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AI 교육,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planetssong03
-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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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6월 6일
2025-06-03 김성희 기자
AI가 일상이 된 지금, 교육 현장도 빠르게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현재의 AI 교육은 기능과 코딩에 치우쳐 있고, 기술이 만든 사회적 변화와 책임을 묻는 시민형 리터러시 교육의 추진력은 아직 미비하다.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에서, 사회적 맥락과 책임을 함께 가르치는 민주적 시민 역량을 키워 내는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확산은 교육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 AI 특성화고, AI 교사 양성 등 발 빠른 제도 정비에 나섰지만, 정작 중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우리는 어떤 사회적 역량을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
AI 시대의 교육은 단순한 기능 훈련이 아니라, 기술의 윤리적·정치적 영향을 이해하고 민주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시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리터러시 기반 교육과정 개편, 교사 재교육, 생애주기별 AI 학습체계 구축이라는 구체적인 정책 이행이다. 미래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에서 결정된다.
AI 시대,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나
생성형 AI Chat GPT의 등장으로 AI는 다시 한 번 대중의 중심 화두가 됐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능력은 글쓰기, 코딩, 번역, 이미지 생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이 것은 교육 현장의 변화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학교와 교육기관은 AI 교육을 서둘러 도입하기 시작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민간 센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된 AI 관련 수업이 개설되었다.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과 AI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정책적 대응에 나섰고, 서울시교육청은 AI·빅데이터 특성화고를 신설하는 등 제도적 정비에도 속도를 냈다. 민간기업 역시 AI 학습 시스템을 학교에 공급하거나, AI 기반 학습 플랫폼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성취도를 분석하고 피드백하는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급속한 도입의 중심에서 지금의 AI 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기술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학생들은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하는지 교육의 본질적 목표는 모호해졌다. 기술 중심적인 교육의 확산 속에서 '우리는 왜 AI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의 철학과 내용의 논의는 아직 부족한 상태이다.
‘배움’에서 ‘이해’로, 리터러시가 말하는 교육의 미래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우리의 일상과 교육의 현장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교육'과 '리터러시'는 서로 다른 작동 원리를 지닌 개념임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제도적 틀 속에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구조적 활동이라면, "리터러시"는 개인이 복잡한 사회·기술·문화적 맥락 속에서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재구성해 실천으로 이어가는 능동적 역량이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의 리터러시는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거나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AI가 생성한 정보의 신뢰도를 평가하고 알고리즘 편향성과 데이터 불균형의 문제를 인식하며,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윤리적·정치적 영향력을 판단하는 고차원적 사고와 실천을 요구한다.
이 관점에서 AI 리터러시는 단순한 기술적 활용 능력이 아니라, 분산된 정보 환경 속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탐색하고 연결하며,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종합적 역량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교육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중심적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교육과 리터러시 교육을 동일선상에 놓고 봐야 한다.
특히 리터러시를 통해 학생들이 ‘왜’ 배워야 하는지를 자각하고,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지를 숙고하도록 하는 교육 철학이 절실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을 따라잡는 교육이 아니라, 기술을 이해하고 넘어서려는 인간의 사유를 길러 내는 교육이다.
교육 현장에서의 AI 수업의 현실
한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정규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통해 AI 교육이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교육의 목적과 내용 또한 그 성격에 따라 뚜렷이 구분된다.

정규 교과과정에서는 기술 습득 중심의 AI 기초 역량 교육이 주를 이룬다. 초등학교 실과와 중학교 정보 과목에서는 블록 코딩 도구(엔트리, 스크래치)를 통해 프로그래밍의 원리를 익히고, 파이썬, C 언어 등을 활용해 알고리즘과 데이터 처리 개념을 학습한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Brightics AI, R, Orange 등 전문 도구를 활용한 데이터 분석, 빅데이터 시각화, 로봇 자동화 시스템 설계와 같은 고차원 실습이 본격화된다. 이처럼 정규 수업은 기술 중심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며, AI 활용의 기초 문해력과 기능적 숙련도를 단계별로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유학기제, 방과후 수업,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기술 응용을 넘어서 창의성, 협업, 사회적 실천 역량을 중심으로 한 AI 교육이 진행된다. 자유학기제에서는 Chat GPT를 활용한 릴레이 소설 쓰기, AI 기반 진로 탐색 콘텐츠 제작 등 학생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활동이 주를 이룬다. 방과후 수업에서는 빅데이터 시각화, 파이썬을 활용한 문제 해결 실습, 생성형 AI 기반 콘텐츠 제작 등 보다 심화된 기술 응용 프로젝트가 운영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메타버스, VR, AI 기반 공동 창작 활동 등을 통해 협업적 문제 해결과 디지털 시민성 교육을 실천한다. 이들 수업은 기술을 수단으로 삼아 사고력, 소통 능력, 윤리적 판단 등 다면적 역량을 통합적으로 기르는 교육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시민성, 인식과 실천의 간극
‘디지털 시민성(Digital Citizenship)’은 AI 리터러시와 긴밀하게 연결되며, AI 시대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개념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은 단지 온라인 예절이나 개인정보 보호에 그치지 않고, 기술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디지털 공동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역량을 말한다.
단편적인 기술 교육이나 규범 교육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실천적인 교육 목표로, AI 리터러시가 제시하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결합될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AI 리터러시가 알고리즘, 빅데이터,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분석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라면, 디지털 시민성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판단을 내리고 공공의 선을 위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 중심 역량이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핵심 교육 목표로 제시하며, 디지털 기초 소양, 윤리, 사회 참여를 포괄하는 디지털 시민성 교육을 전 교과에 내재화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디지털 자아’, ‘비판적 사고’, ‘사회적 지지’ 등 10개 핵심 영역으로 구성된 교육 자료를 개발하여 초·중등 교사에게 보급하고 있다.
정책 의도와 달리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규범 중심 교육이 주류를 이룬다. 최근 디지털 선도학교 리더 교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94%가 디지털 시민성 교육이 ‘매우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수업에서 이를 실시한 교사는 57%에 그쳤다. 더욱이 학생의 디지털 참여 역량은 아시아태평양 4개국 중 최하위 수준으로, 윤리적 판단이나 사회적 실천보다는 ‘규칙을 잘 지키는 디지털 사용자’를 양성하는 데 그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현실은 AI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시민적 자질을 충분히 길러 주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AI 기술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가르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것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결과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공공의 삶에 책임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교육이 필요하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삶을 규정하는 시대에서 리터러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두는 교육의 언어로 거듭나야 하며, 디지털 시민성은 그 교육이 지향해야 할 윤리적 출발점이자 실천적 종착점이다. AI 리터러시와 디지털 시민성의 통합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교육적 전환점이다.
시민 모두를 위한 AI 리터러시로

AI 기술이 급속히 삶과 산업 전반에 스며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은 이를 정확히 이해하거나 능동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생성형 AI, 자동화 기술, 스마트 시스템이 산업 구조와 일상을 빠르게 재편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수동적 수용자에 머물러 있다. 국내 AI 교육은 여전히 초중등 공교육 중심이며, 알고리즘과 코딩 위주의 전문인력 양성에 치우쳐 있어 고령자, 저학력층, 지방 거주자 등은 교육에서 소외되기 쉽다. 실제로 미국의 한 조사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AI 관련 20개 문항을 제시한 결과, 60점 이상을 획득한 응답자가 16%에 불과했고, 응답자 대부분이 AI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국민을 위한 체계적인 AI 리터러시 교육의 확대다. 연령과 사회적 위치에 맞춘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현장 기반 학습,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접근성 높은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 동시에 AI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차별, 사생활 침해, 알고리즘 편향 등 윤리 문제에 대한 교육도 병행돼야 하며, AI 리터러시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 마련과 계층별 정책 세분화가 필요하다. 전국민 AI교육의 실행은 기술의 혜택을 사회 전반에 공정하게 확산시키고, AI 시대의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기 위한 전략이며, 나아가 시민이 기술의 작동 원리를 통해 사회적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공공성과 책임을 고려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시민성의 핵심 기반이 될 것이다.
사람 중심의 AI 교육 공약, 실현을 위한 과제 남아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AI 교육 공약 중 ‘사람 중심의 인공지능 미래교육’에 대한 내용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을 둘러싼 윤리, 시민성, 공공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로 공약에는 정규 교육 내 시민·경제·정치교육의 활성화, AI 디지털 교과서의 학교 자율 선택 보장, 생애 주기별 AI 교육 체계 마련, 지역 기반 AI 리터러시 센터 구축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코딩 교육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시민이 AI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사회적 맥락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시민형 AI 리터러시를 기르겠다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AI 기반 콘텐츠 제작’이나 ‘Chat GPT를 활용한 창작 활동’은 공약 중 “AI+X 교육 모델” 및 “비 전공자를 위한 AI 통합 교육”과 연결되며, 디지털 시민성 교육은 “헌법 교육 강화”, “정치 교육 활성화”와도 철학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공약의 취지는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교육 현장의 AI 교육 실행 수준은 여전히 규범 중심 교육에 머물고 있으며, 공약에서 제시된 AI 리터러시 센터 설치나 디지털 튜터 도입은 아직 구체적인 이행 계획에 대한 공식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공약이 선언적 목표에 머물지 않고 실제 시민 개개인의 삶과 배움에 닿기 위해서는, 정규 교과 전반에 리터러시 기반의 교육과정 편성, 현장 교사 재교육 체계 정비, 비판적 사고와 토론 중심의 수업 확산이 뒤따라야 한다. 공약이 그리는 미래는 분명 AI와 함께 살아갈 ‘민주적 시민’을 상정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구체적인 교육과정 설계와 현장 실행 전략이다.
교육과 리터러시는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