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의 전쟁과 기후ㅣ기후변화와 북핵, ‘연결된 위기’와 ‘융합적 해법’을 주목하자
- hpiri2
- 3월 21일
- 4분 분량
2025-03-20 정욱식
북핵과 기후변화 문제는 연결된 위기이며, 군비 통제와 축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핵군축 노선을 주목하면서 미국과 북한의 정상 간 회담이 무르익고 있다. 우리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군비축소형 세력균형'으로 전환할 때이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북핵보다 기후변화가 더 큰 위협 요인
작년 가을에 주목할 만한 여론조사가 나왔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의 공동 기획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안보 위협 인식에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북핵을 누르고 최대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2024년 10월 8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복수응답, 1·2순위 종합)는 질문에 응답자의 51.2%가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를, 51.1%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꼽았다. 거의 같은 비율이지만, 2023년에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라고 답했던 비율이 41%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0% 이상 늘어난 게 눈에 띤다. 특히 기후변화를 최대 위협으로 꼽은 비율은 30대(52.3%), 40대(58.2%)에서 높았다.
이와 관련해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미래 세대가 새롭게 떠오르는 비전통 안보 이슈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 수치로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여전히 전통 안보 이슈만 중시할 뿐 정치권 등에서 이런 우려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고민해 볼 지점”이라고 덧붙였다고 중앙일보는 보도했다.
문제는 기후위기와 북핵이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있다. 매년 지구의 연평균 최고 기온이 갱신될 정도로 기후변화는 ‘위기’를 지나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또 현재 5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이미 확보한 핵물질과 추가적인 핵물질을 핵무기 제조용으로 사용하면 수년 내에 핵무기 보유량 100개까지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북핵과 기후변화는 연결된 위기
그렇다면 이들 양대 위협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각기 다른 속성을 품고 있지만, 이들 문제가 ‘연결된 위기’임을 자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량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군사 활동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또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전 세계의 군사비는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에 필요한 소중한 재원을 낭비하고 있다. 전쟁·군비경쟁·지정학적 경쟁이 지구촌을 휘감으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국제협력도 뒷전으로 밀려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는 예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 한복판에 있다. 작년 한해 한반도를 강타한 폭염과 게릴라성 폭우, 그리고 해양 환경에 큰 변화를 몰고 온 해수온 상승 등 여러 이상 기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반도는 갈수록 기후위기 취약 지역이 되고 있다. 또 전시도 아닌데, 지구에서 군사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북핵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원인이자 산물이다. 핵무력 강화를 향한 조선의 폭주는 비핵 군사력에 있어서 세계 5위에 도달한 한국의 군사력, “핵 기반 동맹”으로까지 강화되었다는 한미동맹, 군사동맹을 방불케 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등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일이 북핵 위협 대처를 이유로 군비증강과 군사적 결속을 강화할수록 “군사력 균형”과 “전략적 균형”을 중시하는 조선도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의 고삐를 더더욱 당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군비경쟁이 격화되면 기후위기도 악화된다.
그럼 연결된 위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인기 없는 주장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군비 통제와 축소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한미연합훈련을 비롯한 군사 활동을 줄일수록 탄소 배출도 줄어들고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재원은 늘릴 수 있다. 우리가 군비 통제와 축소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다면, 조선의 핵무력 증강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트럼프, 북한은 핵보유국이라 칭하며 핵군축 동참 메시지
이와 관련해 앞선 글에서 소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심은 기회를 품고 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 3대 핵보유국이자 군비 지출 국가들은 미국·중국·러시아가 핵무기를 감축하고 국방비도 절반으로 줄이자라고 말해 왔다. 또 3월 19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전략무기의 확산을 중단시킬 필요성을 논의했으며 가능한 광범위하게 이를 적용시키기 위해 다른 국가와 협력키로 했다”라고 백악관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궁도 “두 정상이 글로벌 안보와 핵 비확산 문제에 대한 협력 구축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라고 소개했다. 양측의 발표에 온도 차이는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되면 핵무기를 비롯한 군비 축소가 중요한 의제로 부각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가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의 문법에서 크게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의 전통적인 접근은 자국의 핵무기 정책이나 전략에는 손을 대지 않고 조선의 핵과 탄도미사일 포기만 요구한 것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칭하면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비핵화나 핵군축에 함께 나서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발제에는 김정은과 ‘공감’을 이룰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세계의 비핵화나 핵군축은 조선의 오래된 화법이다. 조선은 미국 등 다른 핵보유국은 핵군축을 하지 않고 오히려 현대화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핵보유를 정당화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중·러, 특히 미국이 솔선수범을 보이면서 조선의 동참을 요구하면 이는 ‘공감을 통한 압박’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틈만 나면 김정은과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대화 재개 신호를 보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북한, '적대적 위협이 존재하는 한'이란 조건에 주목
또 김정은은 세계 질서가 다극화되고 있다며, “전략 국가”를 강조해 왔다.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다지는 게 그 핵심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김정은을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도자로 인정하면서 세계의 전략 문제, 특히 핵군축이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은 이를 조선의 전략적 지위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간주할 수 있다. 조선이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강요받았던 처지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전략무기 문제를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인 요소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선이 2월 18일 외무성 담화에서 “북한 비핵화”가 불가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적대적 위협이 존재하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바이든 행정부 때에는 여지조차도 두지 않았다가 트럼프가 돌아오자 조건을 환기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
아마도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은 내년에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경제발전과 국방력 강화를 아우르는 5개년 계획을 올해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내년 초에 열릴 9차 노동당 대회에서 대미 전략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전략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트럼프로서도 올해는 러-우 전쟁 종결과 그 이후 미중, 미러, 미중러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핵군축과 국방비 축소를 추진하고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타진할 것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군비축소형 세력균형'으로 전환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북미가 군비통제나 핵군축 협상을 벌이는 게 조선의 핵보유를 인정해주는 셈이라는 ‘경계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러한 협상이 장기적으로 한반도나 동북아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 창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차분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조선은 비핵화가 “실천적으로나 개념적으로마저도 이제는 더더욱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입장인데, 비핵지대는 실천적·개념적으로 공감을 이룰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또 핵전쟁의 위험이 큰 한반도나 동북아를 비핵지대화하는 것은 트럼프의 핵군축 노선에 어울리는 의제가 될 수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졸저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 참조)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등장은 북핵을 비롯한 군사적 위기와 기후위기를 동시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한국은 이를 기회로 삼아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면서 추구해 왔던 ‘군비경쟁형 세력균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군비축소형 세력균형’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