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전쟁 그리고 미국…석유가 만든 세계 질서와 인류의 비용
-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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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김사름 기자
20세기 석유 질서는 번영의 역사인 동시에 착취와 독점, 전쟁과 기후위기의 역사였다. 값싼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중심으로 짜인 세계 질서는 미국 중심의 금융·군사 질서와 결합했고, 그 비용은 불평등과 갈등, 탄소 배출의 형태로 누적됐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그 오래된 질서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석유산업은 처음부터 독점과 불공정 속에서 성장
20세기 세계질서는 석유가 중심이었다. 자동차와 항공, 군사와 물류, 석유화학과 금융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석유였다. 석유를 확보하고 수송하고 가격을 관리하는 능력이 세계 패권이었다. 석유는 단순 연료가 아니었다. 부를 만들었고, 독점을 만들었고, 전쟁을 만들었으며, 기후위기를 남겼다.
석유 자본은 출발부터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브리태니커(Britannica)에 따르면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은 1870년 설립된 뒤 정제, 수송, 판매를 수직 통합하며 미국 석유산업을 장악했다. 1882년 미국 석유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했고, 1911년 반독점 판결로 해체되기 전까지 석유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권력을 구축했다.
브리태니커는 당시 스탠더드 오일이 미국 내 석유 생산·정제·마케팅·수송을 거의 모두 통제했다고 설명한다. 석유는 처음부터 경쟁적이고 분산된 시장의 산물이 아니라, 독점과 집중, 불공정 경쟁 논란 속에서 성장한 산업이었음을 록펠러가 보여 준다.
석유를 통제하고 가격을 좌우하는 힘이 세계 경제를 움직여
석유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생산지와 소비지, 원료 공급지와 금융 중심지 사이의 격차를 키웠다. 생산지는 원유를 뽑아 수출했지만, 더 큰 부가가치는 정제, 화학, 자동차, 해운, 금융, 군사, 보험을 가진 산업국가에 집중됐다.
석유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가치사슬의 아래 쪽과 유통을 장악한 쪽이 더 큰 이익과 권력을 얻는 구조였다. 이런 구조는 이후에도 반복됐다. 원유를 가진 국가가 아니라, 원유를 가공하고 운송하며 금융과 해상 질서를 통제하는 국가와 기업이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었다. 석유는 세계 경제를 움직였지만, 석유의 혜택은 균등하지 않았으며 이 불균형은 시장의 결과물이 아니라, 석유를 통제하고 가격을 좌우하는 물리적 힘의 독점이 가져온 결과였다.
1973~1974년 오일쇼크..석유는 상품이 아니라 권력
석유가 세계 질서를 바꾼 결정적 장면은 1973~1974년 오일쇼크였다. 미국 국무부 역사 기록에 따르면 1973년 10월 욤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 이후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 금수와 감산을 단행했고, 이는 세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역사 자료도 금수 조치와 생산 감축이 국제 유가를 급등시키며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고 설명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이 위기가 바로 1974년 IEA 설립의 직접적 배경이었다고 밝힌다. 이 시점부터 석유는 더 이상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비축과 외교, 군사와 동맹을 통해 관리해야 하는 전략 자원으로 굳어졌다.
전쟁은 석유 가격을 흔들고, 석유가 외교와 군사 방향을 바꿔
오일쇼크가 보여 준 것은 한 가지였다. 산업국가의 번영은 값싼 석유의 안정적 공급 위에 세워져 있었고, 그 공급이 흔들리면 금융과 물가, 외교와 안보까지 동시에 흔들린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국무부의 외교문서(FRUS)에는 1973년식 금수 조치가 다시 일어날 경우 개별 국가들이 확보 경쟁에 나서며 가격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또 다른 문서에서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석유 수입 중단과 가격 급등에 얼마나 취약한지 반복해서 언급한다.
이 때문에 비축유, 공동 대응, 수요 감축, 동맹국 간 조율이 제도화됐다. 전쟁이 석유 가격을 흔들고, 석유가 다시 외교와 군사의 방향을 바꾼다는 구조가 여기서 제도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달러와 석유의 결합…미국 중심 금융질서 만들어
석유는 미국 중심 질서의 중요한 축이었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금태환이 종료된 뒤, 미국은 달러 체제를 유지할 새로운 기반이 필요했다. 이후 국제 원유 거래와 산유국 흑자의 달러 순환, 이른바 페트로달러(petrodollar) 구조는 달러의 국제적 중심성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재무부(US Treasury) 국제문제국의 2006년 보고서는 고유가 시기 산유국 달러 수입이 미국 국채와 국제 금융시장으로 재유입되는 구조를 설명한다. 여기서 핵심은 석유를 달러로 거래했다가 아니라, 석유 거래에서 생긴 거대한 달러 유동성이 다시 미국 금융과 국제 금융 질서를 떠받쳤다는 점이다.
미국은 석유를 시장재가 아니라 안보재로
미국은 이 구조를 금융만으로 유지한 것이 아니다. 해상 수송로 보호, 동맹 관리, 산유국과의 외교적 조정도 함께 작동했다. 미국 국무부와 IEA 자료를 보면, 오일쇼크 이후 미국과 산업국가들은 석유를 단순 시장재가 아니라 안보재로 취급하며 비축유, 공동 대응, 외교 조율 체계를 강화했다.
미국 국무부 문서에는 미국이 아랍 석유 금수 위협과 카르텔 가격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국 협력을 구축하는 결정적 리더십을 제공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이는 미국 패권이 달러와 군사력, 에너지 안보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 운영해 왔다는 뜻이다. 석유는 미국 중심 질서의 주변 요소가 아니라, 그 질서를 떠받친 핵심 재료였다.
석유가 권력, 외화 수입, 무기 구매, 외부 개입과 결합할 때 갈등 증폭
석유 질서는 자본을 집중시켰고, 특정 산유지와 해상 병목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을 키웠으며, 자원 수출국과 산업국 사이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세계은행(World Bank) 자료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 논의가 특히 석유 부국에서 성장 왜곡, 제도 취약성, 갈등 위험과 연결돼 왔다고 설명한다.
세계은행의 중동·북아프리카(MENA) 연구는 1992년 이후 산유국 집단의 분쟁 발생률이 비산유국보다 더 높았다고 지적하며, 특히 유가 충격과 정치경제적 취약성이 결합할 때 갈등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자원이 곧바로 전쟁을 낳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석유가 권력, 외화 수입, 무기 구매, 외부 개입과 결합할 때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국제정책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석유 질서는 번영의 역사이며 불평등과 전쟁, 기후위기의 역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이 가장 큰 이산화탄소(CO₂) 배출원이며, 2019년 에너지 시스템의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배출이 약 380억 톤에 이르렀고 연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분의 2를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석유는 문명을 움직였지만, 그 문명을 지탱한 방식은 동시에 대기 중 탄소를 빠른 속도로 축적시켰다. 그래서 석유 질서는 번영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평등과 전쟁, 기후위기의 역사이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질서를 여는 일
재생에너지 중심의 세계 질서는 지역 분산형 전력과 재생에너지, 저장장치, 효율 중심 질서다. 석유가 만든 질서와는 다른 출발점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질서를 여는 일이다. 그 질서가 더 평화로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석유 질서보다 덜 취약하고, 덜 집중적이며, 덜 전쟁 친화적인 방향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석유 질서는 산유지와 해협, 유조선과 군사적 보호, 달러 순환과 독점 자본에 깊이 묶여 있었지만, 재생에너지 체계는 연료를 매일 대규모로 장거리 수송하지 않아도 되는 비중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가 만든 비극을 끝내는 길은 석유 없이도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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