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 기자 2024-06-11
최태영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캠페이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화학 관련 기업의 홍보실이었다. 그린피스의 공모를 보고 지원해 커뮤니케이션 오피서로 시작했다. 생물 다양성 캠페이너로 활동한 지는 1년이 넘어간다. 현재 「보호받지 못한 보호 지역」 캠페인에 집중하고 있다.
워터월드를 보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생물학을 전공하셨다. 어릴 때부터 지구 환경이나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과학적 사고나 판단에 익숙하도록 여러 가지를 알려 주셨다. 이과가 아닌 문과를 선택하긴 했지만 이과적인 것이 마인드셋된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본 영화 <워터월드>에 영향을 받았다. 수백 년 동안 인간들의 자연을 훼손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모든 인류가 배 위에서 사는 영화다. 주인공인 케빈 코스트너가 물이 부족하니까 소변을 물로 정화해서 마시는 장면은 강렬했다. 영화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 앞으로 환경 문제가 생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을 찾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기업 홍보팀에 취업했다. 화학 관련 기업이었다. 7년 이상 다녔다. 기업의 홍보팀은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하고 어떻게 기업을 홍보할 것인가가 우선순위다. 사회나 세상 돌아가는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할 일이 없었다.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의 커뮤니케이션 오피서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홍보는 한 집단과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홍보일을 계속하게 된다면 관심 가는 걸 하면 행복할 듯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 안의 생물이나, 환경에 대한 마인드셋이 작동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로 그린피스 활동을 시작하다
그린피스는 원전과 관계가 깊다. 1971년 미국의 핵실험을 막으면서 그린피스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2011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내가 입사한 바로 다음 날,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출근 하자마자 지옥이었다. 너무 바빴다. 원전 캠페인은 그린피스가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캠페인이다. 개인적으로 원전에 대해 중립적 입장이었는데 알면 알수록 문제들이 심각했다. 내용을 알아가면서 깨달은 것도 많고 충격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잘 알릴까 많이 고민했다. 숀버니라는 분은 그린피스 동아시아 원자력 전문가이신데 서울사무소와 도쿄사무소에서 일본 원전에 대해 많은 활동을 전개했다.
캠페이너가 되다
커뮤니케이션 오피서로 그린피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행복했다. 어머니도 행복해 보인다고 하셨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는 80여 명이 근무하는데, 대단히 수평적이다. 특화된 직무들이 있지만 맡은 직무에만 아이디어를 내는 게 아니라, 누구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직접 해 볼 수도 있다. 한 번은 네이버 웹툰에 우리 캠페인을 소개해 보는 게 어떨까를 제안해서 직접 진행해 봤다. 아이디어 내고 연구하고 진행해 보고, 이런 걸 좋아했다. 그러다 캠페이너 제안을 받았다. 생물 다양성 캠페이너를 하게 되었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공부 많이 해야 된다고 하면서, 이 책 저 책 가져다 주었다. 이거 읽으라고 하고 지금 알아보는 내용은 여기 몇 장에 있다고까지 알려 주셨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대학 교수셨다. 생전에 아버지가 보고 공부했던 1990년대 교재들을 읽고 있다. 힘들다. 그런데 너무 행복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를 찾아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동아시아 지부에 속한다. 동아시아 지부는 서울, 도쿄, 베이징, 홍콩, 대만, 이렇게 5개 사무소가 있다. 각 사무소는 GPI(Greenpeace International)에서 논의된 방향을 가지고, 세부적으로 어떻게 캠페인해 나갈지 각자 전략을 구상한다. 특히 생물 다양성 캠페인은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다. 아마존에서 하는 캠페인과 한국에서 하는 캠페인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2022년 말,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에 서명했다. 그린피스는 세계 각 정부에 협약 내용의 이행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서울사무소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을 토대로 국내 보호 지역 관리 실태를 조사했다. 어떤 생물 다양성을 다룰 것인지 여러 가지 앵글로 계속 찾고 있다. 무엇이 우리나라에 가장 시급한 생물성 문제일까 찾아 가는 중이다.
생물 다양성 캠페인, 보호받지 못한 보호 지역
국내에 페이퍼 보호 지역(이름만 보호 지역인 구역)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명확한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국내 산림 정책에 이슈가 있다는 것을 듣고 공부를 했다. 경제림 육성단지 지도를 보는데 육안으로 봐도 보호 지역과 경제림 육성단지가 겹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아크지아이에스(ArcGIS)라는 지도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국내 보호 지역 중 7만ha 이상이 경제림 육성단지와 중첩되었다. 서울시 전체 면적의 1.2배에 달하는 규모다. 보호 지역은 세계 보호지역 데이타베이스(WDPA)에 기록된 국내 보호 지역을 기준으로 했다. 보호 지역이 경제림으로 조성될 경우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조사했다. 중첩된 지역 중 한 곳인 민주지산을 찾았다. 민주지산에 경제림 조성을 위해 모두베기한 임지는 11곳이 나왔다. 실제 현장을 발견하고 나니까 순간 머리가 새하애졌다.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보고서 발간 이후 민주지산의 경제림 개발이 생태계에 미치는 모습을 보여 줄 시뮬레이션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 보호 지역의 개발 행위를 방지할 법안 발의 등 보호받지 못하는 보호 지역에 대한 캠페인을 계속할 예정이다.
피스(peace)하게 !
그린피스에서 중요한 가치는 제다이스(JEDIS)다. 정의(Justice), 평등(Equity), 다양성(Diversity), 포용(Inclusion), 안전(Safety)을 말한다. 규범과 같은 것이다. 어떤 특정 인종이나 특정한 사상, 성별 등으로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다 포용 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회사가 갖추고 있다. 캠페인도 제다이스의 관점을 가지고 진행한다. 결과물을 내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피스(peace)하게 푼다'라고 말한다. 작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 성공을 못하더라도 시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숨기면서 너무나 당당하게 환경 파괴 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을 옳게 알리고 막고 싶다. 그 첫 발자국이 이번 보호 지역 이슈다. 무언가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때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글이든 단편 영화든, 죽기 전에 기록이 남겨질 만한 뭔가를 만들어 놓고 싶다.
기자수첩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2011년 개소해 기후 위기라는 큰 아젠더 아래 기후 에너지, 기후 참정권, 플라스틱 제로, 해양 보호, 생물 다양성, 기후 재난, 탈내연기관 등의 캠페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사무소는 그린피스 전체 역사를 두고 보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전 세계에서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는 사무소 중 하나다. 기후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캠페인을 진행할 때 글로벌 사무소와의 연대와 연합이 중요하다. 한국이 산업계, 문화계 등에서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후 위기에 끼치는 영향도 커졌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일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100%를 포함해 탄소중립을 달성하도록 하는 RE100캠페인에도 서울사무소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3년 진행됐던 아마존 캠페인의 경우에도 HD현대의 중장비가 아마존의 불법 채굴을 위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활동을 서울사무소와 브라질사무소가 연대해 진행했다. 그 결과 2023년 4월 28일, HD현대가 아마존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아마존 불법 채굴에 사용되는 중장비 판매 중단 선언을 하는 성과가 있었다.
멋진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