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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플라스틱 협약 ‘부산 선언’은 결국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수요 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요가 조정되면 공급은 따라가기 마련이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지난 12월 2일 부산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 마련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끝났다. 내년 협약 체결을 목표로 했던 만큼 이번 부산회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의 반대이다. 의사결정을 다수결 투표가 아니라 만장일치로 하는 탓에 일부 국가라도 반대하면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구조다. 협약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지구촌 전체가 한마음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쟁점은 크게 세 개였다. '원료 물질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와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유해 화학물질 퇴출', '재원 마련'이다. 플라스틱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한 발 물러섰지만 산유국의 반대는 완강했다. 쟁점을 들여다보면 결국 문제는 ‘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원 마련이 쟁점 중 하나로 보이지만 나머지 쟁점들을 관통한다. 플라스틱이 편리하지만 유해하다는 건 상식이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유국들 또한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산유국들이 대척점에 서는 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자국민이 먹고 사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매년 4억 6000만 톤 이상 생산된다. 1950년대부터 생산된 플라스틱을 모두 합치면 90억 톤이 넘는다. 재활용률은 9% 정도다. 지금껏 생산된 플라스틱의 99%는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화학물질로 만들어졌다. 화학물질의 종류는 수천 가지 이상이며, 이중 상당수는 인간과 자연에 유해한 물질이다. 해양에 투기되고 매립, 소각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와 땅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산유국이라고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결의 실마리는 교육과 계몽의 차원이 아니라 경제적 접근이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인다. 수요가 늘면 공급이 는다. 수요가 줄면 공급도 준다. 공급을 줄이려면 수요를 줄이면 된다. 지금 플라스틱 협약 협상은 공급 감소를 강제해서 수요를 잡겠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수요가 잡히질 않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여서 나온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40년에는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이 현재의 60% 증가한 7억 36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공급을 강제해서 수요를 조절 하는 건 경제의 순방향이 아니다. 조정된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는 것이 순리다. 아울러 수요의 증가 추세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재원 투입이 필수다.


플라스틱 수요를 줄이려면 대체재가 필요하다. 플라스틱 대체재는 여러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한때 ‘바이오 플라스틱’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썩지 않는 화학 플라스틱에 비해 천연작물로 만들어진 바이오 플라스틱은 수개월에서 수년 사이에 생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너무 비싸고 무엇보다 천연작물을 재배할 경작지와 물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 인기는 지금 시들하다. 경제성이 떨어진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이미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재활용률은 9% 남짓이다. 재활용률이 이렇게 낮은 건 재활용을 위한 시스템과 인프라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플라스틱 대체재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대규모 연구개발과 이을 위한 응당한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 재활용 시스템과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도 적지 않은 투자가 요구된다. 돌고 돌아서 돈의 문제가 된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수요를 찾아서 억제하는 것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연간 56억 병의 생수 페트병이 만들어진다. 과거 상수시설이 미비하여 수돗물 위생상태가 좋지 못해 나온 소비인데, 이제는 생활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냥 수돗물을 마시면 되는 거다. 플라스틱 제품의 절반은 일회용이다. 일회용은 상당 부분 불필요한 수요를 위한 것이다. 물론 불필요한 수요를 찾아내고 막는 데도 비용투자는 어김없이 들 것이다. 자원을 어떤 곳에 어떻게 투입할지 선택하는 것은 결국 가치관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생산 감축을 포기하고 재활용으로 물러서자는 취지가 아니다. 생산 감축은 교육과 계몽으로만 실현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경제의 순리에 따라 수요를 틀어 막으면 공급은 줄게 된다. 이런 방향으로 자원의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야 온전한 플라스틱 협약 합의안이 나올 수 있다. 지금 상태로는 내년에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이 2015년 법적구속력을 갖고 발효 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지체되는 상황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아쉬운 대로 내년으로 넘긴 협약 협상이 제대로 마무리되어 목표한 협약 체결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협약 체결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재원 부담의 원칙과 세부방안이 명확하게 정립되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이번 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총회에서 기후대응재원 명목으로 2035년까지 매해 3000억 달러 의 기금을 조성하자고 합의했다. 기존 1000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나 상승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국가는 많지 않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반면교사’ 해주길 바란다. 아울러 협상의 성공과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건 상대방에 대한 ‘역지사지’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를 이끈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일부 문안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소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가로막았다고 밝혔다. 특히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포함한 주요 쟁점에서 산유국이 입장을 고수하며 협상 타결을 이루지 못했다. 2024년 11월 2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오염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를 이끈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일부 문안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지만, 소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가로막았다고 밝혔다. 특히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포함한 주요 쟁점에서 산유국이 입장을 고수하며 협상 타결을 이루지 못했다. 2024년 11월 2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오염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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