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뉴라이트란 무엇인가④ | 뉴라이트는 왜 ‘건국절’ 제정에 목을 매나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시도를 살피고, 그 근거와 함께 누구를 건국공로자로 내세우나를 밝혀서,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이 3.1운동과 임시정부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의 법통을 부정하는 역사 쿠데타임을 말한다


2024-11-29 박한용



박한용 | 역사평론가, 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반제동맹 조직운동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순천향대·한성대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대학원 강사,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교육홍보실장 등을 거쳤다. 주요 논저로 「1920년대 후반 국제반제동맹의 출범과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의 대응」,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공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공저),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변준호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영주독립운동사』(공저), 『시와 이야기가 있는 우리 역사 1, 2』(공저) 등 다수가 있다.

 

광복절을 없애고,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


수구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반드시 들고나오는 역사 어젠다가 있다. 바로 ‘건국절’ 제정 시도이다. ‘건국절’ 제정이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최대 국경일인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없애고, 대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새로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기록을 확인해 보면 1948년 건국설은 2003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김용학 의원 등 13명이 ‘건국절 개칭 법안’을 발의하면서 등장했다. 그 뒤 이른바 ‘1948년 건국론’ 즉 ‘건국절’론이 대중 공간에서 모습을 갖추고 등장한 것은 2006년 이영훈 교수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동아일보 칼럼이다(2006년 7월 31일). 이영훈은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라면서, 먼저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깎아내렸다.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은 일제가 무리하게 제국의 판도를 확장하다가 미국과 충돌하여 미국에 의해 제국이 깨어지는 통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떠한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근대화 세력과 자유민주주의 국제 세력의 결합?


이들의 주장은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미약해서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미국 등 연합국에 의해 해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타율적 해방론). 따라서 1945년 8월 15일은 미국에 의한 ‘해방’이지 우리 자신의 독립운동으로 쟁취한 독립일이 아니니, 광복절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일제의 고삐가 풀린 ‘해방일’ 정도로 부르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 후 3년 동안(미군정 시기)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건국운동을 전개해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으니,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용자)에 찾아왔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에 걸쳐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온 근대화 세력과 해방 이후 미국을 따라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국제 세력의 결합으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라고 보았다. 그러자 조선일보가 여기에 적극 호응하면서 “8.15의 이름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하자는 제안들은 젊은 세대의 올바른 역사관을 위해서라도 검토할 만하다”라고 힘을 실었다(『조선일보』 2006년 8월 15일자 사설).


이명박 정권의 건국절 시도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뉴라이트 세력은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이들은 정권 차원에서 ‘건국절’ 제정을 본격 밀어붙였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 보수 인사와 뉴라이트 세력을 중심으로 8·15광복 63주년 대신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대대적인 건국절 행사를 준비했다.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년』이란 공식 홍보책자를 만들어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마저 부정하면서 정권 차원에서 건국절을 밀어붙였다.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을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조선, 동아, 중앙의 건국절 옹호


이에 호응하듯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가 약속이나 한 듯 8·15 사설에서 건국절을 옹호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후 세워진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 이 대한민국 건국 신화와 북한의 현실을 보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 선택이 얼마나 옳았던 것인지를 새삼 절감한다. 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 국민의 태반이 이 위대한 나라의 탄생일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후세들에게 대한민국을 비방하고 역사를 거꾸로 뒤집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고 엉뚱하게도 본고장에서 다 망해버린 좌파의 이념이 방방곡곡의 서점을 뒤덮고 있다. 우리가 오늘 민족 광복과 함께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동시에 새기고 음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조선일보』 2008년 8월 15일 사설)


”광복 63년, 건국 60년이 되는 아침이다. 그 역사적 비중 앞에서 광복절이 맞니, 건국절이 맞니하는 다툼은 옹졸하다. …… 단순한 '정부수립의 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훌륭한 나라를 일으킨 날이라는 자긍심에서 건국이라 불러 마땅하다. ……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성공신화는 과장된 수사나 정파적 레토릭이 아니다, 객관적 사실이다. …… 이제 대한민국의 60년을 신식민지와 분단, 독재와 종속과 같은 부정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자학적 역사관을 벗어 던져야 한다.“(『중앙일보』 2008년 8월 15일 사설)


"우리는 남쪽에서만이라도 유엔 감독하에 총선을 치르고 정부를 수립해 자유민주주의 씨앗을 뿌린 건국 주역들의 공로를 인정해야만 한다."(『동아일보』 2008년 8월 15일자 사설)


극렬 친일파라도 해방 후 3년간 반공투쟁에 참여자가 건국공로자?


이들의 논리는 독립운동가들은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기는커녕 독립 국가의 전망조차 준비하지 못했으며(실패한 운동), 해방은 미국 등 연합국의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건국운동은 해방 후 3년 동안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은 일제강점하의 독립운동가나 임시정부와는 관계가 없으며, 해방 후 3년 동안의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인물들이 건국 공로자가 된다. 결국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항일투쟁에 의해 독립을 쟁취한 나라가 아니라, 해방 후 3년간 ‘피어린 반공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국가로 재규정되고, 따라서 과거 극렬하게 친일을 했더라도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활동에 참여하기만 하면(그 핵심은 반공투쟁일 것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애국투사이자 건국공로자가 된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명박 집권기인 2008년과 박근혜 집권기인 2013년 여당은 건국절 제정 법안(「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함께 「건국공로자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 또는 제출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해당 기간에 ‘신탁통치를 반대하거나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하여 활동하다가 그 활동으로 인하여 순국한 자 및 그러한 활동 사실이 있는 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적정한 서훈과 응분의 예우’”


노덕술, 김성수, 방응모, 홍진기, 서북청년단이 건국공로자?


이 경우 노덕술과 같은 악질 고등계 형사 출신이나 김성수(동아일보 창간주)·방응모(전 조선일보 사주)·홍진기(중앙일보 창간주)와 같은 친일파 또는 서북청년단과 같은 폭력 극우 조직원 등이 모두 건국공로자로 둔갑한다. 이와 달리 민족주의자로서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조차 대한민국 건국-분단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국가사범’이 되고 만다.


조선총독부—친일·친미·반공·독재로서 국가체제?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부정하고―법통성이라는 용어의 적절성은 별개의 논의로 하더라도, 인맥으로는 근대화 세력(주력은 친일파)—이승만(독재자)-박정희(친일파·독재자)로 이어지는 계보를, 국가체제로는 조선총독부(일본제국)-친일·친미·반공·독재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법통으로 삼는 셈이다. 가히 환부역조(換父易祖)라 하겠다. 조·중·동으로 호칭되는 수구 언론이나 극우 반공 세력이 이들 뉴라이트의 건국절에 힘을 적극 실어 주는 숨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배경에서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개정 또는 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건국절의 정당성을 교과서에 싣고자 한 것이다.


3·1운동,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역사 쿠데타


‘건국절’의 더 큰 문제는 과거 친일 세력이나 독재자 극우 세력에 대한 면죄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건국절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부정하고, 반공과 독재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이를 현재와 미래의 정통성으로 삼고자 하는 일종의 역사 쿠데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1운동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1일 수립되었다. 사진은 이듬해 1920년 1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년축하식을 마치고 촬영했다. 사진_독립기념관


댓글 0개

Comments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