중심이 되고 민주주의가 아닌 생명주의가, 국가연합이 아닌 종의 연합이, 세계평화가 아닌 지구평화가 핵심이 되는 법이다. 이러한 시점은 통합적, 전체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흐름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사례는 2006년 미국 지방조례가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 타마쿠아 자치구에서 폐광의 유독 폐기물이 강과 지하 대수층에 유출되어 오염되었는데, 갱도가 탄광 회사의 사유지라 오염을 막을 법적 권리가 없었던 일이 있었다. 이에 지역 공동체가 “생태계는 규정을 집행할 목적에 한해 ‘사람’으로 보며 자치구와 거주자들은 자연공동체와 생태계를 대변할 원고적격을 갖는다.”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2017년 뉴질랜드 의회는 세계 최초로 구체적 자연물(왕거누이 강)에 권리를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2017년, 인도 우타라칸드 주 고등법원은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의 법적 권리를 인정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강고트리 빙하, 야무노트리 빙하에도 법인격을 인정했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2004년 천성산 터널공사에 반대하는 ‘도룡뇽 소송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 현행법에는 자연물에 당사자 적격을 부여하는 법이 없어 자연의 권리가 인정된 바가 없다.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오직 인간만을 위한 법 체계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박태현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지구법은 특정한 개별 법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접근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법률가가 보기에 인간 중심적인 법이 변하지 않으면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부언했다. 정혜진 변호사는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서 있는 지금, 지구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며 지구법은 지구를 위한 권리장전”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부터 법조인을 대상으로 지구법 강좌를 진행해 온 ‘사단법인 선’은 지구법 강좌를 시작한 초기에는 20명에 불과했던 참가 인원이 최근 3년간 300명이 넘을 정도로 지구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지구를 위한 변론』의 저자이자 사단법인 선의 강금실 이사장은 말한다. 오직 인간 만을 위한 법 체계는 이제 현실적이지 않다고.


사진 출처:

참조:

토마스 베리,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 대화문화아카데미, 2009

강금실, 『지구를 위한 변론』, 김영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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