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ㅣ식품의 쓰레기화 막는 사회로 나아가야

 

박진희 2024-03-27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의 생산자

     

지난 2021년 7월, 음식물 쓰레기 처리업체의 한 노동자가 음식물 쓰레기 저장소에 떨어져 생을 달리했다. 깊이 3m의 저장소. 음식물 쓰레기는 마치 늪과 같아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를 구하기 위해 크레인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그는 무사하지 못했고, 그를 구하려 애쓰던 동료도 저장고에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지난 2023년 4월에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 적재함에 끼어 어느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이런 사망사고를 관련 회사가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음식물 쓰레기 생산자로 살아가고 있다.

     

식량 위기의 원인, 식량 손실 30%

     

유엔식량농업기구, 세계식량계획 등의 기구는 지난해 5월 ‘2023 세계 식량 위기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2억5800만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식량 위기 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식량 위기의 주요 원인은 식량 손실이다. 식량 손실은 전 세계 생산량의 30%로 추산된다. 13%는 수확 후 소매업에 이르는 공급망에서 손실되고, 17%는 가정, 식품 서비스 및 소매업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사라진다. 이런 식량 손실의 주요 원인은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못난이 농산물'의 폐기 문제

     

우리가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부르는 이형 생산물, 크기가 작은 농산물은 식탁에 오르지 못하고 폐기된다. 농산물의 상품성은 모양과 크기를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상품성이 없는 농산물은 팔리지 않는다. 가공을 한다 해도 헐값에 가공생산자에게 넘기게 되거나, 자가 가공시 오히려 비용 투입이 많아진다. 그러니 농부 입장에서는 밭에서 갈아버리는 편이 그나마 돈을 덜 쓰게 되는 일이 되고 만다. 울며 겨자 먹기로 농산물을 키운 생산자 스스로 농산물을 폐기하는 상황이 반복해서 발생한다.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 농부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디스코 수프’, ‘요리가무’ 캠페인

     

먹을 수 있는 생산물이 버려지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2010년대부터 독일, 영국 등의 먹거리 활동가들은 ‘디스코 수프’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디스코 수프’는 버려질 게 뻔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 대중적 활동이다. ‘디스코 수프’에 참여한 시민들은 유통 과정의 문제점에 공감하며 실천을 함께하는 시민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슬로푸드 운동을 하는 청년들이 이에 착안해 ‘요리가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세계 각지에서 유통 과정에서 식품이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캠페인 뿐만 아니라 못난이 농산물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기업이 생겨나기도 했다. 한국에도 관련된 여러 스타트업 기업이 생겨났다. 지난 2016년 덴마트 코펜하겐에는 식품 폐기의 대안을 만들고자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라벨이 손상된 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사회적 슈퍼마켓이 등장했다. 이 수퍼마켓은 가격도 저렴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유통기한’이 아니라 ‘소비기한’ 표시제

     

농산물 뿐만 아니라 가공식품도 버려진다. 주로 유통기한이 폐기된 상품이 버려지는데 유통기한이 곧 소비기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되면 식품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는 사회적 여론에 힘입어 2024년 1월부터 우리나라도 소비기한 표시제가 본격 시행되었다.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음식물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국가이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이 제도화되어 있으므로 음식물 쓰레기 배출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도 매우 높다.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도 다른 나라에 비해 잘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음식물 쓰레기도 줄어든다?

     

거기에 더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해졌다. 자원을 낭비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는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가 온실가스의 주범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등의 탄소중립식생활을 교육한다. 못난이 농산물을 파는 가게가 생겨나고, 음식물 쓰레기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탄소중립식생활을 배우면, 버려지는 농산물이 줄어들고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게 될까? 아니면 기후위기로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어 버려지는 농산물이 줄어들고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게 될까? 현재 기후 상태라면 후자가 더욱 명백해 보인다.

     

이형 농산물 유통에 대한 국가 정책, 대기업 참여 절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식량 위기라는 더 큰 재앙을 몰고 온다. 하루라도 더 빨리 대안적 행동을 해야 한다. 식품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개인과 민간의 활동은 한계가 명백하다. 오늘 우리가 생산하는 것이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국가적 제도로 일상화된 것처럼 이형 농산물 유통에 대한 국가적 정책, 대기업의 참여,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이 고도화되어야 한다. 이런 전제가 없다면 식품의 쓰레기화는 계속될 것이다.



댓글 0개

Comments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