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의 저주…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까지, 미국의 에너지 지배 전략과 피해자들
-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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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김사름 기자
자원이 많다고 반드시 평화와 번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석유는 어떤 나라에는 성장의 연료였지만, 다른 나라에는 부의 편중과 제도 왜곡,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원의 저주와 미국의 에너지 지배 전략을 함께 놓고, 화석연료 질서의 한계와 재생에너지 전환의 의미를 묻는다.

에너지 지배국 선언한 트럼트 대통령…화석연료 중심 질서 재강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월 20일 취임 직후 에너지 관련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석유·가스 개발과 인프라 허가를 촉진하는 ‘미국 에너지 잠재력 해방’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2025년 2월에는 국가에너지지배력위원회(NEDC)를 출범시키며 미국을 다시 “에너지 지배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제시한 방향은 분명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중심으로 에너지 공급을 확대하고, 이를 산업과 외교,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의 배경에는 미국의 생산력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2025년 원유 생산은 하루 평균 1360만 배럴로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은 다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었고, 이 생산력은 이제 단순한 경제 성과가 아니라 외교적 지렛대로 해석되고 있다. 과거 미국이 값싼 중동산 원유에 취약한 수입국이었다면, 지금은 에너지 생산력 자체를 국제질서 재편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에너지 안보를 넘어, 재생에너지 전환 자체를 흔들려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은 허가 간소화와 생산 확대를 앞세웠고, 화석연료 인프라와 전력 설비 확장을 국가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환보다, 화석연료 중심 질서를 다시 강화하는 선택에 가깝다.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화석연료 체제를 복원하는 방식은 단기 가격 안정 논리에는 기대지만, 장기적으로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더 깊게 고착시킬 수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 미국의 귀환…중동과 남미를 공격하는 이유
미국이 석유를 전략 자산으로 다룬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73~1974년 오일쇼크는 산업국가들이 값싼 석유의 안정적 공급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바로 그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1974년 설립됐다.
이 시점부터 석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비축과 공동 대응, 외교 조율과 해상 수송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안보 자원이 됐다. 미국이 석유를 시장재가 아니라 전략재로 다루기 시작한 제도적 출발점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금융 질서가 결합했다. 미국 재무부는 고유가 시기 산유국의 달러 수입이 미국 국채와 국제 금융시장으로 재유입되는 구조를 설명한 바 있다. 흔히 페트로달러라고 불리는 이 구조는 석유 거래에서 생긴 막대한 달러 유동성이 다시 미국 금융의 중심성을 떠받치는 방식이었다. 즉 미국의 힘은 군사력과 기술력만이 아니라, 에너지와 달러, 금융과 안보가 서로 연결된 체계 위에서 작동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중동 전쟁 국면은 이 오래된 구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2026년 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닫히자 로이터통신은 최대 1500만 배럴, 세계 공급의 약 15%가 시장에서 빠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생산국이지만, 그것이 곧 중동 에너지 질서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말 호르무즈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그 해협을 쓰지 않는다면서도, 다른 나라들이 더 관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 발언은 미국이 더 이상 수입국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에너지 흐름 자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중국 견제 구도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로이터통신은 2026년 2월 미국의 베네수엘라 접근이 러시아·중국의 영향력 약화뿐 아니라 “미국의 에너지 지배” 독트린과 연결돼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또 애틀랜틱카운슬(Atlantic Council) 전문가 발언을 인용한 기사들에서도 미국의 비교우위는 에너지 생산력, 해양 안보, 에너지 흐름 통제, 그리고 국제 금융 시스템 지배력에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반면 중국은 희토류와 광물 공급망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결국 미국이 화석연료를 다시 전면에 세우는 것은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자신의 비교우위를 재확인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화석연료 질서의 비용은 다시 누가 감당하나
이 전략의 부정적 측면도 분명하다. 첫째, 화석연료 질서는 자본을 집중시킨다. 둘째, 산유지와 해상 병목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을 키운다. 셋째, 에너지 가격 충격을 세계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킨다. 2026년 3월과 4월의 시장 혼란은 이를 다시 보여 줬다.
로이터통신과 AP는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서며, 소비자 불안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생산국 미국조차 국제 가격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화석연료 질서는 다른 나라만이 아니라 미국 내부 경제도 동시에 흔든다.
넷째, 이 질서는 기후위기를 더 깊게 만든다. 화석연료를 중심에 둔 질서는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더 많은 시추와 더 많은 인프라, 더 많은 장거리 수송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더 많은 탄소 배출을 뜻한다.
미국이 에너지 지배를 말할수록,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보다 화석연료 확대 경쟁으로 다시 밀려날 위험이 커진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정책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도 이 질서의 오래된 특징이다.
일부 연구자들이 경고하는 “자원의 저주” 문제도 여기서 다시 떠오른다.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마이클 로스(Michael Ross)와 에릭 부턴(Erik Voeten)의 논문은 에너지 자립이 오히려 미국을 더 공격적이고 위험한 대외전략으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유국은 대체로 더 권위주의적이고 호전적인 외교정책, 더 높은 수준의 부패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기존 논의가 미국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논쟁적이지만, 적어도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에너지 자립이 평화를 보장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개입의 유인을 키우는가.
자원의 저주…전쟁에 노출되기도 쉬워
자원의 저주’란, 석유·가스·광물처럼 돈이 많이 되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더 불안정하고, 더 불평등하고, 더 가난해질 수 있는 역설을 말한다. 자원이 많으면 당연히 잘살아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에 대한 개념이다.
이 개념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자원의 문제를 권력 구조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석유나 광물은 특정 지역에서만 나오고, 채굴권·수출권·세금·외화 수입이 정부와 소수 기업, 군부, 정치 엘리트에 집중되기 쉽다. 그러면 국가는 시민에게 세금을 걷고 책임을 지는 구조보다, 자원 수입을 나눠 주는 구조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진다.
자원의 저주가 가난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원 수출로 외화가 쉽게 들어오면 제조업·농업·교육·기술 같은 다른 산업을 키우려는 유인이 약해지고 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는 성장의 질이 나빠져 충격에 약해진다.
자원의 저주는 부의 편중과도 연결된다. 막대한 자원 수익은 국가와 대기업, 중개 세력에게 집중되고 자원부국의 부가 국민 다수의 장기적 이익으로 가지 않는다. 자원부국이 실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특히 강하게 제기되는 이유는 전쟁과 갈등 때문이다. 석유나 광물의 지배력에 따라 막대한 외화, 무기 구매력, 정치 권력이 따라온다. 반군, 군부, 정권, 외부 세력이 모두 자원 지역을 전략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전쟁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연료 전환이 아니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화석연료 중심 질서의 구조적 취약성을 줄이는 방향의 질서 전환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 전환이 전통적 연료 공급안보 위험 노출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태양광과 풍력, 전기화는 석유와 가스처럼 매일 거대한 연료를 해협과 유조선으로 실어 나를 필요를 줄인다. 이는 호르무즈 같은 병목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의 전략적 비중을 낮출 가능성을 뜻한다.
물론 전력망과 핵심광물 공급망이라는 새로운 안보 변수도 생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석유 질서처럼 산유지, 해협, 유조선, 군사적 보호, 달러 순환에 깊이 묶인 구조를 완화하는 방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미국의 ‘에너지 지배’ 전략은 화석연료 질서를 더 오래 유지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질서의 복원이 아니라, 그것이 낳아온 독점과 전쟁, 가격 충격과 기후위기의 비용을 줄이는 방향의 전환이다.
재생에너지 중심 질서는 자동으로 평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해상 병목과 연료 수송, 산유지 통제에 과도하게 의존한 기존 질서보다 덜 집중적이고 덜 전쟁 친화적인 구조를 만들 가능성은 충분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은 그래서 탄소 감축만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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