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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기가 남아도 정전은 일어날 수 있다. 추석 연휴가 위험하다.

전기는 부족해도, 남아도 문제다. 에너지 전환에 대응하는 스마트한 전력체계 정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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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  편집인



대한민국의 전기화율은 22~23%로 세계 평균보다 조금 높다. 전기화율은 최종에너지 소비 가운데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산업과 수송 부문에서는 세계 평균보다 밑 돈다. 제조업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내연기관 중심의 교통체계 때문이다. 반면, 건물 부문은 양상이 다르다. 세계 평균이 30%인데 우리는 40%를 넘는다. 도시로 집중과 아파트 보급이 확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정전(停電)이 일어나면 가정과 사무실의 전기 사용량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올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처음으로 100GW를 넘었다.


정전은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 전등이나 전자기기가 작동하지 않은 상태다. 현대문명의 전기화를 고려해 보면 정전은 생활 불편을 넘어 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위험이다.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멈추게 된다. 보통은 전력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한여름 무더위에 에어컨 사용이 폭증할 때, 한겨울 난방 가동이 급증할 때, 정전은 현실적 공포가 된다. 최대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그 균형이 깨지면 공포는 현실이 될 수 있다. 타격은 도시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세계적으로 인구의 60% 가까이가 도시에 산다. 특히 우리나라는 81.6%가 도시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정전이 꼭 전력이 부족해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전력이 남아도 일어날 수 있다. 전력망은 수요와 공급 균형이 항상 맞아야 한다. 전력 수요가 평소보다 크게 줄어들면 그 균형이 흔들리기 쉽다. 발전소가 급감하는 수요에 바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기가 남게 되면 주파수가 상승하고, 송전망·배전망 전압이 불안정해져 설비 오작동 가능성이 커진다. 이때 자동보호 시스템이 작동되고 기기들이 차단된다. 전력망은 복잡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한 구간이 차단되면 연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지역 정전, 전국 정전이 발생되는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 시대인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지만 세계적으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대표적인 사례다. 2020년 4월 5일 인도에서 밤 9시부터 9분간 소등하는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 봉쇄로 전력 수요가 순간 31GW 급락하자 전국적 정전 경고등이 켜졌고, 모디 총리가 국민들에게 자발적 소등을 호소하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밖에 중국,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 지역에서 그해 국지적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전국 단위의 대규모 장기 정전 사태로 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저 전력 정전’의 위험성에 대해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긴 연휴도 ‘저 전력 정전’의 잠재적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의 춘절, 유럽의 부활절, 크리스마스 연휴 때 중·소도시에서 국지적 단기 정전이 보고되곤 했다. 팬데믹 제한 조치로 이동이 불편해지고 휴일이 길어지면 산업·상업 시설 가동이 빠르게 줄어든다. 그럼 전력 수요는 급감하게 된다. 국내에선 다행스럽게 팬데믹과 연휴로 인해 정전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2020년 3월 11일부터 3년 2개월 동안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에도 전력은 안정적으로 운용됐다. 추석·설 연휴에도 마찬가지이었다. 위험 요소는 있지만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제어해 왔고 국민들도 이에 대한 신뢰가 있다. 이렇게 일상은 유지된다.


지난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이전 작업 중 케이블 연결 해제 등 과정에서 불꽃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647개 정부 업무 시스템이 영향을 받았고, 약 70여 개 시스템은 중단되었다. 주민등록, 재난안전, 건강보험, 우체국 금융·우편 서비스 등이 일부 정지되었다. 데이터 보안사고 가능성에도 노출되었다. 그동안 위험 요소로 간주되어 왔던 ‘백업 또는 이중화 시스템의 취약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흔들리면 일상이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간 사회에서 100% 완벽한 건 없으며 틈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잘 제어하고 통제하다가도 실수든, 예측 불허든, 불가항력이든 상황은 틈을 만든다. 정말 금기해야 하는 건 지금껏 문제가 없었으니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고다. 위험 요소가 잔존하는 한 사고는 언제나 열려 있다. 위험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공고한 국가 시스템에도 해당된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해야 현실적이고 충분한 대비가 가능해진다. 당위가 사회와 국가의 안위를 지켜 주는 건 아니다. 평온한 일상이 지켜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은 노력이 요구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정부 업무 마비로 ‘국가 시스템 신화’에 흠집이 생긴 건 사실이다. ‘저 전력 정전’에 대한 위험성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길다. 열흘이 넘는다. 지친 심신을 잠시 쉬게 하고 풍성한 한가위를 즐기는 건 국민의 권리다. 다만, 국민이 기대하는 대로 공공 시스템이 변함없이 돌아가야 함을 전제로 한다. 연휴 중 10% 이상 전력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별일이 없겠지 하면서도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태를 보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관계 부서와 기관의 각별한 관심과 대비가 요구된다. 2025년 추석 연휴는 국가 전력계통 운영 면에서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저 전력 정전’ 위험도가 커지는 걸 두고 재생에너지 확대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전력 수요 변화에 맞는 공급 대응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생과 간헐성은 이 에너지가 갖는 본디 성질이다. 중요한 건 그 성질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성질에 맞는 전력 체계와 수요와 공급 구조를 현명하게 구축해 가는 것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건 기존 에너지 체계에 안주하려는 관성이다.


표는 산업통상자원부 지정 전력거래소(KPX)가 운영하는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의 최대 전력 수급 상황으로, 작년(2024년) 추석 전후 연휴 기간(9월 16일~18일) 최대 전력 사용량을 살펴볼 수 있다. 보통 공휴일이나 명절에는 산업용 전력 수요가 줄기 때문에 전력 수요가 낮아진다. 너무 큰 수요 감소는 계통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24년 추석 연휴 기간에는 늦더위가 극심해 냉방 수요가 늘면서 최대 전력 수요가 2023년보다 30% 급증했다고 한다. 이처럼 전력 소비가 줄어드는 추석 연휴에도 저 전력으로 인한 정전 위험에 대비해 수요 관리와 신속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사진_전력통계정보시스템
표는 산업통상자원부 지정 전력거래소(KPX)가 운영하는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의 최대 전력 수급 상황으로, 작년(2024년) 추석 전후 연휴 기간(9월 16일~18일) 최대 전력 사용량을 살펴볼 수 있다. 보통 공휴일이나 명절에는 산업용 전력 수요가 줄기 때문에 전력 수요가 낮아진다. 너무 큰 수요 감소는 계통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24년 추석 연휴 기간에는 늦더위가 극심해 냉방 수요가 늘면서 최대 전력 수요가 2023년보다 30% 급증했다고 한다. 이처럼 전력 소비가 줄어드는 추석 연휴에도 저 전력으로 인한 정전 위험에 대비해 수요 관리와 신속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사진_전력통계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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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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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전기는 남아도, 모자라도 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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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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