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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가자 ⑥ 나오시마에서 시작된 도전

 

미츠비시 제련소로 황폐해진 나오시마는 베네세 재단과 안도 다다오의 현대미술 프로젝트로 예술의 섬이 되었다.


2024-12-13 고은정,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나오시마의 변화에는 베네세 재단이 있다


2021년 여름, 태풍으로 나오시마의 노란 호박(난과 南瓜)이 바다에 휩쓸려 나갔다는 저녁 뉴스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쿠 저런…”이란 탄식이 절로 나왔다. 방송에는 ‘나오시마의 상징, 100억 원급 조각,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라는 제목과 함께 사고 경위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렇게까지, 이웃 나라 일본의 조각이 뉴스에 나다니! 인구 3300여 명, 여의도와 비슷한 면적(82㎢)의 작은 섬 나오시마는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 가는 섬이다.

나오시마는 산업화 시대에 미츠비시(三菱)의 구리 제련 공장이 있던 곳이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경제적 이득은 얻었으나 섬의 환경은 파괴되었다. 특히 1990년대 제련소에서 나온 산업 폐기물을 테시마 섬에 불법 투기한 것이 발각되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공장이 멈추고 사람들이 떠났으나 섬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버려졌던 섬 나오시마는 30년이 지난 지금 예술의 섬으로 바뀌었다. 2010년부터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주변 12개 섬(처음엔 7개 섬)에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가 열렸다. 축제 기간에 전 세계 예술인과 관광객뿐 아니라 이곳을 벤치마킹하고 싶은 외국 기관의 직원들까지 몰려 매년 100여만 명이 다녀간다. 나오시마의 이 극적인 변화는 베네세 재단과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빼고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혼슈의 오카야마현에 속한 두 섬, 나오시마와 이누지마 그리고 가가와현의 10개 섬에서 3년마다 예술제가 열린다. 오카야마현의 우노항과 가가와현의 다카마쓰항에서 주로 출입하는 동부 노선의 7개 섬(나오시마와 메기지마와 그 동쪽의 섬들) 그리고 주 출입 항이 각기 다른 네 개 섬과 육지가 된 샤미지마를 서부 노선의 섬으로 구분한다.

현대미술을 무기로 삼았다


대서사의 시작은 베네세의 창립자 ‘후쿠타케 테츠히코(福武哲彦)’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카야마현의 교사 출신인 그는 문제집을 주로 만드는 출판사를 운영하다 실패한 뒤 다시 후쿠타케 서점으로 성공해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이후 통신 학습지 사업에서도 크게 성공했고 이를 발판으로 통신교육과 수험서에서 최고의 회사로 도쿄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었다. 성공한 테츠히코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는데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한 캠핑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회사 본부가 있던 오카야마현과 가까우면서 작고 경치가 좋은 나오시마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1985년, 당시 ‘나오시마 쵸장(直島町長)’이던 ‘미야케 지카츠구(三宅親連)’와 손을 잡고 캠핑장을 개발하기로 하였다. 쵸장 역시 나오시마 섬에 좋은 교육문화 공간을 개발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6년 테츠히코 회장은 급성 신부전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었다.

회장의 장남인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는 와세다대학교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40세에 도쿄 생활을 급히 마무리하고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회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후쿠타케 서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 끝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살기를 위해서,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회사가 되자”라고 결심했다. 그렇게 회사 베네세가 탄생했다. 라틴어로 BENE는 ‘WELL 잘’, ESSE는 ‘BEING 살기’ 즉, ‘WELL-BEING 잘 살기’가 ‘베네세’다. 1991년 기업이념을 발표했고, 1995년 4월 회사 이름을 후쿠다케 출판사에서 ‘베네세 코퍼레이션’으로 변경하고 증시에 상장했다. 그는 부친의 뜻을 받들어 나오시마섬의 절반 가까이 사들이고, 1989년 서쪽 해안에 국제 청소년 캠프장을 완성했다. 이때부터 그는 안도 다다오와 함께였다. 처음에는 후쿠다케 서점의 사원과 아이들의 소규모 캠프로 시작했다. 캠프장을 짓기 위해 오가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국가 행정력이 미치지 않고 섬이 방치되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국가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으니 현대미술을 무기로 삼고 섬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려고 했다.


자연, 예술, 건축의 공존을 꿈꾸다


나오시마 프로젝트 시작에 앞서 섬마을 사람들을 위해 학교, 마을회관, 선박 터미널 등을 지었다. 주민설명회를 2000번 이상 열었다. 섬 주민과 외지인이 처음부터 기분 좋게 만나게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최고의 미술 작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작품에는 최고의 메시지가 있고 그래야 사람을 모으는 힘이 생긴다고 믿었다.

1992년 ‘자연, 예술, 건축의 공존’이라는 컨셉으로 갤러리와 호텔을 겸하는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을 열었다. 세토나이카이를 내려다보는 높은 지대에 지어진 건물은 그 자체로 자연과 건축의 공존을 보여준다. 뮤지엄의 작품 역시 건물을 짓고 소장품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작가가 위치를 지정하고 그 공간에 맞는 영구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건물과 예술의 공존을 느낄 수 있다. 이 방식은 건물 내부뿐 아니라 단지 곳곳, 해안가, 인근 울창한 숲까지 이어져 나오시마의 환경과 건축에 영감을 받은 특별한 현대미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1997년 라차드 롱(Richard Long)의 '원(Circles)' 시리즈 중 하나로 내해에서 떠다니는 나무들을 모아 만든 원으로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돌과 진흙으로 만든 원들과 함께 있다. 자연과의 관계를 형성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사진_박진한

독특한 접근 방식을 예를 들어보자. 건물 내부에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고 하늘만 정사각형으로 개방된 곳을 계획하자 작가들이 선택을 꺼려 끝까지 구성 여부를 망설였다. ‘야스다 칸(安田侃)’이 이곳을 선택했고 이 공간만의 작품을 제작했다. 두 개의 크고 매끄러운 마블 스톤, 이것은 누워보라는 작가의 조용한 권유였다. 여기에 누우면 열린 정사각형 천장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하늘의 풍경만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제목도 ‘하늘의 비밀 The Secret of the Sky’이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에 있는 '야스다 칸(安田侃)'의 작품 '하늘의 비밀 The Secret of the Sky'이다. 두 개의 크고 납작한 돌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사각형 하늘 전경이 경이롭게 느껴지며, 관객 누구도 같은 상을 볼 수 없다. 사진_박진한

태풍에 떠내려간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도 자연과 예술의 결합이다. 호박은 1995년 나오시마 전시회에서 전시된 작품으로 쿠사마는 기존에 만든 호박과의 차별화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 그때까지 만든 것 중 가장 큰 호박이고 외부에 전시된 첫 번째 작품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놓인 위치인데 세토나이카이로 돌출된 부두 나오시마 항에 있다. ‘엄청나게 크고, 땡땡이 무늬의 샛노란’ 이 호박은 눈에 잘 띄었고 단박에 마스코트가 되었다. 태풍이 오면 파손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 설치했다. 1994년 설치 당시의 작가와 호박을 보고 싶다면 베네세 아트싸이트(benesse-artsite.jp)에 가보라. 또 하나의 마스코트는 빨간 호박이다. 2006년 10월 7일에 오픈한 빨간 호박은 노란 호박보다 더 크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배로 와 우노 항에 내리기 전 가장 먼저 보이는 곳에 있다. “예술의 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환대가 느껴지는, 비할 데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나오시마 서쪽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돌출한 부두 끝에 설치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난과(南瓜, 호박)'로 1994년에 설치되었으며, 곧바로 나오시마의 상징이 되었다. 2021년 태풍 피해를 받기 전의 작품이다. 사진_고은정

베네세의 구조와 역할 그리고 소이치로


박충섭(2015)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베네세 아트사이트 나오시마(Benesse Art Site Naoshima)’는 다양한 사업의 총칭이다. 주식회사 베네세홀딩스, 주식회사 나오시마 문화마을(100% 자회사), 공익재단법인 후쿠타케 재단 등이 연계 운영하고 있다. 나오시마 국제 캠핑장, 베네세 하우스(미술관과 호텔)의 운영은 ‘주식회사 나오시마 문화마을’이 하고 있다. 미술관을 포함한 일상 운영비는 캠핑장과 호텔 수입으로, 예술 작품 구입과 기획 비용은 베네세 홀딩스에서 지원한다. 지추(地中)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의 운영은 ‘나오시마 후쿠타게 미술관재단’에서 한다. 수입의 60% 정도를 미술관 입장료 수입으로 부족분은 베네세 홀딩스의 주식 배당금과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문화진흥 활동을 하는 후쿠타케 지역진흥재단과 후쿠타케 학술문화진흥재단은 베네세홀딩스의 주식 배당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러 이야기와 철학적인 관점이 있지만 연재를 진행하면서 추가로 쓸 기회를 남겨두기로 한다.

지추 미술관에서 해안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이우환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이 미술관 작품 번호는 na20이다. 한국 작가 이우환의 작품들이 실내와 주변 잔디밭에 전시된 개인 미술관이다. 건물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최근 새 작품이 야외에 설치되었는데 설명은 나오시마 편에서 하겠다. 사진_제종길
모래 해안과 접한 호텔에는 넓은 야외 조각 공원이 있으며, 멀리 노란 호박이 있는 부두와 부두를 지나 언덕까지 가기 전 해안 일대에는 후쿠다케 테츠히코가 평소 꿈꾸던 캠프장이 있다. 사진_제종길

소이치로 회장은 2012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후원하는 개인과 단체에 주어지는 영예스러운 상인 ‘몽블랑 국제문화상(Montblanc de la Culture Arts Patronage Awards)’을 받게 되었는데 시상식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과도한 도시화에 대한 레지스탕스”라고 말했다. 회장이 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도쿄에 머무는 동안이었다고 한다. 그의 눈에는 수도의 사람들은 너무 빨리 움직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물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찾고, 그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했다.

댓글 4개

4 комментар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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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ость
18 дек. 2024 г.
Оценка: 5 из 5 звезд.

그곳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아름다운 예술 섬이 우리나라에도 생기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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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17 дек. 2024 г.
Оценка: 5 из 5 звезд.

우리나라도 기업들이 다양한 예술 활동이나 예술 콘텐츠를 개발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이는데, 이처럼 지속적인 지역발전 및 환경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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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ость
14 дек. 2024 г.
Оценка: 5 из 5 звезд.

과도한 도시화와 그에 따른. 메마른 정서에 단비를 내리는 예술 문화 계획이 안산에 있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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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ость
13 дек. 2024 г.
Оценка: 5 из 5 звезд.

한국 작가 이우환 미술관이 일본 대표 축제 무대에 작품으로 위치한것이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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