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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공포가 비켜 간 재생에너지 국가들

  • 4월 10일
  • 4분 분량

2026-04-10 김사름 기자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를 공포로 모는 듯 했다. 해협 하나에 기대 왔던 화석연료 중심 세계 에너지 질서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반면 화석연료 의존을 꾸준히 낮춰 온 국가는 이번 에너지 쇼크를 비켜 갈 수 있었다. 호르무즈의 공포가 일부 국가를 비켜 간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에너지 체계의 차이가 만든 결과였다.


유조선 2척이 이란 선박 추정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모습.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취임 후 낸 첫 메시지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계속 봉쇄해 적을 압박해야 한다”며 “걸프국을 계속 공격해 미군 기지를 즉시 폐쇄하라”고 밝혔다. 사진 AP
유조선 2척이 이란 선박 추정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모습.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취임 후 낸 첫 메시지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계속 봉쇄해 적을 압박해야 한다”며 “걸프국을 계속 공격해 미군 기지를 즉시 폐쇄하라”고 밝혔다. 사진 AP

해협의 의미, 공포의 숫자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흔들린 나라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의 해상 통로이지만,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는 병목 구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이 해협은 평상시 하루 약 2천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지나가는 길목으로,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와 맞먹는 규모다.


2026년 봄 이란 전쟁으로 이 통로의 선박 운항이 급격히 줄자,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를 세계 석유시장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차질로 평가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디젤·항공유·액화석유가스(LPG·Liquefied Petroleum Gas) 가격이 더 큰 폭으로 뛰자, 문제는 더 이상 중동 지역의 군사 충돌에 머물지 않았다. 에너지 가격, 운송비, 생활비, 산업 원가를 동시에 밀어 올리는 세계 경제의 충격으로 확산됐다.


이번 위기에서 먼저 드러난 것은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취약성이었다. 로이터통신(Reuters)은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Plus) 내부에서 하루 1200만~1500만 배럴 규모의 공급 차질 가능성이 논의됐다고 전했다.


같은 보도는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했고, 장기화할 경우 150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독일의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전쟁 여파를 반영해 2026년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물가 전망은 높였다. 유로존에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해 연대기여금, 이른바 횡재세 논의까지 재점화됐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이 곧바로 에너지·물가·재정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같은 충격, 다른 결과


모든 국가가 같은 정도로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이번 위기는 재생에너지와 비화석 전력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는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로이터통신은 2026년 1분기 영국의 풍력 발전량이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했고, 전체 전력 생산에서 풍력이 약 42%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바이오매스 발전이 늘면서 가스발전은 16% 줄었다.


그 결과 이란 전쟁 이후 가스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영국의 도매 전력가격은 독일이나 이탈리아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됐다. 연료를 계속 수입해야 하는 전력 체계와, 설치 이후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 전력 체계의 차이가 위기 상황에서 실제 가격 차이로 나타난 셈이다.


프랑스의 대응도 주목할 만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4월 2일 12기가와트(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입찰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해상 풍력 10기가와트, 태양광 1.2기가와트, 육상 풍력 0.8기가와트가 포함됐다.


프랑스 재무장관 롤랑 레스퀴르(Roland Lescure)는 이번 조치가 수입 석유와 가스 의존을 더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프랑스가 원자력 중심 전력체계를 이미 갖춘 덕분에 이번 위기에서 일본보다 덜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가정용 전력 가격이 이탈리아보다 30~35% 낮다고 전했다. 중요한 점은 프랑스가 이번 전쟁을 단기 위기로만 보지 않고, 에너지 주권과 산업 공급망 재편의 계기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찰에는 유럽산 부품을 우대하는 ‘회복력 기준’도 포함됐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정책, 재생에너지 확대가 한 문장 안에 들어온 것이다.


독일 기업 베르비오(Verbio)는 현지 유기성 폐기물과 농업 부산물을 원료로 바이오메탄과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구조 덕분에 이번 전쟁의 직접적 타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왔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천연가스와 디젤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오히려 자사 사업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르비오 주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이 시작된 2월 말 이후 약 60% 상승했다.


특히 유럽 운송업계에서 저렴한 디젤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대안을 찾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빠르게 늘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이오연료가 기후 담론만이 아니라, 공급 차질에 대한 지역 기반 대체 수단으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국가들이 덜 흔들린 이유는 단순하다. 전력 생산비의 상당 부분이 연료 조달비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풍력과 태양광, 원자력, 바이오연료는 각기 성격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가스 물동량에 대한 직접 노출이 화석연료 발전보다 낮다.


로이터통신의 분석은 이번 이란 전쟁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기후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정책으로 다시 보게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사무총장 사이먼 스틸(Simon Stiell)도 화석연료 의존은 소비자들을 지정학적 충격과 가격 변동성에 노출시킨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전환이 장기 감축 목표의 문제일 뿐 아니라, 위기 때 국가경제의 충격 흡수력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뜻이다.


국제에너지기구 역시 같은 방향을 제시했다. 3월 20일 발표한 분석에서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분쟁 대응책을 단순한 비축유 방출로 한정하지 않았다. 수요 절감, 효율 향상, 도로·항공·산업 부문의 연료 사용 감축을 함께 제시했다.


공급 확대만으로는 이번 충격을 감당할 수 없고,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 회원국들은 3월 11일 비상 비축유 4억 배럴 방출에 합의했는데, 국제에너지기구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위기의 해법이 더 많은 석유 확보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고 재생에너지가 즉시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생에너지의 일방적 승리는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유럽에서 화석연료 가격 급등이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 압력을 높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시장 변동성과 금리 상승 전망이 프로젝트 투자에 부담을 준다고 보도했다.


3월 26일 기사에 따르면 전쟁 이후 원유 가격은 50% 넘게, 가스 가격은 60% 넘게 올랐고, 그 여파로 유럽중앙은행(ECB·European Central Bank)과 영국중앙은행(BOE·Bank of England)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커졌다.


에너지 전환 펀드 스페스엑스(SpesX)의 루카 모로(Luca Moro)는 높은 전력 가격이 수익을 올려주는 동시에, 자본비용 상승이 프로젝트 경제성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이 말한 “재생에너지의 역설”이다. 위기가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을 높이지만, 같은 위기가 그 투자비용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책도 같은 딜레마를 안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유럽 정치권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재생에너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가격 안정을 이유로 기후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고 전했다.


가디언(The Guardian) 역시 일부 국가들이 단기 전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석탄 사용을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이번 위기는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을 강화하면서도, 당장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가장 탄소집약적인 연료가 다시 선택되는 모순도 드러냈다.


호르무즈가 남긴 교훈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단일 병목에 세계 경제가 이처럼 크게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현 에너지 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뜻한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원자력, 바이오연료, 전기화, 효율 개선 등으로 화석연료 수입 의존을 낮춘 국가는 같은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영국의 전력 가격, 프랑스의 추가 입찰, 유럽의 바이오연료 수요 증가는 모두 그 점을 보여 준다.


이번 전쟁은 재생에너지가 단지 배출 감축을 위한 선택지가 아니라, 해상 봉쇄와 가격 급등, 지정학적 충격을 견디는 에너지 안보 수단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켰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 국가들도 인플레이션과 금융비용 상승, 공급망 압박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번 이란 전쟁은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히 했다. 화석연료 수입과 해협 통과에 대한 의존이 낮은 국가가 전쟁의 충격을 적게 받았다는 것이다. 호르무즈의 공포가 일부 국가를 비켜 간 것은 우연이 아니라, 에너지 체계의 차이가 만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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