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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의 전쟁과 기후ㅣ핵전쟁과 기후위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2025-04-18 정욱식

핵전쟁과 기후위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양대 위협이다. 두 위험 모두 인간이 만들었으며, 인간의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핵무기와 달리 기후위기는 임계점을 넘기면 돌이킬 수 없어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핵전쟁이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재앙으로 인류가 1000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2년 1월 8일 70회 생일을 맞아 한 말이다. 그는 2018년 3월 14일에 사망했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의 울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크게 다가온다. ‘과거지사’로 여겨졌던 핵전쟁의 공포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설마’했던 기후변화는 위기를 지나 재앙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양대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와 기후위기는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만들어 냈고,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시야를 넓혀 빛의 속도로 발전하면서 또 하나의 절멸의 소재로 일컬어지는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 속성을 품고 있다. 인류가 권력·금욕·경쟁심이 응축된 욕망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의 ‘게임 체인저’는?


돌이켜보면 2차 세계대전 말엽부터 싹트기 시작한 전후 세계 질서의 ‘게임 체인저’는 핵무기였다. 전시 연합국들로 파시즘을 격퇴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의 등장을 계기로 잡았던 손을 놓고는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했다. 1945년 포츠담 회담 기간에 핵실험 성공 소식을 접했던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소련을 대하는 태도를 크게 바꿨다. 소련에 하루빨리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절대 무기’를 손에 쥐자 신무기의 힘으로 일본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미국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미 알고 있었던 스탈린은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츠담 회담 말미에 소련의 원자력 프로젝트의 수장인 이고르 구르차토프에게 전화를 걸어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속도를 내라”고 명령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스탈린은 몰로토프 외교장관에게 “소련은 그동안 속았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미국과 영국은 유럽과 국제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려 하지.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될 거요.”(마이클 돕스 지음·홍희범 옮김,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모던타임즈, 2018년, 498~499쪽)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8월 6일 히로시마 상공에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은 세계사의 중대 분수령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스탈린과 참모들은 원자폭탄이 “일본이 아니라 소련을 겨냥한” 것이라고 뜻을 모았다. “균형이 무너졌다”고 느낀 스탈린은 대일전 참전 일정을 앞당겼다. 당초 8월 15일로 예정되었던 참전 일을 8월 9일로 앞당겨 일본이 점령하고 있었던 만주와 사할린 지역에 대한 작전을 명령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트루먼은 윌리엄 리히 제독에게 물었다. “저 친구들, 정말 서두른 거 아닙니까?” “예, 빌어먹게도 그렇습니다. (원자)폭탄 때문입니다. 다 끝나기 전에 끼어들길 원한 겁니다.” 리히의 답변이었다.(『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526~530쪽) 그리고 미국이 선택한 것은 나가사키에 또다시 핵폭탄을 투하한 것이었다.


오엘의 경고, 영원히 '평화가 없는 평화'의 상태


이렇듯 미·영·소가 얄타에서 합의한 불안하지만 협조적이었던 얄타체제는 핵무기의 등장과 함께 냉전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를 날카롭게 포착한 사람이 바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두 달 후에 쓴 칼럼에서 “우리는 몇 초 만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한 두세 개의 괴물과 같은 슈퍼파워 국가들이 세계를 분단시키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대규모의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영원히 ‘평화가 없는 평화’의 상태, 즉 ‘냉전(cold war)’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George Orwell, “You and the Atomic Bomb,” Tribune, 19 October 1945) 이후 인류의 역사는 오웰의 경고대로 진행되었다.

1946년 7월 25일, 미군이 미크로네시아의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핵실험으로 핵무기 '베이커'의 폭발 장면. 사진_ 미 국방부, 위키커먼즈
1946년 7월 25일, 미군이 미크로네시아의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핵실험으로 핵무기 '베이커'의 폭발 장면. 사진_ 미 국방부, 위키커먼즈

미소 데탕트와 냉전 종식에도 핵무기가 '게임체인저'


그런데 매우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핵무기가 다른 의미의 ‘게임 체인저’가 되면서 미소 데탕트 및 냉전 종식에 기여한 것이다. 서로 으르렁대던 미국과 소련이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한 계기는 3차 세계대전의 문턱까지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카리브해 위기’, 쿠바에서는 ‘10월 위기’라고 부른다.

이 위기의 원인은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지만, 핵심은 핵무기에 있었다. 미국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사정거리 안에 두는 주피터(Jupiter) 핵미사일을 터키에 배치하자, 소련도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해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 역시 양측이 터키와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철수키로 함으로써 수습되었다. 미소는 나와 동맹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을 믿었던 핵무기가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핵무기 확산 방지와 핵전쟁 예방을 위한 협력에 나섰다. 핵실험 금지조약과 핵확산금지조약(NPT)은 그 산물이었다.


핵무기가 품고 있는 공멸의 두려움


1972년에 시작된 미소 간의 1차 데탕트도 핵전쟁의 공포가 나은 산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들어 미소는 핵클럽의 문을 닫고 핵전쟁 방지를 위해 협력하면서도 핵군비경쟁뿐만 아니라 핵미사일을 막기 위한 방어용 무기 경쟁에도 불을 댕겼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공멸의 위험이었다. 양측은 핵무기 통제뿐만 아니라 방어용 무기인 미사일방어체제(MD) 통제에도 나섰다. 공격용 무기를 제한하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방어용 무기를 통제하는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은 그 산물이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천명으로 종말을 고할 위기에 처했던 데탕트를 되살리는 과정에서도 핵무기는 중심에 있었다. 1980년대 미소의 핵무기 보유량은 둘이 합쳐 7만 개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악의 제국”과의 핵전쟁에서 승리를 도모하겠다며 전략방위구상(SDI), 즉 MD를 만들고자 했다. 핵군비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핵겨울(nuclear winter)’라는 말이 지구촌을 배회했고 이 공포를 물리치고자 지구촌 곳곳에서 반핵운동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그러자 미국의 레이건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핵무기 감축에 나섰고 핵전쟁 가능성의 구조적인 원인인 냉전을 종식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역설적으로 핵무기가 품고 있는 공멸의 두려움이 냉전 종식에 기여한 것이다.


21세기의 ‘게임 체인저’는?


그렇다면 불안으로 점철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게임 체인저’는 있을까? 저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지구촌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는 실존적 위협은 분명 존재한다. 바로 기후위기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데에 전쟁과 군사 활동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앞선 글들에서 다룬 바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핵무기가 절대안보와 패권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은 냉전의 등장과 격화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 핵무기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자각’은 냉전 종식의 주된 동력이었다. 이제는 전쟁과 군비경쟁이 그 자체로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연결된 위기’를 자각할 수 있어야만 전쟁·신냉전과 기후위기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지구촌을 살릴 수 있다.

핵전쟁이 기후변화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개 핵전쟁의 위험은 섭씨 3천도에 달하는 불덩어리, A급 태풍 위력에 1천 배인 핵폭풍, 그리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품고 있는 다량의 방사능 물질로 대표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십 개의 핵무기가 사용되는 소규모 전쟁만으로도 오존층의 40~70%가 파괴되고, 핵 먼지가 태양열을 흡수해 세계 연평균 기온이 1.25C 정도 떨어진다는 것이다.("Climate threat from nuclear bombs" 가디언, 2006.12.12) 태풍은 대개 비구름을 동반하지만, 핵폭풍은 뜨거울 뿐만 아니라 건조하다. 거대한 산불을 일으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On Top of Everything Else, Nuclear War Would Be a Climate Problem" 아틀란틱, 2022.03)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 수온 상승으로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일대 대규모 산호 백화 현상이 발생했다. 사진_오리건 주립대학교, 위키커먼즈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 수온 상승으로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일대 대규모 산호 백화 현상이 발생했다. 사진_오리건 주립대학교, 위키커먼즈

핵전쟁은 통제 가능하나, 기후위기는 임계점을 넘기면 돌이킬 수 없다


핵전쟁과 기후위기가 절멸의 위험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핵전쟁의 공포는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후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또 한때 7만 개에 달했던 핵무기 숫자가 오늘날에는 1만2천 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아직 안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핵의 위험이 커질수록 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인류사회의 노력도 배가되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즉 임계점을 지나면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섭씨 1.5도는 이를 대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인류의 안전 및 생태 보전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선’으로 제시한 수치이다. 각국이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대비 2도, 더 나아가 1.5도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과 그 이후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한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2019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84%를 줄어야 하고 이에 앞선 2030년까지는 43%를 줄어야 한다. 그러나 2030년까지 오히려 탄소 배출량이 약 14%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실제로 ‘기후 재앙을 막는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1.5도 선'이 2024년에 처음으로 뚫렸다고 한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이 15.1도로,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에 견줘 1.6도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파리협정의 목표는 10~20년 이상의 장기 측정치를 기준으로 하는데, 아직 이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기후재앙 '1.5도 마지노선' 첫 붕괴...작년 지구 가장 뜨거웠다", 한겨레신문, 2025.01.12) 동시에 2023〜2024년이 2년 연속 ‘가장 더운 해’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핵무기에 비해 기후위기에 대한 인간의 자각 능력이 부족한 데에는 위기의 속성이 다르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핵무기는 인간이 쬐고 있는 불 옆에 있는 폭탄과도 같다. 그래서 인간은 불이 폭탄에 옮겨 붙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조심한다. 반면 기후위기는 인간이 몸을 담그고 있는 가마솥과도 같다. 그래서 제 몸이 익는 줄도 모르고 안락함을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처럼, 핵전쟁과 기후위기가 품고 있는 인류 문명의 파멸 위험은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마이클 돕스 지음·홍희범 옮김,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모던타임즈, 2018년.

George Orwell, “You and the Atomic Bomb,” Tribune, 19 October 1945.

"Climate threat from nuclear bombs" 가디언, 2006.12.12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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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Apr 21

핵전쟁과 기후위기 의 차이점에 대해 환기시켜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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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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