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칼럼 다짜고짜 기후 | 여름 철새, '후투티'가 남쪽 나라로 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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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7일
- 5분 분량
여름철새 기후변화 적응,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 철새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온대림의 풍부한 봄 생태계와 달라진 기후 적응 전략, 그리고 탐조 취미의 변화상을 다룬다.
2025-10-17 김우성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최근 매일매일 울산 이야기쇼인 '매울쇼'에서 방송하고 있다.
탐조, 취미 생활로 넓어지는 중
저는 아주 가끔 새를 보러 산책을 나섭니다. 쌍안경을 들고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나섭니다. 새를 잘 모르다 보니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주변 전문가들에게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를 관찰하는 행위를 우리는 탐조(探鳥; bird watching)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탐조는 흔치 않은 취미입니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탐조를 즐깁니다. 쌍안경이나 카메라처럼 비싼 광학기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시간과 지식이 필요하니, 주로 선진국의 중년들이 즐기는 정적인 취미 생활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싼 쌍안경이나 망원렌즈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의 조용한 곳에 물통이나 모이통을 설치해 두고 새들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취미 생활로서 탐조의 저변은 더욱 넓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왜, 여름 철새는 다시 돌아올까?
철새는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이동합니다. 전혀 다른 생태계와 대륙을 연결하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철새는 왜 이렇게도 먼 거리를 이동할까요? 추운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여름 철새의 선택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땅과 하천이 얼어붙으면 먹이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테고, 추위는 그 자체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 새들은 튼튼한 날개가 있으니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 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럼 봄이 되면 왜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걸까요? 봄의 한반도는 따뜻하긴 하지만 지난 겨울을 보낸 중국 남부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도 여전히 따뜻할 텐데 말입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봄입니다. 봄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단지 온화하다는 이유만으로 철새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올까요? 우리나라의 봄과 열대 지방의 봄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겨울이 끝나고 땅이 녹기 시작하면, 뿌리에서 만들어진 호르몬이 물과 함께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겨울눈을 깨웁니다. 깨어난 겨울눈은 연하고 부드러운 새잎을 틔워냅니다.
열대 나무에서 새잎은 드문드문, 온대의 봄에 새잎은 지천
물론 열대 지방의 나무들도 새잎을 내고, 그 잎을 먹는 애벌레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대림의 나무들은 잎을 단숨에 틔워 내지 않습니다. 열대의 숲은 사시사철 따뜻하고 축축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항상 잎을 달고 있습니다. 새잎은 이미 잎이 무성한 가지 사이사이에서 드문드문 돋아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애벌레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연한 새잎을 찾아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온대의 숲에서는 모든 나무가 거의 동시에 새잎을 내기 때문에, 봄의 숲이 순식간에 연두색으로 물들고, 부드럽고 영양가 높은 잎이 지천으로 깔립니다. 이 시기에 애벌레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숲 전체가 어린 생명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열대 숲에는 질소가 귀하고, 온대 숲에는 풍부하다
애벌레들은 아무 잎이나 먹을 수 있을까요? 식물의 입장에서 잎은 햇빛을 이용해 포도당을 만드는 핵심적인 구조입니다. 광합성을 담당하는 엽록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양에서 질소를 흡수해야 합니다. 질소는 단백질과 엽록소의 핵심 재료이기 때문에, 식물 입장에서 결코 낭비할 수 없는 귀한 자원입니다.
이 질소를 이용하는 전략은 숲의 종류마다 다릅니다. 열대림의 토양은 질소가 귀합니다. 열대의 식물들은 새로운 잎을 만들 때 잎의 구조를 먼저 완성한 뒤에 천천히 엽록소를 채워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대의 숲에서 ‘연두색’이 아닌 붉거나 갈색빛의 어린잎을 보았다면 이는 질소를 아끼기 위한 생태적 적응의 결과입니다.
반면 온대림의 식물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봄비가 내린 온대림의 토양은 축축하고 질소가 풍부합니다. 많은 나무들이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어린 잎을 단숨에 틔워냅니다. 이들은 잎 한 장을 지키는 대신, ‘줄 건 주고, 잃은 만큼 더 만들자’는 전략을 택합니다. 일부 잎이 애벌레에게 먹혀도 금세 새로운 잎을 만들어 숲을 초록으로 채웁니다. 우리나라 숲의 봄에는 연한 잎도 많고, 애벌레도 많습니다. 여름 철새들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올 만큼 훌륭한 풍요로운 생태계입니다.

이른 봄에는 연한 잎, 늦은 봄에는 억센 잎 ... 식물의 방어 전략
온대지방의 식물들 또한 잎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어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닌처럼 소화가 잘 안 되는 물질을 쌓아두기도 하고, 애벌레가 싫어하는 맛과 독성 화합물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물리적 방어막은 잎 표면의 큐티클층입니다. 늦은 봄, 새잎이 다 자라 큐티클층이 완성되면 어린 애벌레는 더 이상 잎을 갉아먹기 어렵습니다.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는 작고 연약하기 때문에 이른 봄의 연한 잎만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람도 애벌레처럼 이른 봄의 연한 잎은 나물로 먹지만 늦은 봄의 억센 잎은 먹지 않습니다. 어린 애벌레는 제때 연한 잎을 먹을 수 있어야 어른 벌레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쌓이면서 지구 전체의 기후가 조금씩 따뜻해졌습니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한반도의 겨울은 짧아졌고, 따뜻해졌습니다. 이제 겨울에도 강이 얼어붙지 않습니다. 봄은 더 빨리 찾아오고 식물은 예전보다 훨씬 빨리 잎을 틔웁니다. 달라진 식물의 개엽 시기를 맞추지 못하고 늦게 태어난 애벌레들은 억세진 잎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어른벌레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겨울에 남쪽 나라에 가지 않는 철새들이 늘고 있다
남쪽 나라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봄의 우리나라 숲에 온 철새들도 혼란에 빠졌습니다. 짝짓기는커녕 둥지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미 봄은 한창이고, 애벌레들이 다 자라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번 번식할 수 있는 종의 여름 철새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 년에 한 번만 번식하는 여름 철새들에게 기후변화는 매우 심각한 위협입니다. 철새들이 번식에 성공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달라진 기후에 적응하는 무리들도 생겨났습니다. 언젠가부터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견디는 철새들이 늘었습니다. 한반도의 겨울은 이제 여름 철새들이 견딜 만한 계절이 되었습니다. 농업용 저수지, 따뜻한 도시의 하천, 인공습지와 양어장 등은 겨울을 나는 철새들에게 안정적인 먹이와 서식공간을 제공합니다.
먼 거리를 날아가는 대신 가까운 곳에서 겨울을 나는 무리들도 생겨났습니다. 예컨대 예전에는 동남아시아까지 날아가던 종들이 이제는 한반도 남부 지방이나 제주도에서 겨울을 납니다. 남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겨울을 견딘 여름 철새들은 봄이 왔을 때 정확한 시기에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번식지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둥지를 틀 수 있는 우선권도 생겼습니다.
먼 거리를 오가는 철새들은 점점 더 큰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반면, 한반도에 자리 잡거나 가까운 곳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들은 점점 더 번식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달라진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삶의 모습을 바꿔가는 것처럼 새들의 삶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 새는 철새에요? 텃새에요?”
단순한 질문이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하지 않습니다. 철새들이 텃새화되기도 하고, 이동 경로나 종착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새들을 관찰하는 탐조인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요? 초보 탐조인들은 새들을 만나기가 조금 더 편해졌습니다. 여름 철새를 겨울에도 관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들을 만나기에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습니다. 나무가 잎을 달고 있지 않으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을 조금 더 편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탐조인으로서 기뻐해야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생동물 연구자들이나 오래 탐조 활동을 이어온 시민과학자들은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종의 새들이 언제 한반도에 오고 언제 떠나는지, 얼마나 많은 개체들이 남는지, 어디까지 이동하는지, 모든 변화가 관찰과 기록의 대상이 됩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일손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녹아버린 빙하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북극곰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물론 극지방 생태계의 변화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의 생태계 또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새들의 삶에도, 아저씨의 취미 생활에도 말입니다.







기후변화는 새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