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ㅣ어디 한번 훌쩍, 날아오르는 새들
- hpiri2
- 8시간 전
- 4분 분량
2025-10-24 안은영
새들은 하루종일 무엇을 할까? 마크 하우버의 『새의 시간』은 자정부터 시작해서 시간 단위로 한 종씩 24시간이란 앵글로 전 세계의 새들을 살펴본 책이다. 소개 된 스물네 종의 새들은 흥미를 넘어 경외심까지 든다.

안은영 작가, 책방 사이 대표
기자로 밥벌이를 했고 『여자생활백서』,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를 거쳐 강동구에 숲·생태·기후·환경 전문 독립서점 ‘책방 사이’를 운영 중이다. 지구에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변화의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무엇 때문에 지불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다.
계절이 바뀌는 낌새는 하늘에서 시작된다. 구름과 바람과 햇살이 대기를 휘감아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후끈하거나 달큼하거나 쩡하다. 이윽고 새가 난다. 새들이 먼 곳에서 오고 있거나 멀리로 뜨고 있다면 명백히 계절이 새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코가 시큰한 가을 아침이면 창밖으로 오와 열을 맞춰 이동하는 새들의 비행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습성을 유지하기 위해 터전을 바꾸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추운 곳의 새들은 춥게, 더운 곳의 새들은 덥게 지낸다. 그래서 새가 이동한다는 것은 숲이 이동한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세계를 날개에 얹어 지구를 횡단하는 온갖 새들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

계절을 순환하는 새들의 시간
『새의 시간—날아오르고 깨어나는 밤과 낮』(마크 하우버 글, 토니 에인절 그림)은 지구 곳곳에서 서식하는 익숙하거나 희귀한 텃새들의 이야기를 딱 24시간의 앵글에 맞췄다. 시작을 알리는 새는 자정에 가장 활발한 헛간올빼미(Barn Owl)다. 대다수가 시각에 의존하는 새의 특성상 어두컴컴한 한밤중에 뭘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올빼미 류는 빛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온갖 설치류가 낙엽 더미를 헤치며 내는 소리에 귀를 세운다. 그러려면 올빼미 자신은 숨소리도 삼킬 정도로 과묵해야 한다. 올빼미의 몸은 실제로는 작은 편인데, 몸에 부숭부숭 나있는 푹신한 깃털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준다. 소리 없이 날아올라 공중을 맴돌다가 지상의 먹잇감을 정확히 낚아챈다.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의 깊은 숲에 산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기름쏙독새(Oilbird)는 야행성 조류 중 유일하게 열매만 먹는 편식쟁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도 일찍 잡는다는 속담은 기름쏙독새를 비껴간다. 새벽 두 시에 나뭇가지에 미동 없이 앉아 있는 이 느리고 작은 새의 필살기는 독특한 지저귐이다. 치직치직 소리를 다양한 옥타브로 내는데, 이 과정이 동물학자들이 얘기하는 반향정위다. 동물이 음파나 초음파를 낸 뒤 그것이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로 주변의 위치와 방향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찢어질 듯한 소리 때문에 쿠바의 주민들은 이 새들을 프랑스어로 ‘디아블로탱(Diablotin, 작은 악마)’이라고 불렀다. 갓 알을 깬 기름쏙독새는 어른 새보다 몸무게가 더 나갈 정도로 온 몸이 기름 범벅인 채다. 생래적 지저귐에 악의적 별칭을 붙인 것도 모자라 인간은 기름쏙독새 새끼를 잡아 그 기름으로 요리하고 빛을 밝혔다. 다행히 현재는 남아메리카 당국이 서식지를 보호 중이다.
나이팅게일의 몸집은 참새만하다. 하지만 이 새의 이동 거리는 상상을 넘는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부터 광활한 사막과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48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끄떡없이 비행한다. 이 새가 유명한 이유는 이동 거리보다 노래 실력 때문이다.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가인 나이팅게일의 수컷은 최대 200여 종의 악구(최소 두 소절에서 네 소절까지의 구간)를 노래할 수 있다. 당연히 짝짓기에 즉효인데, 노래 레퍼토리가 많은 수컷은 그렇지 않은 수컷의 짝까지 유혹할 수 있다.
엄마 새는 위대하고 무서워
모계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 지역에 사는 야행성 앵무새 카카포는 큰 덩치로 푸드덕 푸드덕 요란하게 난다.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생존력이 낮아 200여 마리가 뉴질랜드의 작은 섬에서 살아간다. 멸종 위기에 처하다 보니 생태학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몸이 됐다.
어느 날 학자들은 특별한 실험을 했다. 비가 자주 내리고 습한 섬의 기후 탓에 암컷 카카포가 먹이 활동을 하지 못하자, 둥지에 견과류와 솔방울을 쉴 새 없이 채워 주었다. 카카포들은 포동포동 살이 올랐고 인위적으로 풍족해진 생활 속에서 암컷은 알을 낳았다. 얼마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알에서 나온 새들은 대부분 수컷이었던 것이다. 개체 수가 늘면 암컷 알도 늘 것이라고 생각했던 학자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적정한 양을 제공하자 새끼 새의 성비가 균형을 이뤄갔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저자는 오전 9시에 세계에서 가장 바쁜 새로 오스트랄라시아의 뉴기니아 앵무를 꼽았다. 암컷 깃털의 밝고 선명한 색깔은 이 종이 암컷의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뜻한다. 색이 선명할수록 다른 암컷에게 우월한 전투 능력을, 수컷에게는 강한 번식력을 보여 주는 신호다. 뉴기니아 앵무는 한 마리의 암컷이 여러 수컷과 짝을 짓는 다자연애종이다.
암컷이 아직 떠나지 않고 살림을 차린 동안에는 암컷과 수컷, 두 마리의 새끼가 산다. 주로 첫째는 암컷, 둘째는 수컷이 태어난다. 열대성 폭우가 빈번한 지역이라 둥지 선택은 매우 중요한데, 침수되기 쉬운 둥지에 사는 어미 새는 나중에 태어난 수컷 알을 죽인다. 먹이가 제한적이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수컷보다 암컷 알을 살리는 낫다는 본능적 판단에서다. 암컷의 존재감이 종의 특성이 돼버린 특별한 새의 특별한 생존법이다.
새들의 둥지쟁탈전
오전 5시의 새, 갈색머리찌르레기사촌(Brown-Headed Cowbird)는 북아메리카를 기반으로 남의 둥지를 빼앗는 데 천부적이다. 여름 한 철 40~70여 개의 알을 낳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빈 둥지들을 정탐해 둔다. 둥지 주인이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남의 둥지에서 알을 품곤 하는 사기 행각 때문에 이 지역 모든 새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다.
갈색머리찌르레기사촌이라면 질색하는 붓미멧새에게 걸리면 대가리에 피가 맺힐 정도로 쪼이는데다, 황금솔새는 경고음을 내서 자신처럼 피해를 볼 수 있는 주변의 새들을 끌어들인 뒤 때로 공격한다. 갈색머리찌르레기사촌도 여기서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 알이 버려지면 그 둥지로 돌아와 남은 알을 깨뜨려 버린다. 새들을 잃은 어미가 새 둥지를 지으면 그곳까지 쫓아가 둥지를 초토화시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알다시피 뻐꾸기도 탁란에 일가견이 있는 새다. 탁란의 노하우도 남다르다. 하루 정도 난관에서 발달시켜 낳는 것인데, 이렇게 나온 알은 다른 새의 알보다 더 빨리 부화할 수 있다. 태어난 후 사나흘된 아기 뻐꾸기는 눈도 못 뜨고 깃털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둥지에 있는 다른 알과 아기 새들을 맨숭맨숭한 어깨로 밀어 떨어트린다.
한 연구에서 연구자가 떨어진 알을 다시 둥지에 넣었더니 기막히게 알아차리고 밀어버리기를 반복했다. 무자비하고 염치없는 공격에는 대가가 따른다. 아기 뻐꾸기가 알을 다 제거하지 못하고 다른 아기 새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면 다른 아기 새보다 느리게 자라고 자주 죽는다. 개개비(Great reed warbler)는 애초에 암컷 뻐꾸기의 산란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둥지 주변에 뻐꾸기가 등장하면 피가 나고 기절할 때까지 공격하고 응징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새는 만여 종이 넘는다. 이 가운데 스물네 종만이 소개되었는데 흥미를 넘어 경외심까지 드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아름다운 푸른색의 하드커버는 한번 잡으면 좀처럼 손에서 놓아지지 않을 만큼 짜릿한 재미로 가득하다. 가을이 왔는가 싶게 추워진 날씨, 조금은 멀리 하늘을 건너다본다. 이 참에 어디 한번 훌쩍 철새가 이동하는 봄과 가을, 겨울과 건기, 여름과 우기, 온대 및 열대 지역 등을 중심으로 톺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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