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에서 오신 국장님께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서…'라는 표현을 여러 번 쓰셨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백사람의 백가지 다른 의견을 다 모아 놓고 중위값을 매기시겠다는 건지요? 권기원 교수님의 토론문에 '제3의 대안이 필요'라는 말도 역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왜 '제3의 대안'이 필요한지요? 엄연히 정부가 했던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하루아침에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저는 우리 시민사회가 2014년부터 2018년의 기간 동안 어떻게든 정부로부터 최종 복원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려고 얼마나 험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직접 봤습니다. 특히 녹색연합과 우이령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얼마 전 작고한, 우리령사람들의 회장이었던 이병천 박사님이 처음 FIS 규정집에서 '2 Run' 규칙을 발견한 날 저녁,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남준기 기자와 함께 제게 문제의 규칙을 설명해 주시던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산림청은 이 가리왕산 사안과 관련해서 중앙정부의 핵심기관입니다. 이제 와서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대안'이 다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듯, 그렇게 뒤로 물러나 손 놓고 앉아 있지 마십시오. 저희가 요구하는 건 단순히 '약속을 지키라!'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리왕산 같이 막대하고 중요한 사회생태체계를 지금의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하게 관리해 나가려면 세계 주류 거버넌스 이론이 가리키듯 적응적(adaptive)이고 변형적(transformative, 전환적)인 거버넌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 어떤 '대안'이 과연 '옳을'지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리고 마치 당장 개발을 안 하면 ”사람 사는 정선“이 불가능하기라도 할 것처럼 깊은 미몽에 빠져 있는 지자체에 가셔서 계도를 좀 하십시오. 과학적 수치들도 이미 다 나와 있지 않습니까, 케이블카 놓고 '국가정원' 사업하면 정선군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지자체 외 시민사회 사이에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것은 순전히 정부가 약속을 깨버렸기 때문입니다. ‘4대강사업’이나 똑같습니다. ‘국가’가 기망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한가하게 '폭넓은 의견 수렴'이나 하고 있으실 겁니까? 정부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당장 지역별, 시기별로 단계를 세세히 나눠서 가리왕산 복원의 프레임워크와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와 주십시오.
국제스키연맹(FIS) 규정집_ '2런레이스 규정': 개최국의 지형 여건상 800m 이상 표고차에서 경기가 불가능할 경우, 800m의 절반(350∼450m)에 해당하는 표고 차에서 두 번의 경기를 치른 뒤 기록을 합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굳이 가리왕산에 활강코스를 짓지 않아도 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