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어스파머 | 이연재 자연목장&팜생츄어리 목부 | 농장동물도 생산 자원이 아니라 생명체로 봐야

 

2024-09-26


이연재 / 자연목장&팜생츄어리 목부(牧夫), 채소소믈리에


충북 음성군에서 남편(장훈)과 아이(장건명)와 함께 자연을 따라 여러 생명들이 함께 살고 함께 즐거워하는 농장을 꾸리며 모든 생명이 균형과 조화 속에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낸 책으로는 『채소바이블』(공저, 2022)이 있습니다.

 


자연목장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따라 여러 생명들이 함께 살고 함께 즐거워하는 곳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자연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어우러져 동거동락하는 삶, 그 자체가 우리의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며 흙-식물-동물-사람-다시 흙으로의 순환 안에서 모든 생명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했던 삶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자연의 순환 과정에 기여하는 농장동물들. 사진_자연목장&팜생츄어리

흙-식물-동물-사람-다시 흙으로 순환


우리가 원하는 순환하는 농장을 이루는 데 농장동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이 많고 척박했던 땅에 농장동물들의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해 토양을 빠르게 회복시키고, 화학비료나 인공 자재를 사용하지 않고도 작물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흙이 점점 건강해졌고, 건강한 흙에서 자란 식물들(야생초, 농산부산물)을 농장동물들의 먹이로 사용했습니다. 다시 농장동물의 배설물을 퇴비로 만들어 땅에 돌려줌으로써, 흙-식물-동물-사람이 순환하는 생태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생물 다양성이 유지되고, 건강한 생태계가 지속되는 농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산속에 자리한 농장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농장동물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돼지는 축사와 운동장이 연결되어있어 자유롭게 오가며 땅을 파고, 진흙 목욕을 하며 지냅니다. 소와 염소는 봄부터 가을까지 풀이 있는 계절은 풀을 베어 먹이고, 가을 이후 때때로 염소는 산지나 언덕에 나가 잡초와 덩굴식물을 먹습니다. 말은 농장 이곳저곳 자유롭게 다니며 풀을 뜯어 먹습니다. 닭, 오리 친구들은 벌레나 작은 곤충을 찾으며 잡초 씨앗을 먹습니다. 농장동물들은 각자 본능과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자연의 순환 과정에 기여하며,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농장에서 나는 농산 부산물뿐만 아니라 지역의 농산 부산물인 복숭아를 먹는 돼지. 사진_자연목장&팜생츄어리
농장 앞 방역 초소. 사진_자연목장&팜생츄어리

일년 내내 방역 점검


하지만 이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구제역, 조류독감, 아프리카 돼지열병, 럼피스킨까지 가축 전염성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자연과 가까이에서 농장동물들을 돌본다는 것이 점점 이상한 일이 되어갔습니다.

가축 전염성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방역 점검은 강화됩니다. 주요 점검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입 통제, 방역 시설 점검, 청결 상태 확인, 가축 상태 확인을 위한 혈액 검사, 방역 계획 및 기록 점검 등이 주기적으로 또는 필요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찰 전화와 예찰 문자를 주기적으로 받습니다. 질병 발생시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받기도 합니다.

소, 돼지, 조류 관련 질병이 일년 내내 끊기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농장동물과 함께 지내는 우리는 일년 내내 감시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동물들을 방목하지 말고 축사에 가둬 두고, 가축(농장동물)을 키우려면 한 가지 축종만 키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돼지가 땅 파고, 풀 먹고, 진흙 목욕해야 하지 않아?


저희 아들 건명이가 7살 때(2021년)의 일입니다. 건명이는 그동안 방역 점검하는 걸 여러 번 보고 아빠, 엄마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걸 듣고선 말했습니다.


🙎 ‍엄마~돼지가 이렇게 살면 왜 안 된다는 거야? 당연히 돼지가 땅 파고 풀 먹고, 진흙 목욕도 해야지. 그럼 어떻게 해?

👩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조류독감 등등 가축들에게 아픈 질병이 발생될까 봐 그러는 거야.

🙎‍ 우리 돼지들 안 아픈데 왜 그래? 그럼 다 갇혀서 살아야 한다는 거야?

👩 (응~ㅜㅜ이라고 말 못하고) 아니야~ 아빠, 엄마도 다 갇혀서 살면 안 된다고, 우리 돼지들은 건강하다고 이야기했어.


갓 베어 온 신선한 풀을 뜯고 진흙 목욕하는 돼지들. 사진_자연목장&팜생츄어리

7살 건명이는 돼지가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 갇혀서 사는 농장동물들이 당연한 것처럼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목장을 공유하는 여러 프로젝트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면, 갇혀 사는 농장동물들의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값싼 식량을 얻기 위해, 동물의 삶은 외면당한다


8대 방역시설 의무가 입법화되면서 우리의 방식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자연을 벗 삼아 동물들과 함께 버텨 왔던 우리에게 법의 장벽은 큰 실망이었습니다. 특히 그 법안에 동물복지, 친환경 축산, 지속가능한 축산이라는 말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그 단어들이 우리의 방식과 철학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법은 효율과 이익, 그리고 값싼 식량을 위한 인간의 욕심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노력과 동물들의 삶은 경제적 가치 앞에 외면당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돼지는 잘못이 없고, 우리도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려 했을 뿐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흑돼지들을 보내며: 책임과 미안함 사이에서


법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했던 흑돼지들을 법이 정해 놓은 8대 방역시설이 갖춰진 농장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부족함, 그리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의 답답함이 뒤섞인 날들이었습니다. 함께 지내던 동물들을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은 우리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저 무기력하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들을 잘 보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했습니다.

날이 풀리고 얼어있던 땅이 녹아가던 어느 날 돼지들은 마지막으로 작은 운동장 안에서 뛰어놀았습니다. 그저 땅을 파고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으며 노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이제 그 작은 땅과 햇빛, 바람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이 법과 시스템 앞에서 무너져버린 순간이었습니다.


팜생츄어리 염소 놀이터 제작, 사진_자연목장&팜생츄어리

자연목장의 2막: ‘팜생츄어리’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자연목장은 이제 ‘팜생츄어리’로서 새로운 2막을 시작했습니다. 팜생츄어리는 단순히 동물들을 보호하는 공간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농장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연목장에서 함께했던 동물들과의 시간을 통해 배운 것들을 토대로 이곳에서 갈 곳 없는 농장동물들에게 새로운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팜생츄어리가 되었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자연목장일 때 방식 그대로 농장동물들은 각자 본능과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생산적 자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권리를 우선으로 하는 보호 활동을 펼칩니다. 또한 동물권 행동 카라와의 협업을 통해 전문적인 의료 지원과 농장동물 행동 풍부화 활동 지원 등을 받으며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농장동물들의 복지 향상과 관련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림으로 그린 목장에 사는 동물들과 그 이름. 사진_자연목장&팜생츄어리

동물들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


많은 국가에서 동물보호법이 존재하며, 특히 농장동물의 복지를 강화하는 법적 규제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팜생츄어리는 농장동물도 이러한 동물보호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농장동물을 생산 자원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이들이 생명체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고자 합니다. 자연목장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자연과의 공존, 동물들의 존엄을 지키는 삶의 방식은 팜생츄어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드는 희망


여러 생명이 자연을 나누며 함께 살고 함께 즐거워야 한다는 우리의 믿음은 자연목장에 이어 팜생츄어리에서 더욱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연 따라 동거동락하며 동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곳은 자연과 동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곳이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우리의 작은 일상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기후위기 시대를 넘어 자연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자연따라동거동락" 자연목장. 다양한 텃밭식물과 야생초, 여러 농장동물들, 그리고 목부 가족이 자연 따라 동거동락(同居同樂, 함께 살고 함께 즐거워한다)합니다.

농장동물 관찰하기 예약 https://naver.me/FArMYTqn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