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의 지구와 정치ㅣ뉴딜의 설계자, 노동자의 수호자, 그리고 불굴의 개혁가, 프랜시스 퍼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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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4일
- 4분 분량
미국 역사상 최초 여성 연방 장관이었던 프랜시스 퍼킨스는 뉴딜 정책의 실질적 설계자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획기적인 법안을 추진했다. 그녀의 신념과 용기는 현재까지도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2025-3-13 윤효원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차별과 편견을 넘어 개혁의 중심에 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개혁 중 하나인 뉴딜 정책은 흔히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름과 함께 언급된다. 하지만 그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실행자는 다름 아닌 프랜시스 퍼킨스(Frances Perkins)였다. 그녀는 단순한 행정관료가 아니라, 노동자 보호와 사회보장을 위한 신념과 용기를 갖춘 개혁가였다. 당시는 여성이 고위 행정직을 맡는 일이 드물었고, 그녀가 내각에 들어선 것조차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퍼킨스는 이러한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고 뉴딜 정책을 실현한 개혁의 중심에 서 있었다.

개혁가의 길을 걷다
프랜시스 퍼킨스는 1880년 4월 10일,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마운트 홀리오크 대학에서 화학과 생물을 공부하면서도 사회 개혁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졸업 후에는 시카고의 헐하우스에서 빈민 구제 활동을 하며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며, 노동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은 1911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 화재였다. 뉴욕 맨해튼의 한 봉제공장에서 불이 났고,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대다수가 젊은 여성 노동자였고, 비상구가 폐쇄되어 있었던 탓에 건물 안에 갇힌 채 목숨을 잃었다. 퍼킨스는 이 사건을 목격한 후,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그녀는 뉴욕주 산업위원회에서 노동 환경을 조사하며 노동법 개혁을 추진했고, 1929년에는 뉴욕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뉴욕주 주지사였던 루스벨트와 협력하며 개혁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여성 장관, 편견을 넘어 정책을 실현하다
1933년,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퍼킨스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연방 장관 임명이었으며, 많은 반대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남성 중심의 내각에서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고, 언론은 그녀의 정책이 아니라 모자 스타일과 옷차림을 주목하며 조롱했다. 하지만 퍼킨스는 이에 개의치 않고 정책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퍼킨스가 노동부 장관직을 맡으며 제안한 개혁안은 대공황으로 고통받던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녀는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 1935)을 설계하여 실업보험과 노인연금, 장애인 지원을 도입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사회보장제도로,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법안이었다. 또한 공정노동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 1938)을 통해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녀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와그너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 1935)을 지지하며,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데도 힘썼다.

노동조합과의 협력, 그리고 국제적 영향력
퍼킨스는 노동조합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당시 미국의 양대 노총이었던 보수적인 AFL(미국 노동총연맹)과 진보적인 CIO(산업별 노동조합회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산업별 노동조합을 강화하려는 CIO의 움직임을 지원하면서도, 노동계 내부의 분열이 노동 개혁을 저해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1936년 자동차 산업의 파업과 철강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노동자 편에 섰으며, 공정한 노동조건을 보장하도록 정부가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퍼킨스의 정책은 단순히 미국 내에서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미국이 1934년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뉴딜 정책에서 마련된 노동 보호 원칙이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에 반영되도록 했다. 이는 노동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문서로, 2차 대전 이후 노동권이 국제적인 기준이 되는 데 기여했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인종, 신념, 성별에 관계없이 경제적 기회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명확히 했다. 이는 퍼킨스가 미국에서 추진한 사회보장법, 최저임금제, 노동시간 제한 등 뉴딜 정책의 핵심 가치와 직결되었으며, 그녀의 정책이 ILO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 준다. 그녀는 미국 내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노동 기준을 강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차별에도 흔들리지 않은 불굴의 개혁가
퍼킨스는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 신념과 용기의 상징이었다. 그녀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불리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때로는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1939년, 반노조적인 보수 정치인들이 그녀를 탄핵하려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뉴딜 정책을 후퇴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자는 단순한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 정신은 1944년 5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ILO 총회에서 ‘필라델피아 선언’과 일목상통하는 것이었다.
뉴딜 개혁의 교훈: 경제위기 속 노동자의 보호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가 서거한 후, 부통령이었던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퍼킨스는 몇 달 뒤인 1945년 6월 30일 노동부 장관직에서 사임했다. 트루먼은 루스벨트의 유산을 일부 계승했지만, 자신의 행정부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또한, 전후 경제 복구와 노동 문제에 대한 트루먼의 접근 방식은 퍼킨스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트루먼은 노동정책에 있어 루스벨트와 다른 접근 방식을 선호했고, 노동조합과도 거리를 두려 했다.
이러한 행정부의 방향 변화 속에서 퍼킨스는 자신이 추진해 온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퍼킨스는 자신이 추진해 온 노동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1945년 6월 30일 자진 사임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에도 공무원위원회(U.S. Civil Service Commission)에서 연방 공무원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썼으며, 연방 행정 개혁에 참여했다.
1952년부터는 코넬 대학교에서 노동정책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노동 개혁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이후에는 공무원위원회(U.S. Civil Service Commission)에서 연방 공무원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썼다. 그녀는 1965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만든 제도와 정책은 여전히 미국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퍼킨스의 정신
퍼킨스는 단순히 "최초의 여성 장관"이 아니라, 뉴딜의 실질적인 설계자이며 노동자의 삶을 바꾼 개혁가였다. 그녀가 대공황과 실업사태, 경제 위기 속에서 과감하게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도 심각한 경제위기와 실업사태, 경기침체 속에서 새로운 개혁이 절실하다. 100년 전 미국이 노동자를 위한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듯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위한 진보적 개혁이 필요하며, 이를 실현할 퍼킨스와 같은 헌신적이고 유능한 행정가가 절실하다.
쿠데타와 내란에 맞선 한국의 ‘퍼킨스’들
12.3 윤석열 내란 이후, 2030 여성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위와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목소리에서 우리는 백 년 전 퍼킨스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모습을 본다. 그녀가 불굴의 의지로 성차별과 사회적 장벽을 넘어 노동자 보호와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졌듯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개혁과 민주주의를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랜시스 퍼킨스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녀가 남긴 정책과 신념은 지금도 유효하며, 새로운 개혁을 꿈꾸는 이들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다. 그녀의 정책은 현재까지도 미국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정책의 기반이 되고 있으며, 그녀의 신념과 용기는 오늘날까지도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그녀의 삶과 업적은 중요한 교훈이 된다. 그녀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개혁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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