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송민경 영상기자 2024-03-26
패션 산업이 성장며 의류쓰레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지속가능한 의생활 캠페인을 진행하는 '다시입다연구소'의 정주연 대표는 그 해답을 찾고 있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방법'으로 '다시 입을 때까지' 연구하겠다는 생각이다.
의류, 인류를 덮치다
‘숍스캄(Köpskam)’이라는 단어가 있다. 스웨덴어로 ‘소비의 부끄러움’이란 뜻이다. 소비가 부끄럽다고 외치며 환경 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봤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가장 와닿는 분야가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의생활에 집중하게 되었다. 패션 산업은 환경 파괴를 야기하는 산업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헌 옷을 해외로 많이 보내는 국가 5위에 올랐다. 인구 대비 정말 엄청난 수치이다. 선진국에서 버린 옷은 개발도상국에서 쓰레기 산을 이룬다. 의류 공장의 노동자들은 의류 생산에 사용되는 화학물로 인해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도 부족한 실정이다. 새 옷에 묻은 화학물은 소비자의 피부에 닿아 건강을 해친다. 의류 소비로 인한 부작용은 결국 개인에게 되돌아온다. 재활용과 새활용(upcycling)은 완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버려진 의류 중 1%도 안 되는 옷만이 기업 기술을 통해 재활용된다. 개인이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은 재사용이다. 이제는 소비자 주도의 재사용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할 때다.
버리지 않고, 사지 않는 노력
소비에서 폐기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경제 고리가 변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을 고쳐서 오래 쓰고, 쓰지 않는 것은 타인과 공유한다. 버리지 않고 사지 않는 노력을 함으로써 의생활의 순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이 과정의 핵심은 소비자이다. 쓰고 또 쓰다 보니 이제는 정말 버리는 것밖엔 방도가 없는 수준까지 도달해야 패션 산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줄어들 수 있다. 개인의 변화가 곧 기업과 사회의 변화로 이어진다. 현재는 싼 옷을 여러 벌 사서 금방 버리고 다시 소비하는 패스트 패션의 시대이다. 한 발짝만 나아가, 옷 한 벌을 사더라도 얼마나 오래 입을지를 고려하는 문화가 널리 형성될 때 기업도 패스트 패션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거창한 이유를 내세우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환경을 위해 무조건 후줄근해도 오래 입어야 해, 끝까지 막 입어.’ 이런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옷도 취향에 맞아야 입는다. 지극히 나를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하고 싶다.
옷장 속에 남아 도는 옷 , 21%의 파티
다시입다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대표적 활동이 바로 '21%파티'이다. 사람들이 구매한 뒤 입지 않고 옷장 속에 남아는 옷이 평균적으로 21%라고 한다. 옷장 속 21%를 교환하여 의류 소비를 줄이겠다는 것이 '21%파티'의 취지이다. '즐겁고 재미있게 참여하자'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행사 대신 파티라는 명칭이 붙었다. 사소한 것 같은 관점의 차이가 MZ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환경 행사라고 하면 무겁고 재미없어 보이는 일이 다시입다연구소에서는 재미와 감성을 나누는 곳으로 탈바꿈한다. 파티가 진행된 지 3년차였던 2023년에 특히 많은 성과가 있었다. 2023년 파티 참가자수만 2,139명(3년 누적 참가자 수 4,357명)이었으며 의류 교환률도 71.4%로 증가했다. 그간 교환된 의류 9,969벌은 1년 간 약 3000명이 마실 수 있는 물을 절약한 것이며, 74,756kg의 탄소량을 저감시킨 효과가 있다. '21%파티'를 직접 주최하는 호스트가 되겠다고 자진한 사람들의 수도 증가하였다. 3년 누적 61명의 호스트 중 52명의 호스트가 2023년에 참여한 수이다.
감성을 교환하고 관계를 만든다
2030 세대가 21%파티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옷 태그'에 있다. 교환할 옷을 가지러간 사람은, 파티에서 제공하는 태그에는 옷을 사게 된 이유, 교환하는 사연,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SNS계정을 적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져온 옷의 사연과 마음을 고심하여 적는다. 옷을 고르는 사람들도 그 내용을 유심히 읽고 결정한다. 자신의 옷을 누가 가져가는지 기다리며 보고 가는 사람도 있다. 서로 취향이 맞으면 SNS 아이디를 공유하며 친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 입는 옷을 처분한다는 생각으로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제는 ‘내 옷이 새로운 인연을 만났으면 좋겠다, 나도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하는 마음으로 교환에 임한다. 옷 교환에 감성을 더한 아이디어가 재참여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저 지난 일 년 동안 옷 한 벌도 안 샀어요.”라든지, “여기서 친구를 만나 계속 옷을 교환했어요.”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21%파티'는 2030 세대의 가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하나의 놀이이자 사교의 장인 것이다.
재미있고 힙한 수선
2023년부터 중점을 두어 진행하는 수선 캠페인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을 위한 수선'을 제 1가치로 내세우기보다 '재미있고 힙한 수선'을 목표로 삼았다. 수선 자랑 공모전을 열어 개성이 들어간 수선 용품의 귀여움을 뽐내기도 하고, 티나게 예쁜 수선을 위한 워크숍이 열리기도 했다. 2023년 한 해에만 수선 예술 워크숍 운영수와 참여자 수가 3년 누적 통계의 절반을 넘어섰다. 수선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가치에는 환경 보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착과 감수성, 성취감 그 모든 것이 수선 캠페인에 참여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에 수선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 된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밌어야 한다. 이런 목적 의식으로 2024년엔 수선 캠페인을 더 확장할 계획이다.
2030 여성부터 모든 성별과 세대를 아우르다
사람들은 함께 수선하고 교환하면서 관계를 맺는다. 심각하고 무겁고 어렵고 귀찮은 운동보단 힙하고 매력적인 이미지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입다연구소가 성장할 수 있던 비결이다. 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MZ세대, 2030 여성들이 큰 힘이 되었다. 가치 소비에 관심을 갖는 젊은 여성들은 환경을 실생활과 접목하며 만족을 느낀다. 이들은 다시입다연구소의 캠페인이 지속되길 바라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애인, 친구부터 시작해 엄마, 아빠까지 모든 성별과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21%파티에 참여한다. 수선 문화 캠페인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진다.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나란히 앉아 바느질하는 모습이 오순도순 참 좋아 보인다. 재사용이라는 의생활 문화가 즐겁게 점조직화 되어 퍼져나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겠습니다
통번역을 하던 시절부터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했다. 환경은 그만큼이나 전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그 이후 독립 출판을 하다가, 의생활에 관심을 가지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대표로서 책임감도 느낀다. 스스로에게 거창한 서사는 없다. 환경이라는 거대 담론에서부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캠페인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창의적이다. 환경이라는 것이 남을 위하고, 생태계를 위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환경이 곧 나이기에, 내가 잘살기 위해, 나의 만족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매일을 무사하게, 편안하게 지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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