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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특강

일시 | 매주 금요일 PM 4시  2024. 01.05~ 2024.04.05

대한민국 최고 산림학자들에게 듣는 숲 아카데미

이돈구 | 서울대 명예교수 

산림생태복원을 위한 국제협력과 우리의 역할

김정인 | 중앙대 명예교수 

국내외 탄소중립 전략과 산림의 역할

손요환|고려대학교 교수

기후변화와 산림 그리고 탄소

이강오|한국임업진흥원 원장

지역임업, 지역산림경영

장소 | 성공회대학교 피츠버그홀 

planet03 DB

전영우 |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숲과 한국문화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창재 원장님께서 저한테 부여한 주제가 숲과 한국 문화입니다. 그래서 왜 이 주제를 저한테 하필이면 주셨을까? 플래넷03에서 숲이란 용어를 썼지만 12주 강의 중에 숲이란 용어가 들어간 주제를 발표한 분들은 별로 많지 않았어요. 다 산림이지. 각별히 생각하셔서 저한테 이런 강의 기회를 주셨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실 24~25년 전에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30년 전에 우리 사회가 산림이라는 용어에 익숙해 있을 적에 숲이란 용어를 썼고, 그게 여기 계신 이수용 사장님 덕분에 『숲과 한국』을 펴낼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책은 2004년에 일본 동경에 있는 국사관행에서 일본 판으로 출판되었고, 2010년 유프로(IUFRO, 국제임업연구기관연맹) 세계총회를 기해서 한국에서 영문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것은 이 책보다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해서, 기후 위기의 시대, 생태 위기의 시대, 우리 숲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를 되돌아봐야 된다는 관점에서 과거의 숲을 이야기하면서 미래의 숲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소금(자염), 경복궁, 조운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소나무입니다. 저 세 가지는 소나무를 땔감으로 해서, 건축재로, 조선제로 해서 우리들은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이야기를 오늘 하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소나무에 이른바 몰입해서 1993년부터 책을 펴내고, 2002년부터 2년 전까지 소나무와 관계되는 여러 책들을 써냈습니다. 점선으로 된 것은 공동 저자들이 한 것들이고 나머지 실선으로 된 것은 저의 단독의 저술들입니다. 그래서 소나무에 대해서는 여러분께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고, 따라서 우리 문화의 소나무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가도 이야기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농경사회를 지탱한 소나무 숲에 대한 이야기부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소나무 숲이 어떻게 농경사회를 지탱했는가? 우선 조선 시대를 살펴보면 우리는 다른 답을 얻을 수 없을 만큼 소나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사회였습니다. 1910년도 한일병합이 되기 전에 조선통감부는 3월부터 7월까지 조선 전역의 산림에 대해서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수종 구성은 어떤가 예를 들면 구체적인 건 못 밝히더라도 활엽수인가, 소나무인가, 소나무 외의 침엽수인가를 밝혀냈습니다. 조선 시대 누가 어떤 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1910년 숲은 단숨에 자라거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저 기록을 통해 조선 말기 산림 상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아주 큰 용량의 디지털 자료를 뽑아서 낸 겁니다. 우리나라 국립산림과학원은 이 자료를 가지고 아주 재미난 데이터를 도출했어요. 가운데 것은 소나무 숲의 분포 지역을 나타내는 거고, 저것은 언어 지도로 앞에 보여 드렸던 지도를 가지고 조선 시대 때 어떤 숲이 있었는가를 보여 주고, 맨 오른쪽에 있는 것은 활엽수들은 산악지방과 북한지방에 북쪽지방에 많았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남부 지방, 해안가, 북부 지방의 해안가 지방, 개마고원 일대가 전부 초록색 소나무 숲이 차지한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 숲은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한반도 저지대의 대부분에 분포하고 있었다고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죠.

2002년에 정치영 선생이 조선 후기의 인구를 지역별로 분류해 인구 밀도까지 나타낸 지도를 보면, 해안가 주변 지역들의 인구가 밀집하고 또 남부지방의 곳곳이 인구가 밀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경작지 면적도 해안가 주변과 남부지방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놀랍게도 그와 유사하게 소나무 숲들도 인구가 밀집한 지역 경작지 주변 남부지방 해안가 곳곳에 다 분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조선 시대 소나무 숲이 어디에 있었고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의 인구 비율은 1678년의 경우에는 전체 인구의 26%가 살았고 1726년의 경우에는 약 25% 정도가 살았다고 통계에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구의 4분의 3은 소나무와 밀접한 지역에서 살아 왔다고도 거칠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 사회의 농경사회를 지탱한 임산자원은 대부분 소나무 숲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나무도 썼죠. 그렇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농경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작지가 있어야 됩니다. 조선은 건국 시기 인구가 570여만 명에서 차츰 늘어나서 1700만 명까지 늘어납니다. 늘어나는 입의 수만큼 경작지가 늘어야 되고, 그 경작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토양 비옥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임상 유기물, 이른바 낙엽, 낙지(떨어진 가지), 잎을 끌어 모아서 퇴비로 만들어야 합니다. 불을 뗀 재와 사람의 똥, 가축의 똥오줌을 가지고 퇴비를 만들어서 지력을 유지해야 되죠. 그래서 인가나 마을 주변의 숲들은 점차 계속해서 임상 유기물을 끌어다 쓰게 되고, 결국 산림토양의 질이 나빠졌습니다. 나빠진 산림토양에서는 일반 활엽수들은 자랄 수 없고,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활엽수 숲은 점차 도태되고 점차 주변의 숲은 소나무 숲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렇게 소나무 단순림 구조가 되었다고 설명을 드릴 수가 있겠죠.

조선은 건국하자마자 소나무 관련 강력한 정책을 시행합니다. 왜? 재정을 뒷받침하는 세곡 운반선은 소나무로 만든 좋은 배였습니다. 오늘날엔 인터넷 뱅킹을 통해서 세금도 내고 다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고속도로도 없었고 기차도 없었습니다. 국가 재정을 충당할 길은 오직 각 지역마다 농민이 낸 쌀이라는 세금을 강이나 바다를 통해서 배로 실어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운선, 세곡선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재를 확보하는 것이 나라의 건강한 재정을 위해서 필요했습니다. 세곡 운반선은 다른 나무로는 못 만들었어요. 오직 소나무로만 만들었어요.

두 번째 외침을 맞는 전남은 거북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전선과 판옥선도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국가의 재정, 국가의 안정, 이걸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 소나무였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세 번째로 조선에 와서는 건축재도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고려 때만 해도 느티나무나 다른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를 썼지만, 인가 주변의 굵은 활엽수들은 이미 다 베어졌고, 남은 것은 소나무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말부터 궁궐 건축재는 무엇으로 가지고 썼다? 소나무로 건축재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소나무가 없으면 궁궐조차도 옳게 지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조선은 강력하게 소나무 보호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은 주자 성리학의 통치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가능하면 주자 가례를 백성들한테 주지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이 유교식 매장 문화 장려였습니다. 이른바 죽음을 관과 곽에 넣어서 땅에 매장하는 것을 국가에서 강력한 정책으로 시행했는데, 그 관제는 오직 소나무만 쓰게 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천 가지 나무들이 조선반도에서 자랐지만, 오직 소나무만 중요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    농경사회를 지탱한 소나무 숲

그럼 이렇게 써 왔던 조선의 소나무 숲은 어떻게 변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우선 인구가 많은 한양에서부터 헐벗기 시작한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임진왜란과 또 잠시 뒤에 병자호란이 끝난 이후부터는 도성 내외 산림이 민둥산이 계속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1710년에 이르러서는 도성의 백악산, 인왕산, 남산, 타락산, 이 네 개의 산들이 전부 다 헐벗고 민둥산으로 변해 산사태가 일어난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흔히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한반도 산림이 대부분 수탈되고 산림자원이 다 날아갔다고, 저부터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일제가 수탈해 간 것도 일부 있지만은 그 일은 1700년대부터 조선에서 시작되었음을 이 기회에 기억해 두세요.

2.    소나무가 농경사회에 끼친 영향

당시 모습을 담은 대표 사진이 1905년 오스트렐리아 사진 작가 조지 로스가 찍은 것입니다. 헐벗은 인왕산의 모습과 저 뒤에 북한산, 보현봉, 문수봉 등의 능선들을 보시면 나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헐벗은 민둥산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일제가 저 때는 식민지를 경영하지 않았던 때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886년 퍼시벌 로웰은 고종의 사진도 찍은 분일 것 같아요. 지금도 있는 홍지문, 탕춘대 성곽 주변의 헐벗은 북한산의 모습입니다. 조선 시대 남쪽 인구 밀집 지역의 산림은 대부분 헐벗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왜 헐벗었는가? 그렇게 많은 소나무와 관련된 법을 규칙을 제정했는데 조선은 왜 숲을 지키지 못했는가?

앞서 말한 대로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세종은 ‘송목양성병선수호조건(松木養盛兵船守護條件)’이라 해서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아주 강력한 규정을 만들었고, 1808년까지 산림과 관련 법령들은 대부분 소나무와 관련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산림 정책은 오직 소나무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고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입니다. 공조산림조의 조선의 산림은 오직 소나무 한 가지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듯, 조선 초기부터 소나무는 함부로 벨 수 없는 나무였습니다. 금송 또는 송금은 베지 말아야 할 소나무를 지키자는 말입니다. 소나무 행정인 송정, 모두 의송지지라든지, 연해금산이라든지, 의송산이라든지, 송전이라든지, 봉산을 지정한 이 모든 일들에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왜? 배를 만들고 궁궐을 만들고 관자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금요특강

대한민국 최고 산림학자들에게 듣는 숲 아카데미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2024.1.5~ 2024.4.5

​성공회대 피츠버그홀

 planet03 DB

전영우 |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 2024.03.08 | 성공회대 피츠버그홀 

숲과 한국 문화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창재 원장님께서 저한테 부여한 주제가 숲과 한국 문화입니다. 하필이면 이 주제를 저한테 주셨을까? 플래넷03에서 숲이란 용어를 썼지만 12주 강의 중에 숲이란 용어가 들어간 주제를 발표한 분들은 별로 많지 않았어요. 다 산림이지. 각별히 생각하셔서 저한테 이런 강의 기회를 주셨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실 24~25년 전에 정확히는 30년 전에 우리 사회가 산림 용어에 익숙해 있을 때, '숲' 용어를 썼고, 여기 계신 이수용 사장님 덕분에 『숲과 한국문화』를 펴낼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책은 2004년에 일본 동경에 있는 국사관행에서 일본 판으로 출판되었고, 2010년 유프로(IUFRO, 국제임업연구기관연맹) 세계총회를 기해서 한국에서 영문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것은 이 책보다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해서, 기후 위기의 시대, 생태 위기의 시대, 우리 숲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를 되돌아 본다는 관점에서 과거의 숲을 말면서 미래의 숲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소금(자염), 경복궁, 조운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소나무입니다. 저 세 가지는 소나무를 땔감으로 해서, 건축재로, 조선제로 해서 우리들은 살아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오늘 하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소나무에 이른바 몰입해서 1993년부터 책을 펴내고, 2002년부터 2년 전까지 소나무와 관계되는 여러 책들을 써냈습니다. 점선은 공동 저작이고 실선은 제 단독 저술입니다. 그래서 소나무에 대해서는 여러분께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고, 따라서 우리 문화의 소나무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가도 전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내용은 농경사회를 지탱한 소나무 숲부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가를 말하고자 합니다.

1. 농경사회를 지탱한 소나무 숲

소나무 숲이 어떻게 농경사회를 지탱했는가? 우선 조선 시대를 살펴보면 우리는 다른 답을 얻을 수 없을 만큼 소나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사회였습니다. 1910년도 한일병합이 되기 전에 조선통감부는 3월부터 7월까지 조선 전역의 산림에 대해서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수종 구성은 어떤가 예를 들면 구체적인 건 못 밝히더라도 활엽수인가, 소나무인가, 소나무 외의 침엽수인가를 밝혀냈습니다. 조선 시대 누가 어떤 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1910년 숲은 단숨에 자라거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저 기록을 통해 조선 말기 산림 상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아주 큰 용량의 디지털 자료를 뽑아서 낸 겁니다. 우리나라 국립산림과학원은 이 자료를 가지고 아주 재미난 데이터를 도출했어요. 가운데 것은 소나무 숲의 분포 지역을 나타내는 거고, 저것은 언어 지도로 앞에 보여 드렸던 지도를 가지고 조선 시대 때 어떤 숲이 있었는가를 보여 주고, 맨 오른쪽에 있는 것은 활엽수들은 산악지방과 북한지방에 북쪽지방에 많았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남부 지방, 해안가, 북부 지방의 해안가 지방, 개마고원 일대가 전부 초록색 소나무 숲이 차지한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 숲은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한반도 저지대의 대부분에 분포하고 있었다고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죠.

2002년에 정치영 선생이 조선 후기의 인구를 지역별로 분류해 인구 밀도까지 나타낸 지도를 보면, 해안가 주변 지역들의 인구가 밀집하고 또 남부지방의 곳곳이 인구가 밀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경작지 면적도 해안가 주변과 남부지방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놀랍게도 그와 유사하게 소나무 숲들도 인구가 밀집한 지역 경작지 주변 남부지방 해안가 곳곳에 다 분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조선 시대 소나무 숲이 어디에 있었고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의 인구 비율은 1678년의 경우에는 전체 인구의 26%가 살았고 1726년의 경우에는 약 25% 정도가 살았다고 통계에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구의 4분의 3은 소나무와 밀접한 지역에서 살아 왔다고도 거칠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 사회의 농경사회를 지탱한 임산자원은 대부분 소나무 숲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나무도 썼죠. 그렇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농경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작지가 있어야 됩니다. 조선은 건국 시기 인구가 570여만 명에서 차츰 늘어나서 1700만 명까지 늘어납니다. 늘어나는 입의 수만큼 경작지가 늘어야 되고, 그 경작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토양 비옥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임상 유기물, 이른바 낙엽, 낙지(떨어진 가지), 잎을 끌어 모아서 퇴비로 만들어야 합니다. 불을 뗀 재와 사람의 똥, 가축의 똥오줌을 가지고 퇴비를 만들어서 지력을 유지해야 되죠. 그래서 인가나 마을 주변의 숲들은 점차 계속해서 임상 유기물을 끌어다 쓰게 되고, 결국 산림토양의 질이 나빠졌습니다. 나빠진 산림토양에서는 일반 활엽수들은 자랄 수 없고,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활엽수 숲은 점차 도태되고 점차 주변의 숲은 소나무 숲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렇게 소나무 단순림 구조가 되었다고 설명을 드릴 수가 있겠죠.

조선은 건국하자마자 소나무 관련 강력한 정책을 시행합니다. 왜? 재정을 뒷받침하는 세곡 운반선은 소나무로 만든 좋은 배였습니다. 오늘날엔 인터넷 뱅킹을 통해서 세금도 내고 다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고속도로도 없었고 기차도 없었습니다. 국가 재정을 충당할 길은 오직 각 지역마다 농민이 낸 쌀이라는 세금을 강이나 바다를 통해서 배로 실어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운선, 세곡선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재를 확보하는 것이 나라의 건강한 재정을 위해서 필요했습니다. 세곡 운반선은 다른 나무로는 못 만들었어요. 오직 소나무로만 만들었어요.

두 번째 외침을 맞는 전남은 거북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전선과 판옥선도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국가의 재정, 국가의 안정, 이걸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 소나무였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세 번째로 조선에 와서는 건축재도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고려 때만 해도 느티나무나 다른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를 썼지만, 인가 주변의 굵은 활엽수들은 이미 다 베어졌고, 남은 것은 소나무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말부터 궁궐 건축재는 무엇으로 가지고 썼다? 소나무로 건축재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소나무가 없으면 궁궐조차도 옳게 지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조선은 강력하게 소나무 보호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은 주자 성리학의 통치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가능하면 주자 가례를 백성들한테 주지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이 유교식 매장 문화 장려였습니다. 이른바 죽음을 관과 곽에 넣어서 땅에 매장하는 것을 국가에서 강력한 정책으로 시행했는데, 그 관제는 오직 소나무만 쓰게 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천 가지 나무들이 조선반도에서 자랐지만, 오직 소나무만 중요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세종은 ‘송목양성병선수호조건(松木養盛兵船守護條件)’이라 해서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아주 강력한 규정을 만들었고, 1808년까지 산림과 관련 법령들은 대부분 소나무와 관련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산림 정책은 오직 소나무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고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입니다. 공조산림조의 조선의 산림은 오직 소나무 한 가지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듯, 조선 초기부터 소나무는 함부로 벨 수 없는 나무였습니다. 금송 또는 송금은 베지 말아야 할 소나무를 지키자는 말입니다. 소나무 행정인 송정, 모두 의송지지라든지, 연해금산이라든지, 의송산이라든지, 송전이라든지, 봉산을 지정한 이 모든 일들에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왜? 배를 만들고 궁궐을 만들고 관자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산림생태복원을 위한 국제협력과 우리의 역할

김우성 오늘의 강연자 이돈구 교수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플래닛 03에서 숲 아카데미에 모신 열두분의 강연자들은 한 분 한 분 모두가 숲과 생태계의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쟁쟁하신 분들입니다. 오늘 첫 강의를 열어 주실 이돈구 교수님께서는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분입니다. 세계산림연구기관연합회(IUFRO; International Union of Forest Research Organizations)는 세계 숲을 연구하는 기관들의 연합으로서 120여 개국 1만 5천 명 이상의 산림 분야 연구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입니다. 이돈구 교수님께서는 세계산림연구기관연합회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이후 산림청 역사상 최초로 교수 출신 산림청장이 되셨습니다. UNCCD 의장, 생명의 숲 이사장,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학장 등 교수님께서 걸어오신 길은 이 작은 큐시트에 다 담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숲과 생태 환경 분야 곳곳에 이돈구 교수님의 제자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산림 분야의 거대한 참나무 이돈구 교수님을 큰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이돈구 일단은 정말 플래닛03 미디어의 창간을 축하 드리고 산림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합니다. 이번 ‘숲 아카데미’의 대주제가 ‘미래의 한국의 숲을 말하다’ 라고 하는데 저는 “산림 생태 복원을 위한 국제협력과 우리 역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65학번입니다. 저는 원래 산림 과학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저는 물리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이제 2년 후에 산림청이 생기니까 직장도 생기고 하니 그쪽으로 가라 했어요. 충청북도 청주 촌놈이기 때문에 시골에서 살았어요. 73년도까지 전기가 안 들어왔어요. 우리나라 숲을 보면 우리는 국유림이 별로 없어요. 6,030만 ha가 우리나라 남쪽의 산림인데요. 그중에서 한 1,560만 ha가 국가 땅이고 나머지 400만 ha는 사유림입니다. 사유림 소유자가 200만이니까 대한민국에서 목재 생산을 위한 임업을 한다는 것은 힘들다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숲은 53년부터 황폐기에요. 73년부터 97년도까지는 치산녹화하는 기간이었고요. 올해가 50주년이라고 하잖아요. 산림을 복구하는 것은 기능적 복구와 구조적 복구가 있어요. 그때는 그냥 심은 거예요. 사람들이 그러거든요. 왜 그때 좋은 나무 안 심었냐고 해요. 근데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없는 맨 땅인데 그냥 살 수 있는 나무라고 심은 것이 리기다소나무에요. 미국에서도 형편없는 나무입니다. 리기다 소나무, 아까시나무 심었어요. 훼손된 숲을 생태적으로 복원하는 과정은 크게 구조적 복원과 기능적 복원으로 나뉩니다. 좋은 숲은 기능도 좋고 구조도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숲은 구조적인 복원에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능적으로는 아직 성공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구조적으로도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에요. 북한 산림면적이 900ha 정도 되는데 그 중에 한 300ha가 완전히 망가진 걸로 알고 있어요. 북한은의 전체 면적은 1,200만 ha이고 남한은 1,000만 ha에요. 

‘치산치수(治山治水)’라고 들어보셨죠? 제가 2002년도에 중국에 있는 교수를 필리핀에서 만났는데 아주 갸우뚱하더라고요. 어떻게 산을 다스릴 수 있느냐. 치산치수가 아니라 ‘지산지수(知山知水)’라고 해요. ‘산을 알아야 물을 안다’ 이거예요. 그다음에 ‘지수지인(知樹知人)’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나무를 알아야 사람을 안다’는 거죠. 프랑스의 문호 샤또 브리앙이라는 분이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라고 했어요. 앞으로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국제사회하고 공유를 반드시 해야 되요. REDD+ 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영어로 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 and forest degradation in developing countries 라고 합니다. 개발도상국의 산림파괴를 막고, 온실가스도 줄이자는 거에요. 보존도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도 하고, 그렇게하면 좋겠어요. 

산림청에 가서 제가 기여한 게 좀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아포코(AFoCO; Asian Forest Cooperation Organization)라고, 아시아 산림협력기구 입니다. 아세안 10개국하고 우리나라까지 11개국이 시작했는데, 현재는 당사국 14개국과 옵서버 2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이 처음에는 외교부 예산을 가지고 아케콥(AKECOP; ASEAN-Korea Environmental Cooperation Project) 사업으로 시작을 했어요. 원래 처음에 100만 불씩 10년으로 제안했는데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결국 49만 불씩 5년 기한으로 2000년 부터 시작했어요. 그걸로 아세안 사람들 훈련도 시키고 연구비도 줬는데요. 그게 기반이 돼서 산림청이 아세안 사람들과 아포코를 만드는 과정이 수월했습니다.

저는 미국 AID(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돈 받아서 공부한 사람이에요. 미국에서 받은 지원을 미국에 갚지 않고 제3국에 갚겠다고 했는데 그게 아케콥을 통해서 이루어져습니다. 

제가 유프로(IUFRO; International Union of Forest Research Organizations, 세계산림연구기관연합회) 회장이었는데 2010년도에 세계총회가 서울에서 열렸어요. 당시에 대통령이 왔어요.와서 1시간을 있더라고요. 그때 축사하면서 아포코(AFoCO) 세워주겠다고 약속도 하고 그래서 뭐 되는가 보다 했는데, 2011년도에 저를 산림청장으로 오라고 했어요. 저는 정책하는 사람이 아니고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제가 그렇게 못한다고 막 버티다가 이제 결국 가게됐는데요. 가서 고생도 많이 했죠. 그냥 몸무게가 4~5kg도 줄고 헬기 타야 되고 뭐 산불 나면 또 쫓아다녀야 되고 다행히 저 있는 2년 동안에는 산불이 1,000ha도 안 났어요. 작년 산불로 22,000ha의 숲이 불탔어요. 1ha가 100mX 100m거든요.
2010년도 유프로 총회를 산림과학원이 주도해서 준비하는데 5~6년 걸렸는데 산림청 가보니까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 10차 총회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 이 세계적인 총회를 어떻게 하느냐 그랬더니 이건 유엔에서 도와주더라고요. 25~30명 파견됐는데 고생고생했죠. 그래도 사막화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은 ‘창원이니셔티브’도 채택하고 성과가 있었어요. 


각주 ) 나무의 광합성 과정을 분자식으로 표시하면 6CO2(이산화탄소 6)+12H2O(물 12) → C6H12O6(포도당)+6O2(산소 6)+6H2O(물 6)이 된다.


​나무를 심어야 되는 것은 광합성 작용 잘 아시죠? 그죠? 이산화탄소하고 물하고 빛이 있으면 탄수화물하고 산소가 나오잖아요. 그거를 분자량으로 계산해보면은 이산화탄소가 44에요. 이게 여섯개 들어가고, 그리고 물은 18이고, 이게 열두개 들어가요.  그다음에 C6H12O6 탄수화물 이거는 180입니다. 이거 하나랑 분자량 32인 산소 6개, 물 6개가 만들어져요. 육상 생태계에서 그래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게 나무거든요.


인도네시아나 미얀마, 라오스는 나무의 생장이 그렇게 빠를 수가 없어요. 1990년대 초에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코린도(KORINDO)라는 임업회사의 조림사업지에 기념식수로 길이 20cm짜리 묘목을 심고 왔는데 3년 후에 가보니 키가 15m로 자랐어요. 우리 산림의 나무들이 무슨 국제경쟁력이 있겠어요. 우리는 보전 및 지속적 산림자원관리를 목표로 하는 산림정책으로 나아가야 해요. 

제가 평창군에 있는 가리왕산에서 1990년부터 한 20여년간 연구를 했는데요. 거기서 이제 솎아내고 할 때 우리끼리만으로는 안 되니까 기계로 하잖아요. 임업기계훈련원하고 7개 대학이 같이 연구하는데 강릉에 있는 목상들을 불렀어요. 불러서 여기서 어느 정도 솎아내면 이익이 있겠느냐 했더니 자기들이 1ha당 20㎥만 나오면 되겠대. 2,000ha 솎아내면 되고 그다음에 1년에 100ha씩만 간벌하게 해달래요.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맡기면요 좋은 것만 다 베가요.야마시(일본어 표기 삽입)라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거짓말하는 게 일본의 야마시에요. 야마는 산이라는 뜻이고 시는 스승 사자를 써요. 산의 스승이 야마시에요. (설명 추가)
 

그 사람도 거짓말하거든요. 여러분들이 숲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몇 ㎥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산주는 몰라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안다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베야 하니까 ha당 20㎥씩 2,000ha만 베어낼 수 있으면 하겠다고 그러는데 아유 또 환경단체에서는 반대죠. 또 그래서 이 숲은 우리 공유재산이라고 그래서 노벨 경제학상 타신 오스트롬 교수가 그걸 탔잖아요. 유프로 총회에 와서 특강도 하셨지만 국가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개인도 끼어야 되고 공공단체도 끼고 협의해서 잘 해야 되는데 산림청이 이제 외청이니까 안 들어주잖아요. 그렇죠 지금 환경부에서는 그거 가져가려고 그러지만은 거기 저는 절대로 가면 안 된다고 해요. 지금 상태는 왜냐하면 자연 보존국이 있으면 다 콩 나와라 팥 나와라 해요. 그래서 국립공원까지 들어오고 자연보존국을 없애면 산림청이 환경부로 가서 또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그건 뭐 다 다른 일이고요. 그건 제가 얘기할 수 없고요. 언론쪽에 계신 분들이 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지 않겠나 싶어요.

우리 산림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그림 그리는 사람에 비유하는데 미술하는 사람은 종이에다 그림 그리잖아요. 그죠 조경하는 사람은 정원에다 그림을 그리고요. 우리 산림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지구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목재 자급률이 한 16% 돼요. 1%만 자급률을 높이면요, 그때 당시 2천억 원을 세이브할 수 있었어요. 2천억 원. 근데 자급률을 높이려니까 굉장히 어렵잖아요. 자꾸 환경단체에서 무조건 반대잖아요. 지금 그 벌채할 수 있는 연령이 돼서 벌채를 하고요. 새로 심어야 이산화탄소를 빨리 흡수를 하거든요. 그래서 만약 벌채하는 나이가 60년이라 했을 때 60년 된 사유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벌채를 하지 않고 10년 20년을 더 가지고 있다면 그거를 국가가 보상을 해줘야 돼요. 보상을 해주면 그냥 갖고 있잖아요. 지금 우리나라 전체 예산이 600몇 조인데 지금 산림청 예산이 한 2조 8~9천억 원 된 것 같은데 전체 예산의 1%는 줘야죠. 그러니까 5~6조는 줘야되는데 그렇게 줘서 사유림까지 좀 관리해주도록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98년도에 IMF시대 때 숲 가꾸기 위해서 일자리 창출 했는데 이제 다시 20년도 넘었으니까 그런 걸 해야 될 거로 알고 있고요.


그리고 기후가 변하고 자꾸 온도가 더워지니까 우리나라도 이제 난대림은 있지만 아열대화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열대지방에 가면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이런 미얀마가 가면 망그로브라는 나무가 있어요. 망그로브 그것도 이제 서해안 쪽에는 혹시 망그로브도 우리가 심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고요. 난대림에서 이제 미국에서 온다면 Southern Pine이라고 해서 더운 데서 자라는 종을 데려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온대림은 저 아열대림으로 갈 것 같고 난대림으로 갈 것 같고 더 더워지면 한대림은 어떡하느냐 이건 방법이 없어요. 한대림은 병 걸리죠. 더워지니까 해충 생기죠. 산불 나죠. 제가 스웨덴에서 연구년을 보냈어요. 우리는 1ha에 나무 종류가 한 30가지는 나와요. 근데 스웨덴은 서너 가지밖에 없어요. 서너 가지 뭐 저기 뭐야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정도밖에 없어요. 자작나무 정도 있고요. 열대지방에 가면은 1ha에 최소한 300~400종이 있어요. 열대림의 종은 다 거기 있거든요. 열대림을 보호해야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아포코 하기를 잘한 거예요. 열대림 보호를 위해서 앞장선다는 거 그런 걸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이제 우리의 역할 좀 얘기를 해야 되는데 우리는 산림 녹화에 성공한 나라에요.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데 우리 경험을 알려야죠. 이제 그러려면 교육하고 이제 훈련하고 하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코이카(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또 우리 아포코, 유프로 같은게 중요합니다. 유프로 2024년도 세계 총회를 올해 스웨덴에서 합니다. 스웨덴 가보면 나무가 아주 보통 큰 게 아니에요. 그냥 뭐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저리가랄 정도로 그렇게 뭐 100년 그렇게 200년 키우고 그래요. 그 다음에 UNCCD가 사막화 방지 협약이 있잖아요. 그 다음에 기후변화협약 UNFCCC 그 다음에 CBD 생물 다양성 협약이 있는데 이걸 통해서 해야 되겠고요. 새마을 운동이 좋은 사례에요. 우리 역할은 그걸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거에요. 새마을 운동에 그게 있어요.
 

나는 할 수있다 캔두 스피리트(Can Do Spirit)가 있거든요. 새마을 운동의 근면(Diligence), 자조(Self-help), 협동(Cooperation), 이 세 가지가 있잖아요. 이걸 지켜서 성공했잖아요. 그대로 하라는 건 아니고 그걸 모방해서 자기 나라에 맞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지 그게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마무리를 좀 하겠습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 때 왜 파리에서 SDG라고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있잖아요. 그 중에서 산림 분야와 관련된 게 꽤 있어요. 그래서 그 분야를 꼭 이행하도록 우리가 해야 되겠고요. 그리고 탄소 흡수하는 거 나무가 중요한 흡수원이고 공적 직접적인 기능도 있지만 간접적으로 산소가 나온다 이산화탄소 흡수한다 수원함양 기능이다 뭐 휴양이다 이런 그런 게 있잖아요. 

새 한 마리가 값으로 보면 뭐 몇백원에서 몇천원밖에 안 돼요. 그걸 공익가치로 환산하면은 몇만원 되더라고요. 새 한 마리 보는데 그런 기능을 산림청 산림과학원이 계산했는데 265조라는데 제 생각 한 좀 300조 원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1년 예산의 반은 되니까 그래도 산림에도 투자도 좀 더 하고 관심이 있어야 해요. 그냥 놀고 가서 뭐 고기나 구워 먹고 즐기는 것만 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우리 우리 여러분들의 인간의 고향이 어디예요? 숲이에요. 숲. 생태학자들이 그래요. Ecology나 Economics나 oikos라는 말에서 왔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거를 우리가 되돌려주려면 보호해야죠. 

중구 종로구에 소나무 가로수 심은 거 많이 보셨죠? 제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에 옛날에 소나무가 불쌍하다는 글을 썼는데 참 불쌍합니다. 왜냐하면 산에서 잘 사는 걸 왜 도시에 가져와서 고생시켜요. 그게 거기서는 몇 만 원에 팔렸는지 모르지만 종로구에서 그때 심을 때는 한 400만 원씩 심었다는 거 아니에요. 떼어먹은 건지 저는 모르지만 그게 공해에 약한 게 소나무예요. 불쌍하잖아요. 그러니까 죽지 못하게 또 주사 놓고 그렇죠 그다음에 전부 또 요새 요새도 그 띠 두르는 거 보셨어요? 그 벌레 잡는 트랩이에요. 요새 벌레 없어요. 없는데 그거 예산이 있으니까 계속 하는거죠. 정원 조경수 도입할 때 정말 주의해야해요. 독일에는 종자구역(Seed Zone)이 있어요. 특정 종자구역에서 생산된 종자는 지역 안에서 써요. 우리도 강원도 소나무는 강원도에서 있게 두고 다른 다른 걸 갖다 심어도 얼마든지 되잖아요.

Sustainable Forest라는 책을 읽어보신 사람은 알 거예요. 거기 제가 키 포인트를 뭘 봤냐면 자동차하고 인간하고 숲하고 3개를 비교했는데 자동차가 병들고 고장나면 어디로 가요? 가라지(Garage)로 가요. 고치러 가잖아요. 그죠? 사람이 병들면 어디 가요? 병원 가잖아요. 그럼 숲이 병들면 어디로 가요? 갈 데가 없다. No place to go. 그게 거기에 있는 키워드예요.

숲은 정직해요. 조화를 이루고 경쟁하기도 하지만 협동하기도 합니다. 다양성이 있어요. 국민들은 다 잘해요. 그런데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이 조금 잘하는 것 같지 못해요.저는 중학교 때 한자를 배웠거든요. 한자 선생님이 법(法)이라는 걸 설명을 어떻게 했냐면 물 수(水)변에 갈 거(去)다. 법은 물 흐르는 대로 가는 게 법이다. 근데 안 가요. 법대로 안 간다고 그렇죠. 근데 그거를 제가 어떻게 글을 썼는데 그게 이제 참 걱정이고 왜냐하면 그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게 있잖아요. 헤엄 잘 치는 말을 거꾸로 올라가려고 그래서 죽고 소는 물에 몸을 맡기는 게 또 산다는 얘기도 있고 물에 관한 건 참 많잖아요. 아까 지산지수도 나왔고 치산치수도 나왔지만 그런 얘기가 있어서 그래서 이제 우리 산림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좀 큰 좀 더 커서 뭐 체구는 작지만은 지구에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해서 좀 지구를 할 일이 많죠. 아시아도 그렇지 북쪽도 마찬가지죠. 그다음에 중앙아시아 몽골 이런 데 있죠. 아프리카도 저도 몇 개 나라 가봤는데 참 참혹합니다. 그런 쪽으로 우리가 할 일이 많아요. 이상 말씀드리고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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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가치 (기념 식수)

2024.04.05

질문1) 저는 그 백두대간에서 좀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산림청에서 백두대간 보존을 위해서 보호법도 만들고, 백두대간 트레일 코스도 만든 걸로 압니다. 실제 다녀 보면 중간에 연결이 안 된 부분이 많아요. 그 지점이 주로 국립공원입니다. 일반 국민들이 봤을 때, 국립공원이나 백두대간이나 똑같이 생각하고 종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차단되어서 들어가질 못해요.

저는 산과 자연을 좋아해서 백두대간을 종주합니다. 종주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통과합니다. 낮에 막으니까 밤에 갑니다. 국립공원공단이나 산림청에서 잘 조정했으면 합니다. 회원으로 규제해서 허가제를 한다든지 하면, 여러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3대 생태축의 하나 아닙니까? 그걸 국민에게 홍보도 하고, 가보면 정말 우리 국토를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성남의 이우학교라고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생들과 종주해 봤는데요. 학생들이 엄청 좋아해요. 학부모들도 같이 오는데 정말 백두대간은 교육, 생태, 환경 등 여러 면에서 좋습니다. 국민들에게 잘 홍보해서 이용할 수 있게 하면굉장히 좋겠습니다. 현재는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두 부처 간의 합의가 잘 이루어져서 그런 좋은 조치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백두산 트레일 코스가 있던데, 산림청에서 만들었지요. 말한 문제를 해결 안 하고 말로만 트레일 코스가 있는 겁니다.

     

답변) 아마 부처간에 정책 이념의 차이일 듯합니다. 저도 정책 집행을 해 봤지만, 중요한 게 융통성인 것 같아요. 현장이 다 다른데 획일적으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거에 맞추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 경우에 ‘수용력’이란 개념을 씁니다.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출입해도 되겠다고 하면 허가제든 아니면 다른 운영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백두대간은 산림청이 1995년부터 자료 수집했습니다. 백두대간은 엄밀히 보면 지리 인식 체계입니다. 우리는 산맥 체계를 많이 쓰는데, 그 산맥은 일본 사람 고토 분지로라는 사람이 ‘땅속에 지질이 어떻게 돼 있느냐’를 기준으로 산맥이라 한 것이고요. 고산자 김정호부터 백두대간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이 산줄기라고 했습니다. 여기가 생태적으로 우수한 장소가 많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막 다니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좀 융통성 있게 해야 된다고 봅니다.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를 환경부에서 관여합니다. 기본적인 원칙을 제공하는데, 다른 부처 소관이라서 제가 깊이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런 원칙에 따라서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질문2) 제가 두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아까 기재부 관련해서 좀 궁금한 점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원 함양을 위한 공간이나 국립공원이 개인의 사유림에 지정이 됐을 때, 그에 대한 이용료 개념을 말씀 주셨습니다. 실제로는 그런 이용료가 잘 제공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재부와 어떻게 협상이 진행이 되는지가 첫 번째로 궁금합니다.

두 번째로 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기재부와 정말 많은 부분에서 협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기재부와의 협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기재부가 잘 수용하는 예산들이 있을 것이고, 반려하는 예산들도 많이 있잖아요. 산림청에서 기제부의 벽을 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문화재 관람료 작년에 폐지됐죠? 그거는 아마 환경부 소관이라서 그렇게 했지만, 어쨌든 국립공원에 들어가면서 사찰림이 많으니까 문화재 관람료를 내는 거가 좀 안 맞다고 협의해서 관람료 폐지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매년 정부 예산을 편성해서 지원한다는 거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매년 편성 상황이 조금씩 유동적이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좀 제도화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민 대다수를 위한 거면 무료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우리가 이용 요금을 부과하는 거는 수용력을 컨트롤하는 거예요. 수요가 너무 많으면 수요를 조절하기 위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이후에 계속해서 문제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합리적이고 타당성 있게 예산 요구서를 만들어서 자꾸 협의할 수밖에 없죠. 국회 예산 편성 과정을 보면, 대개 실무선에서부터 새로 들어오는 예산들을 잘 설명하고,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타당함을 잘 주장해야 합니다. 과장, 국장, 뒤로 높은 선에서 예산 심의를 거치면 다 이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단계마다 최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 이제 나름 협상력이 좀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질문3) 저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윤여창입니다. 지금 산림행정에서 과거부터박정희 대통령 시절까지(전두환 대통령 때까지 그랬는지) 주로 정부 입법이 많았죠. 정부에서 국회에다가 이거 법안이 있으니까 심의해서 통과시켜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법을 많이 만들었는데, 요즘은 국회의원 입법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입법부에서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금 아까 질문이 들어왔던 백두대간 보호법은 시민단체가 주장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시에 녹색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가 백두대간 지역의 파괴 현상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해서 법이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강의에서 무엇이 산림행정에서 중요한 과제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복지 서비스, 산불, 치유 등이 국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하고, 물질적인 생산보다는 비물질적인 서비스의 공급을 산림청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읽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숲의 소유권은 3분의 2가 사유림이고, 효율적인 자원 관리를 위해서는 사유림이 가진 장점이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가진 산림 약 3분의 1로 이런 복지나 안전, 치유를 다 공급하기는 좀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럼, 사유림 소유자들이 산림 서비스를 잘 공급해 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나 제도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주도해서 이런 일들을 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산림 휴양이나 치유의 경우는 정부가 주도하고 산주들이 따라갑니다. 하지만 산주들이 따라가더라도 서비스 시장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또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유림 소유자들의 사업은 잘 안 됩니다.

이처럼 산림 소유 구조와 국민들이 바라는 서비스가 서로 매치가 안 되는 현상을 우리 정치하는 분들이 입법을 통해서 해결해 줘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창재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첫 번째 과거에는 정부 입법이 의원 입법보다 많았을 겁니다. 지금은 부처마다 다를 것 같기는 한데 의원 입법이 좀 많은 경향이 있고요.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부 입법 과정이 상당히 복잡해요. 그래서 의원실과 약간 협력해서 입법하는 사례들이 좀 있죠. 우리 국회의원님들은 한 7분인가 보좌관들이 있지만, 방대한 재정법을 다 알고 하시기는 힘드신 것 같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협력적인 형태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개정하는 법률안들도 많아요. 그런 법률안은 의원실 자체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 말씀은 저도 공감합니다. 그동안에 산림행정 아니면 국가 전체적인 행정의 역사를 봤을 때, 아직도 압축성장 시대 정부 주도의 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일반 국민들도 선거 때 보면 엄청 많이 요청하거든요. 이제는 정부가 좀 바뀌어야죠.

산림 서비스의 경우에 작년부터 시행한 “숲 경영 체험림” 제도가 있습니다. 미니 휴양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임업하는 분들이 거기에 간단한 휴양 치유 교육 시설 같은 걸 운영하고, 임업하면서도 산림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했습니다. 면적도 아마 5ha일 거예요. 휴양림은 30ha여야 되지만, 작은 규모에서도 할 수 있게 완화가 됐죠. 아마 이런 제도를 통해서 사유림에서 더 많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해야 된다고 봅니다.

교수님도 잘 아시겠지만 산림 서비스가 일종의 복합재잖아요. 복지 서비스의 경우는 일종의 클럽재인데, 울타리치고 입장료 받는 것이지만 특별한 도시 지역이 아니면 수익성이 안 맞을 것입니다. 사례 유형에 따라서 어쨌든 민관이 협력하는 모델들도 많이 발굴해야 됩니다. 또 수익성이 있게 하면서 민간이 독자적으로 하는 ‘민간 정원’이 많이 생기는데, 그것도 사유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사립 휴양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외진 곳에 너무 큰 규모이다 보니 개인 산주 혼자 경영하기는 힘들고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개선책으로 ‘숲 경영 체험림’ 같은 게 개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4) 경기도 양주에서 화단을 보면, 외래종 식물들로 축제가 열리잖아요. 나무, 풀 등 종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요. 물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래종에 대한 규제는 논의되지 않고 있나요?

     

답변) 도입종이 문제임을 알면서도 실제 행정적으로 집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참 어려운 영역인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개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논의해 본 적이 있데, 특히 복원 사업을 할 적에 자생 식물종을 개발해서 선도적으로 도입해서 쓰자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도입하고 확대해야 합니다. 물론, 도입은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해야 합니다.

Q&A

Q: 소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요. 지금 재선충병 관련 예산 지출이 많잖아요. 그런데 교수님은 문화재 복원이나 경관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과 크게 상관이 없는 지역에 분포하는 소나무들이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은 어떻게 관리를 해야 될까요?

A: 꼭 지켜야 할 곳이 어디냐? 아까 지도에도 나와 있듯이 태백산맥 일대 경상북도 북부 지방, 강원도 지방의 소나무는 지켜야 되겠죠. 의지에 따라 통제 가능해요. 제주도는 4~5년 전에는 엉망이었는데 이제 제어 가능해졌습니다. 아까 지자체의 분발이 촉구된다고 말했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Q: 이렇게 숲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평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전 교수님은 소나무 문화 연구를 많이 하시고 또 조예가 깊으셔서 소나무 지키기 운동도 하셨는데, 제 기억으로 '솔바람 운동'도 하셨지요. 근데 이제 그 기운이 점점 소나무한테 불리하고 소나무를 지키는 데 어려운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소나무 재선충법을 시행하면서 소나무를 지키고자 여러 방법을 쓰는데, 그 중에 소나무 재선충을 매개하는 솔수염하늘소를 죽이는 농약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이 농약의 부작용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연히 해인사 주지 스님을 만났을 때 여쭤봤어요. 해인사 가야산 주변에 소나무 재선충이 발생해서 지역 산림 당국이 주지 스님한테 물었답니다. 소나무 재선충 문제로 농약을 항공 살포해야 될 것 같은데 해도 되겠느냐고요.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불살생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교라서 곤란했을 듯합니다. 주지 스님의 답은 주변과 화합하는 것 또한 중요해서 약재 살포를 그냥 동의했다고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불교 신자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화합도 중요하지만, 자연계 중생들과 하는 화합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생물 다양성과 소나무를 지키려는 문화적 전통 계승 노력이 같은 방향이 아닌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 기술 체계, 특히 남북대 이용 기술 체계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많았고, 저 역시 주변에서 소나무를 많이 보며 자란 사람으로 소나무가 굉장히 친근합니다. 최근 소나무를 대체한 수종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 또한 굉장히 아름답고 좋더라고요. 소나무를 꼭 지켜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전 교수님은 문화적인 가치가 중요해서 소나무를 지킬 수 있다면 많이 지키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자연의 위치에 맞게, 현명하게 생태적인 조건 등 우리 기술 체계를 바꿔가면서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전 교수님과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질문은 아니고 코멘트입니다. 소나무의 문화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가 소나무로 짓지 않고 느티나무로 지었다. 그때는 느티나무가 많았기 때문이었을 텐데 아마 느티나무란 좋은 나무가 다 없어지고 그보다 못한 소나무가 더 많이 있기 때문에 소나무로 지었지 않는가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게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희가 주변에 많은 참나무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그런 나무들을 베어내고, 거기다 문화적인 가치를 위해서 소나무를 키우자고 합니다. 저는 소나무와 경쟁이 되는 참나무로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상당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A: 질문이 아니지만 코멘트를 하셨길래 저도 보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윤 교수님처럼 생각할 수 있죠. 당연히 또 그 생각이 맞든 틀리든 자연의 운행 속도에 따라서 바뀌어 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굳이 문화유산을 지키고 망실되는 자연유산을 보호하려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는 우리 정체성, 우리의 얼, 우리 문화 요소 곳곳에 돈으로 셈할 수 없는 무엇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저부터도 옛날하고 달라서 아까 모두에 보여드린 것처럼 소나무 30년에 이르는 책 중에 2004년도에 펴낸 책에는 소나무를 꼭 지켜야 된다고 했지만 5년 전인가 4년 전에 펴낸 『우리 소나무』에는 서문에 그 이야기를 뺐습니다. 왜? 한계가 있다는 걸 인식을 했기 때문에, 하다 못해 지켜야 될 곳만이라도 현재 좋은 임상의 소나무 숲만이라도 옳게 지키자는 거죠. 같은 이야기 자꾸 되풀이하는데 윤 교수님의 생각이나 제 생각이 꼭 같을 필요는 없죠. 그죠? 이런 자리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