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김우성의 생태포럼 | 산불이 만드는 숲(상)  

 

2024-12-26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내는 소음과 진동에 사무실 창틀이 떨립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산불 진화 헬기가 사무실 앞 강에서 물을 긷고 있습니다. 헬기는 산불이 꺼질때까지 여러 차례 강을 오가며 물을 나릅니다. 2024년 12월 12일 낮 울주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야 2만m2을 태우고, 3시간 30분만에 진화됐습니다. 등산객의 실수로 인한 산불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불의 29%는 입산자 실화, 22%는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시기적으로는 대부분 2월에서 5월 사이 봄에 발생하는데, 피해면적의 95%, 피해 건수의 57%가 봄철 산불이라고 합니다. 지난 2022년 봄, 우리는 울진 삼척 산불로 20,923ha의 숲을, 강릉 동해 산불로 4,015ha의 숲을 잃었습니다. 서울시의 면적이 60,525ha이니, 서울시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이 불타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산불로 너무 많은 숲을 잃었습니다. 많은 집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동식물이 죽거나 서식지를 잃었습니다. 산불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2005년 4월 양양 산불로 973ha의 숲이 불타고 낙산사가 전소되었습니다.

우리는 산불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불가능합니다. 산불은 우리가 알고있는 것 보다 훨씬 오래된 자연 현상입니다. 산불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길고 오래됐습니다. 산불의 역사는 지구 표면에 번성한 식물들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한 4억 2천만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인류가 존재하기 전에도 번개를 비롯한 여러가지 자연스러운 현상들에 의해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그 옛날에도 산불은 지금처럼 숲의 구조를 바꾸고,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생태계 순환의 일부였습니다. 먼 미래에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지고 아득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산불은 사라지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불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산불은 지형과 기상, 연료의 영향을 받습니다. 산의 지형은 대체로 험준하고 복잡하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임도가 있다면 산불 현장에 진화작업을 위한 차량과 인력이 접근할 수 있겠으나, 임도가 설치된 숲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임도밀도는 3.66m/ha에 불과하며, 이는 독일의 46, 일본의 13, 캐나다의 12.8, 미국의 9.5에 비해 극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헬기를 제외하고 현장 접근이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상조건 또한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전지구적 기후변화의 흐름 속에서 숲은 덥고 건조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큰 산불이 난 강원 영동 지방은 매년 봄철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발생하는 푄현상으로 인해 극도로 고온건조한 바람이 붑니다. 이 바람은 영동지방의 소나무 숲을 바짝 말려 언제든 불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를 수 있는 땔감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바람은 건조할 뿐 아니라 지형의 영향으로 속도까지 매우 빨라 불씨를 순식간에 먼 곳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산불 대형화의 주된 원인이 됩니다. 산불의 연료도 잔뜩 준비돼 있습니다. 강원영동지방 숲의 대부분은 소나무 숲입니다. 소나무는 침엽수로서 불에 타기 쉬운 송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활엽수에 비해 산불에 취약한 종입니다. 소나무 숲은 매년 봄 송진을 가득 머금고 바짝 마른 상태로 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형과 기상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운 좋게 진화가 용이한 곳에서 불이 시작되거나, 때마침 비가 내리는 행운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연료가 되는 숲의 일부 정도만 통제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더 커지고 잦아질 가능성이 있는 산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숲의 구조와 수종구성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지만, 숲의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동해안의 소나무숲은 반복적으로 산불 피해를 입어왔습니다. 우리는 소나무와 이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산불을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산불조심 기간에는 등산객의 화기와 인화물질 반입을 금지하거나 아예 입산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산불 위험 지역에서 불법적인 소각행위 또한 금지됩니다. 드론을 이용한 원격탐사나 무인카메라를 이용한 감시 등 ICT 분야의 최신 기술을 이용해 산불 감시와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초기 단계에 신속하게 산불을 진화할 수 있도록 장비와 인력을 준비하고, 주기적으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시행합니다. 문화재와 주요 시설, 시민의 안전을 위한 산불 안전 공간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발생한 산불은 빠르게 진화하기 위해 산림청과 지자체, 주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합니다. 산불이 꺼진 이후에는 철저한 원인 분석을 통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합니다.

산불진화용 헬리콥터는 핵심장비입니다.

다양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산불을 통제하는 것은 거대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2021년 러시아에서는 약 1,800만ha의 숲이, 2023년 캐나다에서는 약 1,300만ha의 숲이 산불로 사라졌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면적이 1천만ha 정도입니다. 타이가 숲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산불피해를 입고있는 생태계입니다. 산불 피해는 타이가 숲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호주에서는 2019년에 시작된 산불이 2020년 까지 이어지면서 약 1천만ha의 숲이 불타 사라졌습니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우는 아마존의 숲 또한 2023년 한 해 동안 약 530만ha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전 지구적 규모의 기후변화로 인해 덥고 건조해진 생태계에서는 더 대형화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숲은 아주 복잡한 생태계입니다. 산불이 진행되는 방식도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사가 급한 곳, 평평한 곳, 계곡이 있는 곳에서 산불의 진행 양상은 전혀 달라집니다. 대개 산불은 경사가 가파를수록 더 빠르게 확산됩니다. 불꽃의 열기는 위로 상승하기 때문에 불은 경사면 위쪽으로 번집니다. 경사면 아래는 상대적으로 산불의 피해를 적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사가 완만할 경우 산불의 확산 속도가 느려지지만 바람의 세기와 방향, 숲을 이루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양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면의 방향이나 바람의 방향 또한 중요합니다. 북반구를 기준으로 남사면은 북사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뜨겁고 건조하며, 산불에 취약합니다. 우리나라의 동해안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의 경우 또한 산악지형으로 인한 급경사와 봄철의 건조한 편서풍과 같이 지형과 기상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이외에도 계절과 날씨, 하천의 유무, 숲에 자라고 있는 식물의 종류나 크기, 나이 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이 산불의 양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껍질이 얇은 어린 소나무는 산불에 타죽지만 두꺼운 껍질을 가진 늙은 소나무는 산불을 견디기도 합니다. 숲의 바닥에 키작은 나무가 없는 숲은 약한 산불이 났을 때 낙엽만 타고 키큰 나무까지 불이 옮겨붙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운이 나쁘면 숲의 바닥에 자라는 키 작은 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키 큰나무까지 불타게 할수도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키 작은 나무가 머금은 수분이 산불의 진행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종의 나무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숲이라도 계절, 경사, 바람의 세기나 방향, 그 외 여러가지 확률적 요소들에 의해 산불의 양상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복잡한 숲에서 발생하는 산불의 양상은 필연적으로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야생의 불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나무의 밑둥이 산불에 그을렸지만,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산불이 지나간 숲은 어떤 모습일까요? 산불의 양상이 복잡한 것처럼 산불이 지나간 이후 숲의 모습도 제각각입니다. 산불은 모든 숲을 균일하게 태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더기나 모자이크처럼 불탄 양상은 여기저기 제각각입니다. 능선은 불탔지만 계곡쪽은 불타지 않았다거나, 어린 나무들은 타죽었지만 키가 크고 껍질이 두꺼운 나무는 살아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산불의 열기를 담은 바람을 받은 사면은 불탔지만 반대쪽 사면은 불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산불이 약하고 빠르게 지나간 지역은 식물의 뿌리나 숲 바닥의 씨앗이 살아남아 자연스럽게 복원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오랫동안 뜨겁게 불탄 지역은 씨앗과 뿌리가 모두 잿더미로 변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산불이 났지만 계곡에 가까이 뿌리내린 나무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산불은 숲의 토양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숲 바닥의 낙엽과 가지가 불타고 남은 재는 입자가 고운데다 물을 튕겨내는 성질을 가집니다. 숲의 바닥에 재가 쌓이면 물이 스며들지 않는 코팅같은 불투수층이 만들어집니다. 산불 이후 불투수층이 생긴 지역에 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토양 표면 위로 흐릅니다. 빗물이 토양 표면을 따라 흐르면서 토양 표면에 지속적으로 침식이 발생합니다. 소중한 토양을 잃어버린 숲은 이후 복원 과정에서 새로운 어려움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산불이 난 이후 검게 탄 토양 표면이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 산불 피해지역의 토양은 그늘지고 축축한 보통의 숲 바닥보다 훨씬 뜨겁고 건조해집니다. 산불 이후 변해버린 토양 환경에서는 산불 이전에 살던 동식물과 미생물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산불이 만드는 숲은 산불 이전의 숲과는 다릅니다. 

검은 재가 쌓인 땅에는 불투수층이 만들어지고 토양 침식이 가속화 됩니다.

산불이 만드는 숲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번주도 분량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사실 산불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방대하고 복잡해서 한두편의 글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으로 다뤄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의 지식은 그리 넓고 깊지 않으니 가급적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다음 주에는 산불 이후에 만들어지는 숲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산불조심하세요!

댓글 0개

Comments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