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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확인시켜 준 기후위기 시대, 핵전쟁이 에너지전쟁으로

  • 4월 10일
  • 4분 분량

2026-04-10 김사름 기자

이란 전쟁은 핵협상 실패에서 시작됐지만, 곧바로 호르무즈 해협과 에너지 공급망을 흔드는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의 충격은 유가와 물가, 해운과 공급망으로 이어졌고, 화석연료 의존 위에 놓인 세계 경제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이번 분쟁은 안보와 에너지, 기후위기가 더 이상 분리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미 해병대 전투공격비행대대 소속 F-35C 라이트닝 II 스텔스 전투기가 지난 3일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 갑판에서 출격 대기 중인 모습.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 전단은 지난 1월 중동 해역에 배치돼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을 준비해 왔다. 사진_미 해군
미 해병대 전투공격비행대대 소속 F-35C 라이트닝 II 스텔스 전투기가 지난 3일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 갑판에서 출격 대기 중인 모습.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 전단은 지난 1월 중동 해역에 배치돼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을 준비해 왔다. 사진_미 해군

군사 충돌이 곧바로 에너지·물가·물류의 문제로 전환


2026년 봄의 이란 전쟁은 단발적 충돌이 아니라, 핵협상 실패와 군사적 선제 대응 판단,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에너지 지정학이 한 시점에 겹치며 현실화한 분쟁이다. 전쟁 직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협상을 이어갔지만, 우라늄 농축 수준과 국제 검증, 미사일 제한 범위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미사일 역량을 더는 외교만으로 관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이란은 민간용 핵농축 권리와 군사적 억지력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외교의 시간이 소진된 자리에 군사적 충돌이 들어선 것이다.


이란 전쟁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으로 본격화됐다. 그러나 전쟁의 성격은 출발 단계부터 핵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3월 중순 이후 중동 지역의 에너지 인프라가 상호 공격의 대상이 됐고, 3월 하순에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제한이 본격화됐다. 4월 초에는 해상 충돌과 공중전, 선박 통항 통제가 동시에 전개되며 분쟁의 중심축이 핵시설 타격에서 중동 에너지 시스템 전반으로 옮겨갔다.


로이터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통로다. 이 해협의 통항 차질은 군사 충돌을 곧바로 에너지·물가·물류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핵 문제로 시작된 전쟁, 에너지 체계의 위기로 확산


이번 전쟁은 명분상 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충돌로 시작됐지만, 세계 경제가 실제로 반응한 지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세계 각국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과 여부, 걸프 산유국의 수출 감소, 유가 상승, 가스 공급 차질, 해운비와 물가 상승에 반응했다.


로이터는 이번 분쟁으로 하루 1200만~1500만 배럴 규모의 공급 차질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세계 공급의 약 15% 수준이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했고, 장기화할 경우 150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전쟁의 출발은 핵협상 실패였지만, 전쟁의 체감은 에너지 충격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과 핵농축 문제가 전쟁의 직접적 발화점이었다면,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수출 인프라는 전쟁을 세계 경제 불안으로 급속히 파급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에너지 체계가 화석연료 수입과 특정 해상 통로에 과도하게 의존할수록, 군사 충돌은 빠르게 생활비와 공급망, 산업 원가의 문제로 번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3월 20일 발표에서 중동 공급 차질이 전 세계 소비자 물가와 에너지 안보에 직접적인 압박을 주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비축유 방출과 함께 수요 절감, 효율 향상, 석유 의존 완화 조치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지 않은 에너지 위기


4월 현재 전황은 종결 국면이라기보다, 확전과 교착이 동시에 진행되는 불안정한 단계에 가깝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 목표가 상당 부분 달성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전쟁의 정치적 목적이 완결됐다는 뜻은 아니다.


로이터통신의 보도를 보면 미국이 상정하는 군사 목표는 이란의 해군·공군·방공망을 약화시켜 추가 작전의 제약을 줄이고, 핵시설과 미사일 생산·발사 능력에 손상을 가하며, 이란이 호르무즈 봉쇄와 역내 공격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데 집중돼 있다. 이는 군사적 역량 약화에 관한 평가이지, 상대의 전략적 선택지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4월 4일 로이터통신은 이란이 자국 항만으로 향하는 필수 물자 선박에 대해서만 제한적 통항을 허용했다고 전했다. 이는 전면 정상화가 아니라 선택적 통제의 지속을 뜻한다. 같은 시기 한국 정부는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대사들과 만나 원유, 액화천연가스, 나프타, 요소의 안정 공급과 한국 선박 안전을 요청했다.


이는 전쟁이 여전히 해협 통제와 공급 불안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주는 외교적 장면이다. 전장에서의 군사적 우위와, 에너지 경로를 둘러싼 경제적 압박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전쟁이 쉽게 종료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공습을 통해 특정 시설과 전력을 손상시킬 수 있지만, 이란은 해협 통제와 제한적 통항, 드론과 미사일 운용, 지역 내 연계 전력을 활용해 분쟁을 지속시킬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설령 전쟁이 종결되더라도 걸프 지역 시설 복구와 수출 정상화에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현재 전황은 한쪽의 군사적 성과가 즉시 시장 안정이나 정치적 종결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다. 이 분쟁은 군사적으로는 소모전의 성격을, 경제적으로는 에너지 위기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확인시킨 기후위기의 시대


이번 전쟁이 기후위기와 맞물리는 지점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불안이 곧바로 화석연료 의존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AP통신은 이란 전쟁 이후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2월 1.9%에서 3월 2.5%로 올랐다고 전했다.


같은 보도에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재무장관들은 에너지 가격 급등이 가계와 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EU 차원의 추가 연대기여금, 이른바 횡재세 도입을 요구했다. 전쟁의 영향이 단지 군사 영역에 머물지 않고 물가와 세제, 산업정책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대응 역시 같은 구조를 보여 준다. 한국 정부가 걸프 국가들에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요청한 것은, 이번 분쟁이 원유만이 아니라 액화천연가스, 석유화학 원료, 요소와 같은 산업·생활 기반 물자의 공급에도 영향을 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는 중동의 군사분쟁이 동아시아의 산업구조와 수입의존형 경제에 직접 연결돼 있음을 의미한다. 군사적 사건이 곧바로 에너지 안보 사건으로 바뀌는 것은, 현재의 세계 질서가 여전히 화석연료 수송망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전쟁은 기후위기 시대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UN 기후수장 사이먼 스틸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분쟁을 화석연료 의존의 위험을 보여 주는 “교훈”으로 규정하며, 에너지 안보와 생활비 안정을 위해서도 석유와 가스 의존을 더 빠르게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의 분석은 영국의 경우 2026년 1분기 풍력 발전 비중이 크게 높아지면서 이란 전쟁으로 인한 화석연료 가격 급등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고 전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단지 배출 감축 수단이 아니라, 지정학적 충격을 완화하는 에너지 안보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결국 이번 이란 전쟁은 하나의 범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핵문제를 둘러싼 전쟁인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수출 인프라를 둘러싼 에너지 전쟁이기도 하다.


더 깊게 보면, 이 전쟁은 화석연료 수입 의존 위에 구축된 세계 경제가 군사적 충돌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래서 이번 분쟁은 중동의 지역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물가, 산업 원가, 공급망, 기후 정책의 우선순위를 동시에 흔드는 사건으로서 안보와 에너지, 전쟁과 기후가 더 이상 분리된 의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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