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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베카 | 가로수에 대한 인간의 예의

 

송민경 기자 2024-04-04



김레베카는 불문학을 전공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시민운동에 동참했다. 2011년부터 ‘4대강 사업’을 계기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뒤늦게 시작한 사회학 박사과정과 현장경험을 통합해 환경사회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인 가로수가 환경보호의 ’디폴트값‘이라는 일념으로 2020년 ’가로수시민연대‘를 만드는 일에 동참했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부천에서 살았다. 부천은 미세 먼지 농도가 높고 녹지 면적이 부족한 환경 도시 꼴찌였다. 특히 부천의 가로수 관리는 엉망이었다. 잘못된 가지치기 관행으로 인해 가로수가 망가지고 있었다. 보다 못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부천시민연대를 통해 서울환경연합의 최진우 대표를 만났다. 2020년,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는 연대 조직을 결성했다. 2023년 서울환경연합과 '가로수시민연대'라는 전국 네트워크 조직을 만들었다. 환경사회학자로 정치생태학의 관점으로 가로수를 바라보고 대안을 찾고 있다.


강북의 아파트단지내 잘려나간 가로수, 왜 잘려나가는지 알수없다. 이혜숙 사진 제공
서울 강북의 아파트 단지 내 잘려 나간 가로수, 왜 잘려 나가는지 알 수 없다. 이혜숙 사진 제공

가로수는 도시의 대기 정화와 미관 개선을 위해 심어진다. 철저히 인간을 위해서 심어진다. 그런데 인간들은 때가 되면 나무를 자른다. 무자비한 가지치기가 시작된다. 참혹하게 잘린 나뭇가지에서 얇은 잔가지들이 자라서 잎을 틔운 모양은 잔인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다. 잔가지에 매달린 잎들이 서럽다. 가로수 본래의 목적인 대기를 정화할 수 도 없다. 가로수는 도시인 창문만 열면 만날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연이다. 잘려나간 나무가지를 보며 자라는 도시의 아이들에게 나무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손발 잘린 가로수의 눈물


도로를 중심으로 양 옆에 있는 가로수가 절반 이상이 잘려있다. 가로수의 양 옆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고, 가로수 위로 전선이 지나가고 있다.
합천군 쌍책면 가로수의 무참한 모습 (사진: 정수근 / 제공: 김레베카)

합천군 쌍책면에 위치한 가로수는 2023년 1월 무참히 도륙당했다. 이유는 농민 백여명이 낸 민원이었다. 가로수 그늘이 경작물의 일조를 방해하고 피해가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가로수 관련 민원이 발생하면 지자체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23년 5월, 전북 부안에서는 뽕나무 수형의 가로수에 전도 위험, 오디 낙과, 병해충 등 문제가 있다며 지역 주민들이 민원을 냈다. 지자체는 가로수 관리를 지역 주민들에게 넘겼다. 가로수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가 가로수를 심고, 보호하고 관리하는가. 누가 이 가로수의 눈물을 닦아 줄것인가.


미비한 법제, 미약한 관리주체


한국의 가로수를 관리하는 것은 산림청이다. 가로수 관리 권한이 산림청으로 넘어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기존의 가로수는 도로의 부속물로 보아 건설교통부에서 관리했다. 이후 내무부에서 다시 산림청으로, 다시 건설교통부로, 지금은 산림청이 주무청이고 지자체가 관리주체이다. 지자체는 지자체의 토건동맹의 입김과 악성 민원, 미비한 법제와 자원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가로수와 도시녹지를 보호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새로 개정된 ‘도시숲법’마저 아직은 규제의 강제력이 약하고 토건위주 사업에 쉽게 악용되는 '조성·관리'만 강조한다. 지자체는 개발사업중심으로 도시숲을 조성한다. 2023년 9월 강화군에 4개의 도시공원이 조성되었다. 그중 하나는 북문 성루 앞 무성한 벚나무숲을 벌목하고 조성했다. 남산공원과 북산공원 두 곳은 이미 있던 녹지생태계를 상당 부분 훼손하면서 인공으로 조성했다. 국토교통부가 소관부처인 현행 '도시공원법'은 '도시공원 조성'을 앞세운 이러한 도심 자연숲의 파괴를 오히려 조장한다. 왜 인간들은 잘 있던 숲을 없애버리고 인공숲을 조성하는가.



가로수는 시민들에게 돌아와야 한다


대여섯 그루의 나무가 앙상하게 잘려있다.
2022년 2월 중순, 강화고등학교 앞 볼품없이 잘린 가로수 (사진: 김레베카)

현재의 법제는 기존의 가로수나 녹지를 보호하는 '복원'에 관심이 없다. 도시숲법안을 더 공고히 하여, 법제도적으로 나무·녹지 훼손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주민들이 '지역 녹지 가꾸기'에 참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도시라는 공간이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나무·녹지를 비롯한 자연생태계가 공존하는 '전환'이 일어나야 해결할수 있다. 해외의 자연복원법을 연구하고 있다. 도시숲법을 원칙에 맞춰 개정하기 위한 담론을 만들고 싶다. 시민들에게 가로수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개선 운동을 하고 싶다.

가로수는 서로 떨어져 있는 도시와 도시, 나아가 도시와 자연을 잇는 녹색 핏줄이다. 혈관을 지키지 못하면 생태계는 순환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가로수는 관리 받지 못하고 있다. 가로수를 지키는 가장 작은 첫걸음은 바로 관심이다. 내 집 앞에 있는 가로수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로수를 위한 관리 규제를 공고하게 하고 가로수를 지켜내면 좀 더 건강하고 푸른 자연에서 함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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