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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물순환촉진법', ‘어떻게 다룰 것인가’보다 ‘누가 다룰 것인가’

최종 수정일: 5월 30일

2025-05-27 김성희 기자

대한민국은 물 스트레스 국가다. 물순환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탄소 감축, 에너지 전환, 도시 회복력을 모두 연결하는 기후 정책의 핵심 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장과 배출 중심에서 순환과 회수 중심의 물관리 체계로 전환되어야 하며, 물순환촉진법은 그 전환의 제도적 출발점이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며, 지역 거버넌스와 책임 구조 개편이 병행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 물을 다루는 방식이 미래를 결정한다.



기후위기 대응, 물에서 시작해야 


기후위기 시대에 물은 더 이상 단순한 자원이 아니다. 에너지이자 탄소이며, 생태와 인프라, 복지와 안보를 모두 연결하는 ‘국가 시스템의 축’이다. 대한민국이 기후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물을 저장하고 소비하는 것에서 이제는 물을 순환시키고 회수하는 사회 전체의 흐름을 설계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물순환, 물 자원 활용, 물 거버넌스를 통합적으로 재설계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철학과 실행력을 동시에 증명해야 한다. 물을 다루는 방식이 곧 미래를 다루는 방식이고, 기후위기에 맞서는 진짜 정책의 실현이다.


 풍부해 보이지만 극히 제한된 자원 ‘물’

지구의 물 부존량. 사진 2025 세계 물의날 자료집
지구의 물 부존량. 사진 2025 세계 물의날 자료집

지구에는 약 14억㎦의 물이 존재한다. 이 막대한 양은 지구 표면을 2.7㎞ 깊이로 덮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중 97.5%는 바닷물, 즉 염수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전체의 2.5%뿐인데, 이마저도 대부분은 빙하나 만년설, 영구동토층처럼 접근이 어려운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담수호나 하천의 물은 전체의 고작 0.01% 미만, 약 10만㎦에 불과하여 인간이 실제로 손댈 수 있는 물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대부분의 물을 볼 수는 있지만 마실 수는 없다. 그렇기에 물은 ‘풍부한 자원’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기후위기로 인해 극단적인 가뭄과 홍수가 빈발하는 지금, 이 0.01%를 얼마나 잘 관리하고 순환시킬 수 있느냐가 물 안보의 핵심이 되고 있다.

물은 고정된 자원이 아니며 끊임없이 기화되고, 응결되며, 순환한다. 그러나 그 순환의 경로가 왜곡되거나 단절될 경우, 사회 전체의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도시의 불투수면이 증가하고, 강수 패턴이 교란되며, 한 지역에서는 침수가, 다른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단순한 ‘물 확보’만으로는 부족하며 제한된 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재사용하고, 되돌리는 체계적 순환 전략이 절실하다.


‘물 많은 나라’라는 착각


물 스트레스 국가 도표. 사진 2025 세계 물의날 자료집
물 스트레스 국가 도표. 사진 2025 세계 물의날 자료집

물 스트레스 국가는 물의 절대량이 아닌 '수급 여건의 구조적 열악함'을 기준으로 한다. 대한민국은 연평균 강수량 1258㎜로 세계 평균(810㎜)보다 약 1.6배 높다. 겉보기에는 물이 많은 나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은 연 1507㎥에 불과하며, 이는 세계 평균(1만5044㎥)의 13분의 1 수준이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이러한 수치를 바탕으로 한국을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가용 수자원량만으로 물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물이 풍부해도 상수도나 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이 부족해 물 부족을 겪고, 반대로 물이 적더라도 사용량을 절제하거나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면 문제는 줄어든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물 빈곤 지수(WPI, Water Poverty Index)’다. 영국 생태환경 및 수문학센터(CEH)는 단순한 수자원량이 아니라 수자원의 접근성, 사회경제적 활용 능력, 환경적 조건, 이용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지표를 개발했다. 이 지수는 물 부족이 각국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입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도구다.

한국의 물 빈곤 지수는 147개국 중 43위, OECD 29개국 중에서는 20위에 해당해, 선진국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부 항목 중 '자원량'은 117위, '이용 효율성'은 106위로 낮은 반면, '접근성'과 '사회경제 기반'은 상위권에 속한다. 물을 얻고 다루는 인프라는 갖췄지만, 절대량과 효율성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물의 현실은 단순한 환경 지표를 넘어, 사회의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된다. 한국은 ‘물이 부족한 나라’라기보다는, ‘물을 다루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향후 물 정책은 물의 절대량 확대보다, 한정된 물을 얼마나 잘 순환시키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형 물정책, 기술 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물관리는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국가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K-water)와 환경부는 기후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안전한 물순환 구조, 디지털 기반의 관리 혁신, 물-에너지-탄소 통합 전략을 중심으로 물정책을 전환해 나가고 있다. ▲기후대응형 댐 구축, ▲취수원 다변화, ▲관로 정비, ▲디지털 트윈 물관리 시스템, ▲수열에너지와 수상태양광을 활용한 융복합형 인프라 구축 등이 대표적으로 추진 중인 이 사업은 ‘예방 중심의 똑똑한 물관리’라는 측면에서 높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디지털 트윈 시스템은 실시간 강우 예측, 수위 모니터링, 방류 자동제어 등으로 기후재난 대응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수상태양광, 수열에너지처럼 물과 에너지를 함께 다루는 기술은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까지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대응 방안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타나고 있다. 기후대응형 댐이나 디지털 시스템 구축에 드는 막대한 예산은 지역에서 수용하기에 어려움이 많고, 수상태양광 시설 확대에 따라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증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열 공급 인프라가 생활권과 맞닿으면서 주민 반발이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AI 기반의 예측 시스템이 실시간 위험 상황에서 얼마나 정확히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 문제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가 가진 기술과 시스템은 충분히 설득력 있지만 지역과의 사회적 신뢰와 공론화, 그리고 장기적 운영 설계 없이는 실행하기도, 효과를 발휘하기도 어렵다. 결국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 한국이 추진 중인 ‘통합형 스마트 물관리’는 충분히 유망한 미래 전략이지만, 그 미래가 실현되려면 단단한 사회적 합의와 지역 맞춤형 조율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순환촉진법, 물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첫 제도적 기반


기후변화는 이제 비상사태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극한 호우와 폭염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찾아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도시의 물 흐름은 왜곡되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대심도 빗물터널은 침수를 막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빗물을 순환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이 거대한 인프라의 경제성과 지속가능성에도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물을 '저장하고 흘려보내는 대상'이 아닌, '순환하고 회수해야 할 자원'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은 이제 물정책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후위기와 도시화로 인한 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024년 10월 「물순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은 기존의 물환경보전법이나 물관리기본법이 물순환을 선언적으로만 다뤘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제적인 물순환 회복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도시의 불투수면 확대, 수질 악화, 홍수와 가뭄 같은 복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순환 촉진구역’을 지정하고, 국비를 포함한 직접 사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상수도부터 하수 재이용, 생태하천 복원과 침투시설 설치까지 물의 흐름 전 과정을 유기적으로 통합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환경부는 법 시행 1년 내 전국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 물순환 촉진 기본방침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재난 대응을 넘어 물을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통합 물관리 패러다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으며, 기술적 대응을 넘어, 한국 사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의 판을 바꾸는 일이다. 오늘날 도시 물관리는 단순히 물을 공급하고 배출하는 기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에너지, 탄소, 영양물질 회수까지 통합적으로 설계되는 ‘물 순환경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는 물을 절약하고 재이용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에너지를 회수하고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는 영리한 순환체계가 도시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탄소를 줄이는 물관리, 정치가 설계해야 할 과제


도시 물순환 시스템(Urban Water Cycle System, UWCS)을 구성하는 정수처리시설, 하수처리장, 배수시설, 집수시설 등 은 에너지 소비가 집중된 영역이자 온실가스 배출의 구조적 근원이므로, 온실가스 저감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필수적이다. 연간 총 4732.8tCO₂eq에 이르는 배출량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국가 시스템 전환과 직결된 문제다.

지난 23일, 기후위기 대응 방안은 이번 제21대 대통령선거 TV토론에서 사상 처음으로 주요 의제로서 등장했지만 실제 논의는 핵심을 비껴갔다. 각 정당 후보들이 미세먼지,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 개별 항목에 대해 단편적 입장을 내놨지만,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제출이라는 국제적 책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지난 23일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NGO신문
지난 23일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NGO신문

대한환경공학회 연구에 따르면 UWCS의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56.8%는 내부 기술 감축으로, 43.2%는 외부 상쇄를 통해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감축은 혐기성소화조, 열병합발전, 상수관로 누수 개선, 자가소비형 태양광 도입 등이 해당되며, 외부 상쇄는 신재생에너지 인증서(REC), 전력구매계약(PPA), 식재를 통한 탄소 흡수, 배출권 거래제가 포함된다.

또한 UWCS 전체 설비의 전력 요구량은 572.8kW로 산출되며, 이 중 61.7kW를 외부 재생에너지로 대체함으로써 RE100 달성도 가능하다고 분석된다. 이러한 결과는 도시 물관리 시스템이 단순한 기술 인프라를 넘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략적 플랫폼으로 재구성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물관리 시스템을 포함한 국가 인프라 전반의 전환 없이, 기후위기 대응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방향 제시가 아니라 실행 설계다. 탄소를 줄이는 물 관리, 순환이 살아 있는 도시의 방향을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는 결국 다음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대적 질문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물자치과 거버넌스 전환


물의 흐름을 통제하는 기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물을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구조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델타(Delta)’는 세계 유일의 역델타(inverted delta)로,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스노우캡에서 흘러든 담수가 수이순만(Suisun Bay)을 지나 샌프란시스코만으로 빠져나가는 서부 최대 하구역이다. 이 지역은 캘리포니아 유역의 절반을 차지하며, 2300만 명의 상수원이자 700만 에이커의 농업용수 공급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 염해, 지진으로 인한 제방 붕괴 등 기후위기 복합 리스크가 중첩되면서 물공급과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델타에 위치한 서부 최대 하구역 모습. 사진 2024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발표집
캘리포니아 델타에 위치한 서부 최대 하구역 모습. 사진 2024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발표집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주는 유역 단위 분권형 거버넌스를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지역에는 220개에 달하는 정부기관이 관여하고 있었지만, 정책 결정의 혼선을 막기 위해 권위 있는 단일 기관 중심의 정책 통합이 추진되고 있으며, 국가 단위의 하천법 없이도 각 유역은 자체 협의를 통해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한다. 중앙은 규제를 강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책 미션을 가진 태스크포스와 NGO의 참여, 지자체 간 수평적 조정, 시민 기반의 실험적 모델들이 지역 물관리를 유연하게 끌고 간다. 기술 이전에 ‘구조’를 바꾼 셈이다.

일본은 그와는 다른 경로에서 전환을 시도 중이다. 오랫동안 중앙정부가 법을 만들고 관료가 집행하는 전형적인 관료주도형 물관리 시스템 속에서, 부처 이기주의와 유역 조정의 어려움, 환경과 이수·치수 간 균형 실패라는 문제가 반복되어 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2014년 「물순환기본법」을 제정했고, 이후에는 유역 단위의 하천 환경 협의회, 수계별 유역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주민 참여와 유역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정책 결정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상·하수도와 하천을 통합 운영하며, 물·에너지·농업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관리’ 전략이 제도화되고 있다.

두 지역의 사례는 서로 다른 문화와 행정 시스템 속에서도 기후위기 시대 물관리의 핵심은 ‘중앙이 기준을 정하고, 지역이 설계와 실행을 책임지는 구조’에 있음을 보여 준다.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유역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역량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처럼 중앙집중적 구조 속에서 디지털 물관리와 스마트 기술을 추진하는 나라에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어떻게 다룰 것인가’보다 먼저 ‘누가 다룰 수 있는가’를 다시 묻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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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04 juin

물은 누가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하나요?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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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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