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 하승우 | 탄소 감축 주체로서의 주민, '이후'가 중요하다
- Theodore
-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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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9 최민욱 기자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에 대한 정부의 외침이 요란하다. 각종 인센티브 제도와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체감은 미미하다. 이러한 탄소 감축 정책들이 시민을 진정한 변화의 주체로 세우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에 오랫동안 시민 참여와 정책 과정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활동해 온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현재 탄소 정책의 시민 참여 방식이 가진 한계를 진단하며, 국가 중심에서 벗어나 시민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회참여형으로의 전환이 왜 필요한지 들여다 본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은 시민 참여와 지역 자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사회운동과 연구 활동을 이어온 독립 연구자이다.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역임하며 정의로운 전환, 에너지 전환, 기후위기 대응 등의 사회적 의제를 선도했다. 2013년 수도권을 떠나 충북 옥천에 정착한 그는, 지역 기반의 자치와 자급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옥천신문과 공동체 라디오 등 지역 미디어를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며, 지역 사회의 자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화학물질안전원과 함께 지역 사고 대비 체계와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경향신문에 "하승우의 풀뿌리"를 연재하고 있다.
껍데기뿐인 참여, 정부 주도 정책의 명확한 한계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시민 참여 정책들은 과거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포인트제와 같은 인센티브 제도는 정부가 이미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내려는 일종의 계몽적 접근에 가깝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위협이 코앞에 닥친 지금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포인트제를 운영하는 것 외에 자체적인 고민과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마치 이것만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는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과거 탄소중립 시민회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민 참여'라는 말이 단순한 '동원'을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에 함께 책임을 지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처럼 시민을 정책의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여기는 시각에서는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보는 권력, 투명한 공개가 시민 참여의 첫걸음
시민들이 정책의 주체로 바로 서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바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주민 조직과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관련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참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공유된다면 기존의 다양한 주민 단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논의를 시작하고 정책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기관은 종종 "관심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변명에 불과하다. 모르는데 어떻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기후변화 관련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도 정작 시민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단순한 홍보 부족의 문제를 넘어 정보를 통제하려는 관료주의적 습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주민 갈등 역시 정보 부재와 소통 부족이 핵심 원인이다. 사업자는 주민 동의 절차를 회피하려 하고 지자체는 이를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갈등을 키운다. 이러한 부정적 경험은 주민들로 하여금 재생에너지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갖게 만든다.
정부는 사업 기획 단계부터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주민들과 함께 논의하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로부터 주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삽 뜨기 전까지 아무 정보도 안 주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주민들이 자주 찾는 도서관, 복지관 등 오프라인 공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방 의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지역 목소리를 경청하는 맞춤형 정책과 행정 변화가 필요해
획일적인 중앙 중심의 정책은 지역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이는 곧 정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국가 전체의 발전 방향이나 산업 정책, 전력 수급 계획 등은 중앙정부가 큰 틀에서 계획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시민들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평가하는 역할은 지방정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은 에너지 사용 방식, 교통 체계 등이 판이하게 다르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맞춤형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은 중앙정부가 여전히 성장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방정부는 이에 편승해 산단 유치와 같은 가시적 성과에만 매몰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농촌 지역은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감축 목표 할당과 같은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기도 한다.
농민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협조를 구하며 사업을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서 내려온 지침을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현장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행정 문화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공무원 교육 교재나 관련 법규에는 사업 기획 전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공청회 개최 등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보를 사전에 공개하거나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려 할 때 상부로부터 질책을 받는 경직된 조직 문화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환경부 산하 화학물질안전원과의 협업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보며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담당자의 의지와 더불어 조직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참여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행정기관 스스로 시민과 함께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지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단순히 시설을 짓고 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넘어 지속적인 운영과 소통을 통해 정책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말로만 그치는 교육과 예산, 실질적 변화를 위한 행동
환경 교육과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시민 참여를 촉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현재의 운영 방식은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교육의 힘을 과신하는 오류를 범한다. 교육을 통해 인식이 높아졌다 한들 이를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세계시민 의식을 갖게 되어도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포인트 적립 정도에 그친다면 허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이 기후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정책 제안을 해도 이것이 행정기관에 의해 가볍게 무시당하는 경험은 교육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나아가 냉소주의를 키울 뿐이다. 따라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는 '액션 플랜'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도 또한 지나치게 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어 실제 참여하는 소수 외에는 정보 접근성이 낮다.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배정되는 예산 규모가 작아 의미 있는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 한정된 예산을 여러 사업에 쪼개다 보니 효과가 미미한 경우도 대부분이다. 과거 일본의 혁신자치체 운동에서 단체장이 주말마다 광장에 나와 주민들과 직접 소통했던 '주말 광장' 사례처럼 보다 열린 방식의 소통과 참여가 필요하다. 회의록 공개, 온라인 참여 확대, 참여 시간의 유연화 등 젊은 세대나 직장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시민들의 다양한 제안을 수용하고 전체 예산의 관점에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논의할 수 있는 행정의 준비가 필요하다.
탄소중립, 구호가 아닌 생활 속 실천으로 나아가려면
'탄소중립'이라는 용어 자체가 갖는 장벽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탄소'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치부한다. 자신과는 무관한 문제로 여기기 쉽다. 탄소 감축은 결국 우리가 입고 쓰고 타고 움직이는 생활상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용어는 이를 별개의 문제처럼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탄소중립이라는 개념을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더 이상 정부나 전문가에게만 책임을 미룰 수 없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그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가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는 진정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시민 참여 없이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실질적인 한걸음을 띠기 어려운 단계에 와 있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이 문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