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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새가 만드는 숲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6. 20


2012년 여름, 아내님과 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새공원을 방문했습니다. 열대 기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새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한새롬 박사님의 어린시절 별명은 한새똥이었다고 합니다.

“꺄아아아아악!!” 

커다란 새가 아내님의 어깨에 잔뜩 똥을 쌌습니다. 과일을 먹는 새였는지, 묽은 똥의 색은 과일처럼 붉고, 냄새도 과일향이 났습니다. 우리는 재빨리 과일똥을 닦아 냈고, 얼룩이나 냄새도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새들의 똥은 왜 우리의 똥과 다를까요? 인간의 똥에는 우리가 먹고, 분해하고, 흡수하고 남은 음식 찌꺼기 이외에도 소화효소의 일부와 장에 살고 있던 미생물들이 잔뜩 섞여 있습니다. 길고 꼼꼼한 소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먹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잘 분해된 배설물이 배출됩니다. 하지만 새들의 경우에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새들은 날아다니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몸무게를 줄이려다 보니 복잡한 소화기관을 가지기도 어렵고, 장의 길이도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포유류와 달리 총배설강이라는 기관을 통해 소변과 대변을 한번에 배출합니다. 이빨도 없어서 곤충이나 작은 열매처럼 작고 간단한 먹잇감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새들은 날아다니기 위해 먹잇감을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키며, 대충 소화하고 배설하고, 자주 먹어야만 하는 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가리의 발 아래로 새똥이 보입니다. 요산이 섞여 있어 흰색을 띱니다.

대충 먹고 대충 싸는 새들의 소화 방식이 어떤 식물들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으로 다가왔습니다. 쥐와 같은 포유동물들은 이빨로 열매를 씹어 먹기도 하고, 충분히 소화시키며, 멀리 이동하지 않습니다. 반면 새들은 열매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키며, 대충 소화시키고, 멀리 날아가서 배설합니다. 열매를 먹은 엄마나무로부터 멀리 날아가서 배설하게 되면 유전자의 근친교배 확률을 낮출 수 있고, 빠르게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할 수 있습니다. 일부 식물들은 씨앗을 퍼뜨리는 매개자로 새들을 선택하고, 그들을 위한 열매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겨우살이나 오리나무의 열매, 장미과와 진달래과의 다양한 장과(漿果, berry)류들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열매들이 새들의 먹이가 됩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코뿔새(hornbill), 열매를 통째로 삼킵니다

인간이 사랑하는 고추속(Capsicum) 식물이 만들어 내는 캡사이신(capsaicin)은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에 접촉했을 때 강한 자극을 줍니다. 반면, 새들은 캡사이신에 의한 자극의 수용체가 없습니다. 캡사이신을 먹어도 맵거나 아프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고추의 원산지인 중앙아메리카의 야생고추들은 열매가 작고, 새들이 보기 좋게 잎 위로 높이 달리며, 열매가 다 익으면 새들의 눈에 잘 띄는 붉은 색이 됩니다. 새들은 기꺼이 야생고추를 먹고 멀리 날아가 씨앗을 배설합니다. 중앙아메리카의 설치류들은 야생고추를 먹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유류가 못 먹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캡사이신이라는 물질을 사랑한 인간이라는 포유류에 의해 고추속 식물들은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맵찔이인 것은 대자연이 품고 있는 진화의 역사를 오롯이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s://blog.mybirdbuddy.com/post/here-comes-the-hot-pepper-why-can-birds-eat-chilies

새들은 다양한 식물의 씨앗뿐 아니라 물고기나 무척추동물도 퍼뜨립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철새에 의해 잉어의 알이 운반되는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큰 호수에서 알을 밴 잉어를 통째로 잡아먹은 새가 날아가다가 소화가 덜 된 알을 작은 웅덩이에 배설하면 그 알에서 부화한 잉어들이 작은 웅덩이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큰 호수와 작은 호수가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날아다니는 새들에 의해 생태계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무척추동물의 이동에 관한 연구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새들의 소화기관은 알과 같은 작은 구조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통과시키기도 하며, 새들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물고기와 무척추동물을 널리 퍼트리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쇠백로, 꿀꺽 삼킨 물고기의 알이 소화되지 않은 채 다른 웅덩이로 옮겨지기도 합니다

새들은 왜 날아다니게 되었을까요? 포식자를 피해 혹은 먹이를 찾아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포식자를 피해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나무 아래로 활강하는 방식에서부터 점점 능동적으로 비행 능력을 발달시켰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새들의 비행 능력은 나무에서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행 능력은 새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종의 분화와 생물다양성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새들은 씨앗을 옮겨 새로운 숲을 만들기도 하고, 물고기를 옮겨 새로운 호수를 만들기도 합니다. 새들은 단순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숲과 숲을 연결하고, 호수와 호수를 연결하는 존재입니다. 새들의 삶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기도 하고, 기존의 생태계를 더 다양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새들의 서식지인 숲과 공원, 습지와 들판을 소중하게 여겨주세요. 우리가 새들의 서식지를 지켜주면 새들은 우리 곁의 자연을 지켜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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