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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지구와 정치 | 노동을 경멸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어떻게 네오콘의 사상적 선배가 되었나

2025-06-06 윤효원

한나 아렌트 노동관 비판, 한나 아렌트는 자유와 정치를 중시했지만, 노동을 배제한 철학자였다. 그녀의 사유가 20세기 후반 미국 신보수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된 배경을 탐구하고, 오늘날 노동의 정치화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자유의 철학자, 그러나 노동을 배제한 사유


한나 아렌트는 정치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전체주의의 기원』과 『인간의 조건』을 통해 20세기 중반 이후 철학적 지형을 새롭게 그린 인물이다. 전체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인간이 무엇을 통해 세계와 관계 맺고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한 그녀의 작업은 철학계는 물론 정치학, 사회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오늘날 아렌트를 다시 읽는 이유는 단지 그녀의 위대함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사유가 갖는 결핍, 특히 노동에 대한 이해의 부재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노동 현장, 복지 정책, 정치적 갈등을 바라보는 데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아렌트는 노동을 배제한 자유, 정치만을 긍정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그녀가 이후 미국의 신보수주의, 즉 네오콘의 사상적 선배로 기능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 노동은 동물적 반복?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labor), 도구와 제도를 만드는 근로(work), 그리고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action)다. 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고귀한 활동은 ‘행위’이고, 가장 낮은 차원의 활동은 ‘노동’이다. 노동은 생명 유지의 반복적 활동으로서 소멸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아렌트, 『인간의 조건』). 반면 근로는 비교적 지속적인 인공물을 만들어 내고, 행위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다움을 실현한다.


이런 구분은 단지 철학적 차원이 아니다. 아렌트는 고대 아테네의 자유민 중심 정치문화에 깊이 영향을 받았고, 거기서 이상적 인간형을 찾았다. 그녀에게 이상적인 삶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존재, 즉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이었다. 이는 오늘날의 평등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정한 계급과 성별을 배제한 고대적 자유 개념에 가깝다. 아렌트는 정치 참여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노동은 인간의 공적 자아를 실현하지 못하는 동물적 활동으로 간주했다.


노동 없는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아렌트의 노동관은 단순한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정치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생존과 돌봄, 일상적 반복을 정치로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 복지정책, 주거권 보장 같은 의제는 아렌트적 철학에서는 ‘비정치적’ 사안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의 발전은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사회권, 복지권, 경제적 평등 없이 정치적 자유는 공허하다는 것이 복지국가의 핵심 논리였다. ‘복지를 둘러싼 정치’는 민주주의의 중심이 되었고, 그 어떤 철학보다 노동의 정치를 통해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아렌트는 왜 이를 외면했을까? 그것은 그녀가 자유를 정치 행위에서만 실현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 라이더 노동자, 간병노동, 가사노동이 중심이 된 21세기의 조건은 이를 거부한다. 이제 노동은 정치적 공간 그 자체다. 돌봄노동, 필수노동, 재생산노동은 정치의 최전선에 있다. 사실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래 노동은 늘 인간사와 정치의 중심 문제였다.


아렌트의 반공주의와 전체주의론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나치즘과 스탈리니즘을 하나의 전체주의 체제로 묶었다. 이는 당대의 지성들 사이에서도 논쟁적 관점이었다. 특히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본질적 차이를 지우고, 양자를 동일한 권위주의 체제로 간주하는 시각은 냉전기의 미국과 서유럽 우파 지식인들에게 유용한 이념 도구가 되었다.


아렌트는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며 소비에트 공산주의 전체를 부정적으로 그렸다.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로서 공산주의를 나치즘과 동일시함으로써, 그녀의 철학은 냉전 시대 서방의 반공 담론과 손쉽게 결합되었다. 이로써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자유세계’의 정치철학자로 소환되었고, 반공 이데올로기의 철학적 정당화에 기여하게 되었다.


아렌트와 네오콘의 사상적 연계


아렌트가 직접적으로 미국 네오콘 운동의 설계자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녀는 군사 개입을 주장하지 않았고, 시장만능주의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철학은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와 냉전 반공주의가 결합한 미국식 네오콘 이데올로기에 철학적 정당성을 제공했다.


첫째,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나치즘과 공산주의로 통합해 정의했고, 이 구도는 냉전기의 ‘자유 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데 핵심이었다. 네오콘은 이를 바탕으로 공산주의는 물론, 정치적 이견과 민족주의까지 ‘전체주의적 위협’으로 확장해 해석했다. 레이건 정부의 ‘악의 제국’ 담론, 부시의 ‘자유를 위한 전쟁’은 모두 아렌트적 프레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둘째, 아렌트의 ‘행위’ 중심 자유 개념은 네오콘에게 민주주의 수출과 개입주의 외교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도구가 되었다. 행위는 고립되지 않고 세계 속에서 드러나야 하며, 자유는 표현되고 실현되어야 한다는 아렌트의 논리는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을 전복해야 한다”는 개입주의 논리와 쉽게 연결된다.


셋째,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공적 세계에서의 엘리트적 ‘말하기와 행동하기’를 핵심으로 하며, 이는 네오콘이 중시하는 미국의 지도자적 역할, 도덕적 우위, 문화적 패권론과도 닮아 있다.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은, 아렌트가 말한 ‘정치의 고귀함’과 묘하게 겹친다.


넷째, 네오콘 1세대 지식인들, 특히 레오 스트라우스의 제자들은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 자유에 대한 도덕적 열망, 엘리트 정치론을 공유했다. 그들은 아렌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사유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처럼 아렌트의 철학은 그 자체로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자유주의의 철학적 어휘를 제공했다. 자유를 위해 노동을 배제했던 아렌트, 자유를 위해 전쟁을 지지했던 네오콘—이 둘 사이의 연속성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의 그라피티. 사진_위키커먼즈, 베른트 슈바베(Bernd Schwabe), 하노버
한나 아렌트의 그라피티. 사진_위키커먼즈, 베른트 슈바베(Bernd Schwabe), 하노버

아렌트를 넘어서: 노동의 정치화가 필요한 시대


오늘날 우리는 자유가 정치적 참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자유는 생존이 보장될 때에만 현실이 되며, 노동 없는 자유는 허상에 불과하다. 플랫폼 자본주의, 기후위기, 돌봄노동의 위기 속에서 노동은 단지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근본 조건이 되었다.


아렌트를 넘어선다는 것은 아렌트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사유에서 출발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와 투쟁의 현장으로 철학을 가져오는 일이다. 노동은 반복이 아니라 관계이고, 재생산이고,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를 말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노동을 정치의 중심으로 복권시켜야 할 때다.


결론: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아렌트는 자유를 사랑한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자유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소수의 자유였다. 민주주의는 그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모두의 생존이 보장되고, 누구나 정치의 주체가 되는 조건에서 자유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노동은 정말 정치 밖의 일인가?

1 Σχόλι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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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10 Ιουν

잘 읽었습니다. 한나아렌트와 네오콘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이안트로츠키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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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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