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2024-06-20
노동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1970년대 중반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때, 사회 변혁에 대해 '믿거나 말거나'로 생각했었고, 그 주체가 노동자라고 봤다. 일명 ‘공활’을 다니며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을 체험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친구와 선배를 잘못 만나 ‘박태주’ 하면 노동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삶을 살게 되었다. 2016년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에서 정년 퇴임을 했다. 2017년부터 2019년에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상임위원이었다. 1987년부터 이제까지 노동조합원이자 노사관계연구자로서 부단히 움직여 왔다. 이렇게 오랫동안 노동 문제에 매달릴 줄은 몰랐지만, 그만큼 재미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동운동을 하고, 노사관계를 연구하고, 정책으로 실천도 해보고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충분히 즐기며 살아왔다. 현재는 ‘60+ 기후행동’에서 활발히 기후 위기 대응에 참여 중이다. 날카로운 눈빛과 봄볕처럼 따스한 배려를 가진 박태주 박사를 만나 봤다.
시장의 전환과 노동 위기
예나 지금이나 노동 문제 최고의 관심사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어떤 목소리도 갖지 못하기에, 사실상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직하기’에 있다. 그렇기에 노동조합의 대표적 정의 중 하나가 ‘노동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체’이다. 노동조합의 정의 두 번째 관심사는 노동조합의 운영과 관련한 문제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기실 기업의 체제에 속해 있기에,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면서도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일종의 계급 조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존재한다. 이런 움직임이 1987년에 폭발적으로 등장했으나 오히려 지금 그 투쟁력이 줄어들며 노동 위기가 찾아왔다. 가장 큰 변화는 노동시장에 있다. 중소기업, 대기업, 영세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비정규직 등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다양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임금 격차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내의 불평등도가 높아지고, 노동조합이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는가 하는 새로운 차원의 위기가 등장한 것이다.
디지털과 기후 위기 속 노동, 변화를 강요받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세상의 '전환' 자체에 있다. 이른바 디지털과 기후 위기라는 이중 전환이다. 두 가지가 모두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예견되고, 이미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이 지체가 되고 있다. 이것이 두 번째 노동 위기이다. 사실 노동조합의 대응이 홀로 느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이 한참 멀었다는 점에서 노동조합도 쉽사리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기업 체제에 속한 한국의 노동조합 특성 상, 사용자에 대한 단체 교섭을 진행하는 것 외에 영향력 있는 집단 행동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 석탄화력발전소와 자동차부품 산업에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듯이,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고무되는 지금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환경과 노동, 대립할 수밖에 없을까?
1990년대 중반에, 연맹의 위원장을 했었다. 그때 우리 연맹에 소속된 노조 중 하나가 대구염색공단 노조였다. 이른바 염색 과정에서 불법 폐수 배출로 악명이 높았다. 대구 염색공단 노조가 단체 교섭을 진행하다 교섭이 풀리지 않으니, 노조 위원장이 ‘최소한의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으면, 염색 공단의 불법 폐수 방류 사실을 공개하겠다.’라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었고 실제로 공개했다. 이 사태의 결과로 위원장은 조합원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회사로부터는 징계를 받았다. 또 다른 일례가 있다. 민주노총이 탈원전 성명을 발표했을 때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의 노조가 민주노총 산하에 존재했다. 이들은 ‘조합원의 이익에 반하는 선언을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느냐.’라며 항의했다. 대구 염색공단 노조의 일에서 처음 당혹감을 느끼고, 탈원전 성명 때 또 한 번 당혹감을 느꼈다. ‘환경과 노동은 근본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의문이었다.
희생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정의로운 전환’
고용과 환경 사이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키가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를 단순히 일자리 창출이나 보존이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탄소 배출 기업의 폐쇄에 동의하는 대신 노동자와 지역 주민이 당하는 희생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만드는 과정, 즉 사회주의로 희생을 분담하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에 해당한다. 단순히 공장을 없애는 것에 멈추지 않고, 탄소 배출, 생태 보전과 관련해서 노동자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공장 내 탄소 배출 실태를 조사하고, 에너지 효율화를 고민하고, 소비와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키고, 식단을 바꾸고 통근 버스를 바꾸고 하는 그런 아주 사소한 움직임까지 모든 노력이 ‘정의로운 전환’에 해당된다. 더 이상 희생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기후 위기에 따르는 대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희생해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성장이 멈추는 사회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적 노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그러기 위해 노동 조합의 정체성을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의 기업 체제가 일반적이다. 기업 체제에서 노조의 주요 활동은 단체 교섭이 될 수밖에 없고, 단체 교섭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권한 내에서 이루어지므로 임금과 근로조건 이외에 법과 정책의 영역을 바꿀 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노동조합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경제주의에 함몰되고, 기업 바깥의 문제에 관심 두지 않게 된다. 기후 위기가 당장 자신의 근로조건과 임금,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 관심이며, 고용 문제를 넘어 삶의 질에 영향을 준다. 그러니 기업 체제를 넘어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통로 필요
노동 수요는 기본적으로 파생 수요이다. 이를테면, 노동자가 존재해서 텀블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텀블러가 소비 수요이기 때문에 노동이 이루어지는 거다. 다시 말해 노동 전환은 산업 전환의 종속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동 전환에 대한 관심은 산업 전환과, 더 나아가 기후 정치에 대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 공장’, ‘내 일자리’, ‘내 지역’을 반드시 보장해 달라 하는 것이 현실과 괴리될 수 있다. 앞으로는 다른 공장, 다른 산업, 다른 지역으로의 전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노동 전환에 따른 사회적 지원과 정책적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조합은 산업 차원, 국가 차원의 대응에 다가갈 통로를 갖고 있지 않다. 정부의 산업 정책과 노동 전환 정책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인식의 변화는 존재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특히 기후에 직접 영향을 받는 석탄화력발전소나 자동차 산업 관련한 위기 의식이 높아졌고, 사회적,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짐과 동시에, 다른 기구, 단체, 지역과 연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 내의 대응은 한계에 도달했고, 인식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전환 리스크'를 고민하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연대하길
이제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물리적 리스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무더위, 태풍 이런 과학적 지표를 넘어, 그런 리스크가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것을 '전환 리스크'라고 한다. 이를테면 야외 노동자들은 폭염과 태풍 속에서 노동 복지나 생존권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노동부는 ‘31도가 넘으면 적당히 일하세요.’라고 권고할 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 기후 위기 안에서 작업 중단권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도 전환 리스크에 속한다. 지금의 정부는 국가 운영을 포기한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든다. 사회적 약자는 기후 위기에서 기후 약자임을 알고 관심 가지며,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러니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해야 한다. 연대란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서 해야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차이를 전제로 하고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
기후와 노동 연대, 세상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
모든 시민은 노동자이다. 노동과 기후 연대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기후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열정적이나 소수에 불과하다. 엘리트 운동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래로부터의 기후운동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기후운동에 아래가 없다. 그 아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기후운동의 대중적 환산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후가 노동조합을 만나는 일이 아래의 확보가 될 수 있다. 노조와 기후가 만남으로서 시민사회로의 정당성과 기후 전문성을 확보하고,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연대의 필요성과 인식이 실제로 높아지고 있는 이때가 노동과 기후, 기후와 노동이 서로에게 미치는 상호적 영향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때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특별히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개인적 만족의 차원에서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고, 기후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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