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적도 인근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전 세계는 3년 동안 대기근을 겪었다. 조선 사회도 그 영향으로 흉년이 들었고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기후변화는 지배층의 무능으로 쌓인 백성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로 역할해 왔다. 지난 겨울 윤석열의 폭거와 시민들의 분노를 기후변화로 다짜고짜 다뤄 본다.
2025-2-27 김우성
[편집자 주]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기후변화는 직관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문제들이 과연 기후변화 때문인지 알 수 있다면 조금 더 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다짜고짜 기후’에서는 요즘 핫한 주제들에 ‘다짜고짜’ 기후변화를 끼얹어 보고자 합니다. 일부 논리적 비약과 심각한 궤변이 포함될 수 있으며, 흥미를 위한 무리수가 가미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써보겠습니다.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여러분!”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시당 청년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시당의 청년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윤석열의 겨울이 깨지고, 이제 봄을 기다립니다
“3년은 너무 길다.” 우리는 윤석열의 겨울을 깨기 위해 함께 싸웠고, 이제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길 위에서 겨울을 맞았습니다. 함께 떨었고, 함께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겹의 두꺼운 겨울 옷, 장갑과 모자, 핫팩, 어묵 국물로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먼 곳의 시민들은 난방버스로, 푸드트럭과 배달음식으로, 기부와 선결제로 연대의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눈 내리는 밤을 견뎌낸 키세스 시위대는 우주전사의 칭호를 부여받았고,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을 세계에 전했습니다. 우리는 윤석열의 겨울을 견뎌냈습니다.

지난 겨울 한반도의 기후변화는 시민의 편이었습니다
예전 한반도의 겨울은 훨씬 추웠습니다. 300년 전에는 겨울마다 한강이 얼어붙었고, 사람들은 걸어서 한강을 건넜습니다. 얼어붙은 한강을 잘라 내 동빙고와 서빙고에 넣어 두고 그 얼음을 일 년 내내 꺼내 썼습니다. 그것이 한반도의 겨울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우리는 200년이 넘는 동안 땅속에서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를 꺼내 썼습니다. 화석연료에서 열과 에너지를 얻고 남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오랜 시간 대기 중에 켜켜이 쌓인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를 천천히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겨울은 한강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춥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겨울은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춥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따뜻해진 겨울을 뚫고 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지난 겨울 한반도의 기후변화는 시민의 편이었습니다.


1809년 거대 화산의 폭발, 그리고 홍경래의 난
기후변화는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 서북지방에서 홍경래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홍경래의 난은 1811년부터 1812년까지 평안도 지역에서 홍경래와 우군칙 등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규모 민중 항쟁입니다. 학자들은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 잦은 전쟁으로 낙후된 서북지방에 대한 오랜 차별 등 오래 누적된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조금 더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1809년부터 1811년까지 3년간 이어진 대기근을 꼽기도 합니다. 대기근은 단순한 농업 실패나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가 원인이었습니다.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시기 대기근의 원인으로 화산폭발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1809년에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대기 중으로 방출된 이산화황(SO₂)이 수증기와 결합하면서 황산염 에어로졸을 만들었습니다. 이 에어로졸은 햇빛을 차단해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렸고, 한반도를 포함한 북반구 전역에 이상 저온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기후변화는 곡물 생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흉년은 3년간 계속되었습니다.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고, 국가의 전조세 수입도 급락해 조선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세도정치의 부정부패, 삼정의 문란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이미 팽배한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근은 민중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빈곤이 아닌, 절망적인 생존 위기 속에서 촉발된 사회적 대격변이었습니다.
2023년 여름 폭우, 해병대원 사망, 정부의 대처 무능
기후변화로 인한 일상의 붕괴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조선시대의 이야기일까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전국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2023년 여름의 폭우를 기억합니다. 7월 15일 충청북도 청주시 궁평2지하차도에서는 미호강 범람으로 지하차도가 급격히 침수되어 차량 17대가 물에 잠기고, 이로 인해 1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안타까운 사고 현장을 온 국민이 지켜봐야 했습니다. 같은 시기, 전국적으로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하천 범람, 도로 및 주택 침수 등의 재해가 잇따랐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은 7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실종자 수색 중 갑자기 지반이 내려앉아 해병대원 3명이 물에 빠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종된 해병대원 1명은 결국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해병대원 사망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사 외압 논란을 통해 윤석열과 국민의 힘은 법과 원칙을 수호하는 보수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어떤 처벌도 받지도 않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도 않았습니다.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와 여당의 무능을 보며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목도했습니다. 시민들은 불안해 했고, 누적된 분노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후퇴하는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과 에너지 수급 정책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후퇴했습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 중 산업부문의 감축 목표를 3.1% 완화하면서 약 800만톤의 추가 배출을 허용했습니다.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으나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원자력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 추진도 문제입니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 제품을 주문할 때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재생에너지 공급목표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기업들은 반도체 업황 부진에 더해 재생에너지 수급 문제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구조 위에 쌓인 시민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 기후변화
홍경래의 난부터 지난 여름의 폭우까지 기후변화는 부조리한 사회구조 위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윤석열에게 이미 늦어버린 충고를 전합니다. ‘그러게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좀 듣지 그랬어.’ 이게 다 기후변화 탓이기도 하고, 기후변화 덕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혁신이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기를, 다시 추운 겨울을 만날 수 있기를, 그럼에도 소시민들이 추위에 떨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모순적인 소망들이 뒤섞여 있더라도 우리는 답을 찾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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