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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먹거리 정의ㅣ동물 사육은 동물 복지와 먹거리 윤리에 근거해야

 

박진희 2024-04-11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40여년 동안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웅담을 채취당한 곰


묵묵하고 우직한 사람을 우리는 곰 같다고 말한다. 단군 신화 속 곰이 삼칠일 동안 어두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동화가 원작이라는 디즈니 캐릭터 '곰돌이 푸'는 우리 모두의 친구라도 되는 듯 마냥 귀엽다. 때론 우직하고, 때론 귀엽고, 곰 발바닥 놀이가 있을 정도로 곰은 한국인에게 친숙하다. 그러나 곰은 빠르며, 실제로 만나면 생사를 가르는 무서운 동물이다. 무엇보다 곰은 멸종위기종이다. 동물원에 갇혀서 자유를 잃어버린 것 말고, 곰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 싶겠다. 하지만 지난 40여년 동안 곰은 웅담 채취를 위해 좁고 오물이 가득한 비위생적인 시설에 갇혀 사육되어 왔다.


멸종위기종이지만, 도살이 가능하다?


1981년 정부는 농가에 어린 곰, 웅담, 피, 가죽을 수출하라며, 곰을 일본,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수입하는 것을 허용하며 권장했다. 곰은 잡식성이고 아무거나 먹일 수 있으니 키우기도 쉽다고 했다. 이름하여 농가 소득 진작을 위한 특수가축 사육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의 여러 농가들이 동남아시아에서 곰을 수입해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외 수요는 예상보다 없었고,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동물보호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높아지면서 1985년 정부는 곰의 수입을 금지했다.

1993년 한국은 멸종위기종의 수출입을 전면 금지하는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협약’(CITES)에 가입했다. 1999년 사육곰의 관리부처를 농림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의 특수가축 사육 권장에 따라 곰을 사육해 온 농가들에는 아직 팔리지 않은 곰이 남아 있었다. 번식하여 어린 곰이 태어나기도 했다. 정부는 사육된 곰들에게 적용할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이 법은 10살이 넘은 곰의 웅담을 채취해 도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0살 넘어 웅담을 빼내고 도축되기도 했지만 살아있는 곰에게 튜브를 꽂아 쓸개즙을 채취하기도 했다. 웅담 외 다른 용도로 곰을 키울 수 없지만 불법 도축 후 한 마리 수천만원을 받고 곰고기를 판매하는 농가도 있었다. 쓸개즙을 채취당한 곰은 별도의 처치 없이 그대로 오물투성이 사육장에 방치되었다. 곰은 2005년 야생동식물보호법에 따라 국제멸종위기야생동물로 규정되어있지만 여전히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이 가능하고, 그래서 불법 도축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육 농가와 사육되고 있는 곰,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상황의 지속이라니!


수천 명의 시민이 사육곰 서포터즈가 되어


나는 2008년 환경단체인 녹색연합 정책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사육곰 문제를 처음 알게 되었다. 곰을 사육하는 방식, 쓸개즙을 채취하는 과정 모두 충격적이었다. 뜬장에 갇힌 사육곰이 사육장을 탈출해 사살되는 사건이 여러 차례 생기기도 했는데 이 사건들은 낡고 더러운 사육 환경의 문제점과 더불어 사육곰 산업이 시민 안전에 얼마나 위협이 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일했던 녹색연합은 사육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웅담 거래 실태 조사, 곰 사육 농가 조사, 웅담 대체 한의학 보고서 발행, 관련 법 개정 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환경단체들이 사육곰 문제에 힘을 모았고, 수천 명의 시민들은 사육곰 서포터즈가 되어 사육곰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이 현실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곰은 잘못된 사육 정책과 보식 문화에서 벗어났다. 사진_동물자유연대(www.animals.or.kr) 제공


동물 사육은 동물 복지와 먹거리 윤리에 근거해야 한다



2023년 12월 국회는 본회의를 통해 사육곰 산업을 종식시키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개정된 법에 따라 2026년도부터 누구도 사육곰을 소유, 사유, 증식시킬 수 없고, 사육곰과 그 부속물(웅담)을 양도 양수하거나 운반, 보관, 섭취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남은 사육곰 보호 시설을 직접 설치 운영하거나 공공기관 등에 이를 위탁할 수 있다. 정부의 사육곰 보호시설이 현재 남아있는 사육곰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40년간 계속된 시민들의 노력은 정부의 잘못된 사육 정책으로 시작된 곰산업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동물 학대를 기반으로 한 보신 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우리는 동물을 먹고 산다. 어차피 먹으니 함부로 해도 될까? 그렇지 않다. 동물을 키우고, 도축하는 그 모든 과정은 동물 복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특정 부위만을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식생활도 정부 정책도 먹는 것에 대한 윤리를 근거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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