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국가의 기후기술 | 식량 위기와 농업 정책 | 김현권 |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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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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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6월 20일
2025-06-19 김성희 기자
농업은 더 이상 식량만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며, 이제는 산업과 에너지, 외교를 연결하는 전략 자산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농촌 태양광은 농업의 구조를 바꾸는 현실적 해법이며, 식량 위기 시대의 해답은 ‘쌀을 매개로 한 국제 협력’에서 찾아야 한다.

김현권 전 국회의원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의성농민회 사무국장, 의성한우협회장 등을 맡으며 농민운동에 헌신했고, 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로도 활동했다.2016년 제20대 국회의원(비례대표)으로 당선되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대외협력위원장, TK특별위원장, 문재인 후보 농어민선대위 상임위원장 등으로 농정 정책 기획에 참여했다. 의정활동 중 ‘AI 및 구제역 특별위원회’ 간사, ‘국회 농업과 행복한 미래’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지속가능한 농어촌 발전을 위한 입법과 방역 시스템 개선에 힘썼다.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법률소비자연맹 등에서 헌정대상과 국리민복상 등을 수상했으며, 2021년부터는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초대 원장으로 활동, 국회의장 직속 기후위기비상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김현권의 마음모으기』(2011), 논문으로는 「한국의 정예농업인력 육성방안에 관한 연구」(2008)가 있다.
RE100은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일자리의 문제
처음 RE100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것을 단순한 환경 이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RE100은 산업과 일자리의 문제였고, 대한민국 경제 구조의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이 체결된 직후, 국내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급격히 줄이기 시작하는 현장을 목도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설비 기반 산업에 강점을 가진 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 기지의 공동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 현상의 이면에는 분명한 구조적 원인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 속도는 기업들의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기업들은 RE100이라는 글로벌 기준에 부응해야 했고, 그것을 충족할 수 없는 국내 환경을 외면한 채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RE100은 환경을 넘어서 우리 경제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였다.
쌀 위기가 보여 준 구조 개혁의 시급성
최근 일본에서 발생한 쌀 파동 사태를 보며 다시금 식량 위기의 파급력을 실감케 한다. 이 위기가 쉽게 진정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자체의 취약성 때문이다. 식량 문제는 위기가 터지고 나면 해결이 어려운 분야이다. 모든 국민이 피해자이자 동시에 위기를 가속하는 소비자라는 점에서, 사전에 방지해야 할 분야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농업 구조가 일본과 매우 유사하다는 데 있다. 고령 농의 비율, 영세한 농지 규모, 약한 산업적 기반처럼 일본의 위기를 그대로 따라갈 수 있는 조건을 우리는 이미 갖추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가당 경작 면적은 평균 1.5헥타르에 불과하며, 일본도 평균 3헥타르 수준으로 비슷하다.
반면 프랑스는 농가당 평균 5헥타르다. 이런 차이는 위기 대응 능력의 차이로 이어지며, 규모화되지 않은 농업은 기본적으로 산업적 복원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농업의 구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구조 개혁이 작동하기 위해선 농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수입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에너지’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에너지는 농가 소득을 회복시킬 현실적 해법
식량을 생산하는 것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은 모두 태양으로부터 비롯되므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엽록소를 통해 작물이 자라듯, 태양광 패널을 통해 전기가 만들어진다. 결국, 둘 다 태양 에너지를 변환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태양광을 ‘비농업적 요소’로 분리해서 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전기 에너지 생산은 농업의 확장된 기능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농업은 더 이상 ‘땅에서 식량만 생산하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프랑스는 이미 이런 사고의 전환을 실현한 국가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태양광 전기 생산을 영농의 영역으로 포함했다. 에너지 생산이 농업의 일부로, 그리고 법률적으로도 명시되자, 농업 계획 자체가 달라졌다. 농업이 갖는 기능과 가치가 확장되었고, 그에 따른 소득도 변화의 원천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농지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는 것을 단순한 개발 행위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농업의 진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개념의 전환 없이 농업의 구조 개혁은 반쪽 짜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소득 없는 구조 개혁은 저항만 남긴다.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동력은 소득이며, 이제 ‘식량 외의 농업 소득’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에너지가 농업 구조 개혁의 핵심 열쇠이자, 농가 소득을 회복시킬 현실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농업 태양광 확산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해
축산 농가들을 보면 이제 “사료는 하늘에서 내려온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태양광 패널을 지붕에 설치하고 난 뒤, 거기서 발생하는 전기 수익으로 사룟값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축산 농가에서 사료비는 전체 생산비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고정 비용을 태양광 수익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겪은 농민들이 이제는 먼저 설치를 고려하고, 서로 정보를 묻는다.
실제로, 직접 15kW와 20kW 규모의 태양광 설비 두 가지를 시도해 보았고, 전력 선로가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설치가 가능한지, 어떤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직접 부딪혀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농업 현장에 태양광을 도입하는 데 있어, 나는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과도한 규제다. 이격 거리 기준처럼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하거나,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규제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행정의 번거로움이다. 예컨대, 축사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 해도 ‘개발행위 허가’를 새로 받아야 한다. 이미 다 지어진 시설물인데도 또다시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또한, 농민 스스로 이 복잡한 절차를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전문 사업자에게 모든 과정을 맡길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신뢰할 만한 사업자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광은 최소 20년 이상 장기 운영이 전제되는 설비다. 그런 사업자를 지역에서 만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셋째는 전력 인프라의 부족이다. 특히 농촌 지역은 전력 선로가 제대로 깔려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설치한다 해도, 발전된 전기를 내보낼 선로가 없으니, 실질적으로는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나는 이 세 가지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농업 태양광은 폭발적인 확산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농민은 준비됐다, 이제 정책이 길을 열어야 한다
보급과 확산을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현실적인 수익이 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기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책이 해야 할 일은 그 욕망의 흐름을 틔워 주는 일이다. 그 첫 단추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구조적 장애물을 걷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문제는 전문가가 해결할 것이며,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총량을 확보하는 일이다. 태양광의 효율은 점점 높아지고, 설치 기술도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제도다. 총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기업도, 농민도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그 총량 확보의 가장 빠른 해답이 농업이다. 현재의 농업 현장은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그러니 정책을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농민의 원하는 니즈를 파악하여 막히지 않도록 길을 터주는 일이 필요하다.
쌀 중심의 국제 협력 체계가 필요한 이유
식량 문제는 개인이 혼자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국가 간 고립이 아니라 상호 의존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겹지는 오늘, 식량은 단지 국내 농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외교 전략이자 국제 협력의 열쇠로 다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달러 스와프는 익숙하게 말하면서도 ‘식량 스와프’는 상상하지 못한다. 기축통화가 중요한 것처럼, 기초 식량 역시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는 달러보다 더 절박한 것이 쌀일 수 있다. 쌀을 중심으로 한 상호 신뢰 체계, 교환 네트워크, 협정 기반의 외교 전략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식량 스와핑 체계는 단순히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책이 아니라, 평시부터 작동해야 하는 관계다. 위기 대응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 않다. 사전에 관계를 쌓고, 신뢰를 축적하며, 교환의 흐름을 정례화해야 비로소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쌀을 주곡으로 하는 국가 간 ‘식량 동맹’ 구상은 그래서 현실적이다. 외교의 새로운 의제이자, 식량 자산을 활용한 장기적 연대 전략으로 주목받아야 한다.
농업은 단지 국내 문제도, 환경 문제만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생존 기반이자, 국제 협력의 열쇠이기도 하다. 식량 위기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함께 풀어야 한다.
OECD 국가중 대한민국과 일본 만이 농업강국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 농업을 계속 방치하면 일본처럼 언제든지 쌀값 파동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