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4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다양한 종이 생태계 안에서 생태자리를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라고 부릅니다. 연구자들은 생물다양성의 개념을 유전자, 종, 서식지 등 다양한 단계에서 이야기합니다.
유전자 다양성(gene diversity)은 한 종 안에 다양한 유전자의 변이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물은 다양한 유전자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질병에 저항하며, 종 전체의 건강을 유지(Yuji)합니다.
유전자 다양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먹는 바나나의 예를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먹는 바나나의 대부분은 ‘캐번디시’ 품종입니다. 캐번디시라는 단일 품종이 세계 여러 곳에서 널리 재배된다는 것은 바나나라는 종의 유전자 다양성이 극히 낮다는 의미입니다. 캐번디시 품종의 바나나는 파나마병이라는 곰팡이성 질병에 아주 취약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로 미셸’이라는 품종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로 미셸이 파나마병에 의해 큰 피해를 받은 이후 캐번디시 품종으로 대체된 것이 현재의 바나나입니다. 연구자들은 야생바나나를 바탕으로 질병에 저항성을 가진 품종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종 다양성(species diversity)은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수와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보통 단위 면적 안에 얼마나 많은 수의 종이 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종풍부도(species richness)와 얼마나 균등하게 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종균등도(species evenness)를 조합해서 종 다양성을 평가합니다. 다양한 동식물 종들의 복잡한 구성과 상호작용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지리산의 생태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지리산에는 생태계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다양한 곤충과 새, 양서류와 파충류, 포유류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리산의 숲을 만들고, 숲에서 살아가고, 숲을 분해하는 존재들이 모여 숲을 유지합니다.
서식지 다양성(habitat diversity)은 한 지역 내에 다양한 서식 환경이 공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유형의 서식지는 다양한 생물이 차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유형의 틈새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종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자리를 제공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계의 서식지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를 꼽을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에는 습지, 숲, 초원, 하천, 산지, 농경지 등 다양한 서식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군사 작전을 위한 벌목 등 반복적인 교란이 발생하고 있는 복잡한 생태계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서식지는 두루미나 산양 같은 철새와 포유류부터 희귀식물까지 다양한 종들이 비무장지대를 드나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 단계의 생물다양성은 각각의 의미를 가집니다. 유전자 다양성은 종이 자연에 적응할 수 있게 합니다. 종 다양성은 생태학적 상호작용을 보장하며, 서식지 다양성은 생물에게 다양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세 가지 모두를 보호하는 것은 어머니 지구의 대자연을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안정적인 상태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태계는 어떤 장소든 그 곳에는 반드시 여러 종류의 생물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여러 종을 우리는 군집(community)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태계가 존재하고 그 생태계 안에는 수많은 유형의 군집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군집마다 교란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다릅니다. 생태계는 각자 가진 저항성(resistance)과 탄력성(resilience) 위에서 안정성을 유지합니다. 저항성은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군집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오래 사는 큰 나무들이 자라는 숲은 저항성이 강한 생태계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여러 종의 생물들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된 숲은 외부의 스트레스에 의해 몇몇 개체나 종이 죽어도 남아있는 종들이 빈틈을 채우면서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유지합니다. 탄력성은 교란이나 스트레스가 발생한 이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 또는 회복되는 속도를 의미합니다. 키 작은 일년생 풀들이 자라는 풀밭은 탄력성이 높은 생태계입니다. 풀밭을 채우는 종의 구성이 단순하고, 강하게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빠르게 성숙하는 풀밭은 불이 나도 몇 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아주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숲은 저항성이 높고, 신선한 풀밭은 탄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좋은 거죠?”
생물다양성이 높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생태계에서 더 많은 존재들이 복잡하게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타이가 숲이 열대우림보다 생물다양성이 낮다고 해서 가치 없는 생태계는 아닙니다. 뜨거운 사막도 추운 툰드라도 바닷가에 자라는 맹그로브 숲도 특정 분류군의 생물다양성이 낮을 수 있지만 소중한 생태계입니다.
사회생물학의 아버지, 위대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이 자연에 대한 애착을 느끼도록 진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연스럽게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는 생존을 위해 자연과의 연결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가고 스마트폰으로 자연을 만납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도시의 삶을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의 서식지인 숲을 평평하게 밀어버리고 오직 인간만을 위한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물다양성은 줄어들고,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처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들과도 멀어져 갑니다. 우리는 대자연과의 연결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자연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아이들은 곤충을 무서워합니다. 우리는 다시 생물다양성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오후에는 마음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꺼내들고 산책을 나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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