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planet03 DB
내가 산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친구 따라 처음 산행을 하면서다. 그 후 주말마다 첫 차를 타고 우이동에 내려 북한산국립공원 백운대에 올랐다. 어둠 속에 시작한 산행은 정상에 오를 때까지 마주치는 사람 없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홀로 걷는 내내 이어지는 생각은 합죽선이 꼭짓점을 향하듯 늘 한 곳으로 모였다. '왜! 사는가?'
산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산악 구조를 하고 싶어 ‘응급구조사’가 되었지만 산이 아닌 병원에서 보낸 생활은 생각과 달랐다. 응급실에서 매일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죽음 앞에 무감각해지는 나를 보면서 결심했다. '한 번 사는 삶인데,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 보고 죽자.'
우이령 사람들을 만나다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 사람들’은 1994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20대였던 나에게 ‘우이령보존회’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던 대학 같은 곳이었다. 우이령보존회에는 산악인, 출판인, 언론인, 대학교수, 교사, 농민, 숲해설가, 문화해설사, 언론인까지 수십 명의 활동가가 있었고, 이 분들은 실무자인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학생 한 명에 수십 명의 교수들이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는 대학이었다. 나는 5년 동안 시민 활동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문경에 집을 짓다
서울에서 우이령 보존회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가로 생활하면서 나는 ‘자연 보전과 현장 활동’이라는 화두에 매달리고 있었다. 귀산촌의 정착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곳은 문경이었다. 월악산국립공원과 문경새재도립공원의 경계이면서, 백두대간 자락의 한복판에 내 손으로 집을 지었다.
“귀농해서 무슨 농사지어?”라고 물어보면 나는 “자식 농사요.”라고 답한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아이들은 부모가 키우는 거야. 그때가 아이들이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할 시기이며, 부모가 역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때야!” 유아교육을 전공한 옆 지기의 주장이었고, 나는 기꺼이 공감했다.
나는 ‘한살림생산자단체’인 ‘눈비산마을’에 1주일에 2~3일만 나가기로 했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옆 지기와 함께했다. 남녀가 함께 양육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을 혼자서 바꿀 수는 없지만, 나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들은 보육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옆 지기의 주장은 근거가 있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지역 활동을 시작했다.
‘그루매니저’가 되다
첫 시작이 ‘그루매니저’였다. ‘그루매니저’는 산림청 한국임업진흥원의 일자리발전소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산림 분야의 예비 창업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지역의 산림 자원을 조사하고 이것을 활용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며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창업까지 해내는 일이다. 5명 이상의 주민을 ‘그루경영체’로 조직해야 하고, 이 ‘그루경영체’를 5개까지 매니지먼트를 해야 한다. 경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문경 ‘그루매니저’로 3년을 활동했고 지난해 우이령 사람들 사무국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국민의 숲을 만들자
‘농부의 남편’과 ‘세 아이의 아빠’에서 ‘지역 활동가’의 삶이 추가되었다. 집도 지어 봤고, 옆 지기는 인정하지 않지만 가사와 육아도 함께하고, 농사도 짓고,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운영해 봤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모아 산림을 보전하는 지역의 복합 경영 모델을 찾고 싶다. 가족이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장 운영, 거주지 내 수목장, 텃밭 태교로 가족 공원 만들기, 텃밭에서 밥상까지 이어지는 건강한 밥상 프로젝트, 음식 치유와 발효 연구, 동네 부엌 만들기 등,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 사람들 윤여창 회장님이 도움이 될 일이 없냐고 말씀해 주었고, 경상북도 문경시의 국유림에서 이것들을 실현해 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국민의 숲’ 협약이 체결됐다. 국유림을 통해 지역 문제이기고 하고 국가적 과제이기도 한 ‘인구 소멸’이란 숙제를 풀어보고 싶다.
나는 꿈꾸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 것 같다. 나는 꿈꾸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 활동가다. 미래 세대에게 내가 포기하지 않은 꿈을 전달해 주는 길라잡이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지역 활동가는 그물코처럼 연결된 복잡한 구조를 잘 결합해내야 한다. 20대부터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래서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고민해서 풀어가기에 딱 맞는 삶을 살아왔다고 나를 응원한다. 오늘도 나는 ‘소설’을 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섭외한다. 그들이 이 소설을 실화로 만들어 줄 것이니까.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대하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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