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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기는 벽에서 나오지 않는다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아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에너지의 주인이 된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아침에 일어나 스위치를 켜면 방안이 환해진다. 전자제품은 밤새 안녕하게 작동되고 있다. 전기가 만드는 일상은 익숙하기만 하다. 필요하면 사용 할 수 있게 벽 안 어딘가에 전기가 저장되어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착각이다. 전기는 벽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주 멀리서 온다. 길게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발전소에서 만들어져 전선을 지나, 변압기를 거치고 배전망을 타고 집에 도달한다. 우리는 보통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플러그를 꽂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는 식량과 에너지를 두고 갈등과 이해관계가 점철된 과정이었다. 권력은 당연 식량과 에너지를 차지한 사람이나 집단에게 돌아가는 몫이었다. 토마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가 각각 직류(DC), 교류(AC) 전력시스템을 개발, 상용화한 이래 ‘전기화(電氣化)’는 현대문명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에너지 문제는 상당 부분 전기 영역으로 환원된다. 기후 이상 변화는 인류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위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를 통한 전기화의 가속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갈수록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고도화되고 다양해지는 전자제품은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생활 편익을 제공하고 있다. 가정, 병원, 공장, 농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인터넷, 정보통신, 인공지능 등 디지털 세상을 떠받치는 건 전기다. 이동과 운송에서도 전기는 자신의 영토를 넓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기준 약 26%다. 1위는 석유로 약 51.7%다. 지금 추세로 본다면 빠르면 10년 뒤 2035년에는 전기가 석유를 제치고 1위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사회 전반에 미치는 ‘탈탄소’ 흐름은 이를 앞당길 수도 있다. 막대한 전기 공급이 과제인데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전기를 생산하는 것과 함께 발전 에너지원도 중요해지고 있다.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로 바꾸어야 한다. 자연에서 반복해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여기에 연료전지, 수소에너지, 석탄액화가스화, 폐기물에너지 등 ‘신에너지’가 따라 붙는다. 에너지 전환은 큰 틀에서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로 에너지원을 대체함을 의미한다. 기후 이상 변화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맞서 지금의 문명을 지키려면, 거대해지는 전기 수요 충족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로의 길은 별 이견이 없다. 현실 여건에 따라 최대한 달려가면 된다. 열심히 발전 설비를 구축하고 연구개발에 재원을 투입하면 된다. 문제는 전력의 배분이다. 수요처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양이 분배되어야 한다. 전기는 아주 까다로운 존재다. 생긴 다음 바로 사용되지 않으면 버려진다. 저장하기도 어렵다. 발전소에 가까운 곳에서 사용되는 게 속성상 맞다. 효율적인 분배망 형태는 ‘지역 분산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중앙에 집중하여 통제하는 방식이 더 일반적이다.

쉽게 사라지는 까탈스러운 전기가 불필요하게 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좁고 포장이 안 된 도로에서는 병목현상을 피할 수 없다. 도로 상태는 그대로 인데 움직이는 전기량이 증가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도로 위에서 마구 손실되거나 출발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발전은 아무 데서나 하면 된다. 하지만 전기는 아무 데로나 보낼 수 없다. 대한민국 전력 운용의 질곡은 발전보다는 분배망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현상은 차세대 에너지인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비수도권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대규모 부지가 필요하므로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지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과 영남 지역 일부에 몰린다. 수도권은 인구수나 경제규모로 볼 때 비수도권과 현저한 차이가 난다. 그만큼 전기를 많이 사용한다. 서울 경기 지역은 항상 전기가 부족한데 지방에선 남아도는 이상한 일이 생기고 있다. 남는 전기를 이동시키면 좋으련만 이게 쉽지 않다. 기존 전력 계통망이 지역 분산형 공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발전 가동을 하지 못하는 재생에너지 대기 물량이 34기가와트에 이른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소 34기에 맞먹는다.

에너지 전환 전략과 계획은 결국 기존 전력 계통망에 대한 전면적 재설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통망을 수술대 위로 올리는 건 실무부서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고 많은 자원의 투입이 필요한 국가 단위 의제이다. 국가지도자인 대통령이 들여다 봐야 하는 사안이다. 재생에너지 정책은 대한민국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 불균형과도 맞닿아 있다. 재생에너지 특성상 분산 수요처 설계는 필수다. 전기 수요처가 분산된다는 건 지역 균형 발전에도 의미있는 기여를 하게 된다. 에너지 전환이 기술 영역 이전에 철학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조직에 '기후에너지부'를 제안하는 이유다.

기후위기 시대, 식량 안보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안보는 나라의 안위를 좌우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자급률은 16% 남짓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건 이상 기후 때문만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서도 필수다. 계통망 미흡으로 발전 대기 중인 태양광 34기가와트는 우리나라가 한 해 사용하는 전력량의 절반에 해당한다. 계통망 재정비는 에너지 안보를 향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전기가 어떻게 오고 가는지, 어디서 막히는지, 어떻게 분배되는 게 최선인지 알게 되는 때 우리는 비로소 에너지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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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철학의 구분이 어떤 수준에서 가능한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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