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배재수 | 다른 기념일은 과거를 기념하지만, '식목일'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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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3 배재수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제81회 식목일을 맞아 국립산림과학원장을 지낸 배재수 교수의 특별기고를 싣는다. 식목일 유래, 역사, 변화, 1946년 4월 1일 첫 식목일이 개최된 역사적 사실과 1947년 4월 5일로 변경된 과정, 삼국통일 날짜 오류 등 식목일 유래의 정확한 기록을 바로 잡고, 80년간 변화한 식목일의 의미와 미래 방향을 제시한다.

배재수 교수는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서 1997년 「일제의 조선 산림정책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속성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산림의 이용과 보전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2005년~2010년 기후변화협약 협상에 산림 부문 정부 대표로 참여했다. 2008년 이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산정을 위한 작업반에 참가하여 산림 부문 온실가스 흡수량을 산정하고 감축 대안을 제시했다. 2010년~2012년 국제임업연구소(CIFOR)에 파견되어 REDD+ 연구를 수행하고, 2011년~2016년 인도네시아 롬복을 대상으로 REDD 사업 타당성 연구를 추진했다. 전 국립산림과학원 원장이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임중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 요인』(공저), 『조선후기 산림과 온돌: 온돌 확대에 따른 산림황폐화』(공저), 『일제강점기 산림정책과 산림자원의 변화: 빈약한 산림자원, 과도한 목재생산』(공저), 『광복 이후 산림자원의 변화와 산림정책: 녹화 성공과 새로운 도전』(공저)이 있다.
다른 기념일은 과거를 기념하지만, 식목일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곧 제81회 식목일을 맞이한다. 우리나라 식목일은 1946년 미군정기의 식목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정부 수립 후 1949년에 3․1절, 광복절과 같은 국경일과 함께 식목일은 가장 먼저 관공서의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그만큼 나무 심는 일이 시급했다.
식목일이 시작된 지 80년이 지난 오늘,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4월 5일 식목일 제정의 유래를 다룬 근거 가운데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둘째는 지난 80년 동안 진행된 식목일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내가 바라는 식목일의 모습을 제안하는 데 있다.
세계 최초의 식목일(Arbor Day) 제정은 1872년 미국의 네브래스카주 농업위원회의 결의문으로 채택되었다. 대평원 지역인 네브래스카주는 숲이 없는 땅에 나무를 심어 농업을 발전시키고 시민의 복지를 증진하려는 목적으로 4월 10일을 식목일로 정하였다. 당시 식목일 제정을 주장한 모턴(Julius Sterling Morton)은 “다른 기념일은 과거를 기념하지만, 식목일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광복 이후, 시급하게 식목일을 지정한 원인은 극심한 산림 황폐화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 시급하게 식목일을 지정한 원인은 극심한 산림 황폐화에 있었다. 광복 이후 남한의 산림은 갈수록 황폐되어 갔다. 1945년 남북 분단으로 필요한 목재를 과거처럼 북한 지역에서 가져올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 지역의 피난민과 해외동포의 귀환으로 인구는 급격하게 늘었다. 산림자원은 부족하고 인구는 늘어나는데, 해외에서 에너지를 사 올 국가의 경제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밥을 짓고 방을 데우려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야 했다. 1950년 우리나라의 1차 에너지원에서 장작과 숯이 차지하는 비율이 90.5%였으니, 광복 당시 국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산림에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산림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식목일이 만들어졌다.

최초의 식목일은 1946년 4월 1일 행해져
우리나라의 식목일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4월 1일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식목일을 4월 5일로 알고 있지만 최초의 식목일은 4월 1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식목행사를 다룬 『자유신문』(1946년 4월 2일자)은 "왜적(倭賊) 학정(虐政)에 헐벗은 우리 강토(疆土)를 녹화(綠化)하자 — 해방(解放) 후(後) 의의(意義) 큰 식목식(植木式) 성대(盛大)"라는 제목 아래 1946년 4월 1일 서울 경성여자기예학교에서 식목식이 개최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당시 미군정청 이훈구 농무부장의 개식사에서 산림이 헐벗은 원인과 식목일이 만들어진 이유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군정은 황폐된 임야가 3백만 정보(약 297.5만 ha)나 되는 당시 산림 상황에서 4월 1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한 사람이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는 한 해 조림 목표를 제시했다. 이훈구가 식목일을 정했다는 신문 기사(『동아일보』 1976년 4월 3일)가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근거는 부족하다.
조선일보의 오보…80여 년간 재인용 반복
다음 해 제2회 식목일 행사는 4월 1일이 아니라 4월 5일 서울 사직동의 매동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개최되었다(『경향신문』 1947년 4월 6일).
식목일 날짜가 4월 5일로 변경된 이유를 당시 『조선일보』는 3월 25일 기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금번 당국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제정하였는데 이날은 신라가 당나라를 우리 땅으로부터 구축하여 삼국통일을 완수하고, 근세 조선에 있어서는 성종대왕이 친경의 성전을 거행한 우리 민족상 또는 농림사상 가장 의의 깊은 날”이다. 문제는 이 기사의 역사적 근거를 확인하지 않은 채 80년이 흘러왔다는 점이다. 1975년 한국임정연구회도 『치산녹화 30년사』를 발간하면서 이 기사의 내용을 인용했고(196~197쪽), 이후에도 식목일의 유래를 다룬 기록물 대부분은 이 내용을 재인용해 왔다.
4월 5일 식목일 제정 유래…기록물에서 수정되어야
조선일보와 『치산녹화 30년사』가 4월 5일의 역사적 유래로 제시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반도에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677년 음력 2월 25일(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다. 이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
역사학계에서는 신라가 매소성과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하여 당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성한 해를 676년으로 보고 있으며, 한국사 교과서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더욱이 삼국통일의 근거로 삼은 평양에 당나라가 설치된 안동도호부를 중국으로 이전한 날짜를 기록한 근거는 없다. 참고로 676년 음력 2월 25일은 양력 3월 17일이다.
식목일 날짜를 4월 5일로 정한 역사적 근거로 들고 있는 신라의 삼국통일 연도와 날짜는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난 명백한 오류라는 것이다. 『치산녹화 30년사』 발간 이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 위키백과 등에서 식목일을 다룬 서술에 같은 오류가 발견된다. 즉, 4월 5일 식목일과 삼국통일의 날짜는 연관성이 없다.
두 번째 유래는 성종 대왕이 1493년 음력 3월 10일(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 선농단에서 몸소 다섯 차례 땅을 갈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종실록』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농사를 짓는 활동과 나무를 심는 행위가 차이는 있지만 당시 국가의 기반 산업인 농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산림은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고,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퇴비, 가축을 기르기 위한 사료, 농사 도구의 대부분은 산림에서 나왔다. 더군다나 산림이 헐벗으면 가뭄과 홍수에 취약하게 되어 농업 생산력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측면에서 성종의 친경제는 농업의 시작인 땅 갈기와 나무 심기를 시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식목일의 기원과 관련한 또 하나의 오류는 제1회 식목일의 연도와 날짜이다. 광복 이후 첫 번째 식목일이 1946년에 개최된 것은 맞지만 4월 5일로 정해진 해는 1947년이다. 『치산녹화 30년사』에 제시된 “광복 후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1946년 4월 5일에는 사직공원에서 제1회 식목일 행사가 있었는데”라는 표현은 “제1회 식목일 행사는 1946년 4월 1일 서울 경성여자기예학교 교정에서 거행됐으며”로 수정되어야 한다. 1947년 4월 5일 사직동의 매동 초등학교에서 개최된 제2회 식목일 행사를 제1회 식목일 행사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식목일을 정하는 일차적 기준은 나무 심기에 적당한 날씨…그리고 상징성
2026년 산림청이 배포한 식목일 포스터를 보면 올해를 '제81회 식목일'로 표기했다. 미군정기 식목식의 개최를 기원으로 하면 1946년이 제1회이고, 4월 5일 날짜를 기원으로 하면 1947년이 제1회가 되는데, 정부는 전자를 기원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목일을 정하는 일차적 기준은 나무 심기에 적당한 날씨이고 이차적 기준은 식목일의 의미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상징성이라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24절기 가운데 청명은 땅이 녹고 새잎이 나기 시작하여 나무 심기에 적합하여 식목일로 삼을 만했다. 1947년 청명은 4월 5일이었는데, 먼저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상징성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고 본다.
1948년 남조선과도정부, 4월 5일 식목일 공휴일로 지정…지금의 국가 기념일이 되기까지
1948년 남조선과도정부는 법률 제10호로 4월 5일 식목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6월 4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국경일, 한글날, 성탄절과 함께 4월 5일 식목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놀랍게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1953년에도 사실상 임시수도인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식목 행사가 이어졌다.
식목일은 1960년 공휴일에서 폐지되고 3월 15일 사방의 날이 새로운 공휴일이 되었다. 당시는 심한 산림 황폐화와 장마·태풍으로 산사태 발생이 잦았다. 특히 1959년 9월 태풍 사라로 인해 산사태 발생 위험이 커진 것이 식목일 대신 사방의 날을 공휴일로 정한 이유일 것이다. 이듬해인 1961년 사방의 날은 폐지되고 식목일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1996년에는 산림녹화 성공으로 모든 국민이 나무를 심는 시대는 종료되었다고 보고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다. 현재 식목일은 공휴일이 아닌 국가 기념일이다.
80년간 나무를 심는 의미와 형식 변화해…1946~2020년까지 심은 나무 146억 그루
모턴이 말했듯이 식목일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는 기념일이다. 나무를 심는 의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데, 지난 80년간 나무를 심는 의미와 형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 식목일에 부여된 의미는 모든 국민이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 푸른 산을 만드는 것이었다. 심은 나무가 자라 장마에도 산사태 걱정을 하지 않고 가뭄과 한발로 인한 농사 피해가 없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취사와 난방으로 사용할 땔감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고 자식들 키우는 데 필요한 소득이 나오기를 희망했다.
이런 국민의 바람을 잘 아는 역대 정부는 황폐지를 복구하고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산림녹화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 나무는 많이 심었지만, 심은 나무가 자라 좀처럼 숲이 되지 않았다. 1946~2020년까지 심은 나무는 모두 146억 그루였다. 1946~1972년 동안 전체 조림 실적의 54%에 해당하는 79억 그루를 심었으나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한국전쟁, 인구 증가, 가난과 약한 행정력 등으로 봄에 심은 나무가 겨울철 땔감으로 사용되는 산림 황폐화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나무 심기는 애국, 1973~1978년까지 식목일 하루 나무 심기에 참여한 사람만 1600만 명
1970년대부터 산림 황폐화의 근본 원인이 점차 해결되었다. 지속적인 고도 경제성장으로 국민은 가난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농촌 주민조차 산에 들어가서 나무를 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연탄을 사서 난방과 취사를 해결할 수 있는 소득이 생겼다. 장기간 산림 황폐화의 가장 큰 요인이었던 가정용 임산연료는 연탄과 가스로 대체되었다.
그 결과 『제1차 치산녹화 10년 계획』이 종료되는 1978년, 1차 에너지원에서 장작과 숯이 차지하는 비율은 8%로 감소했다. 그나마 난방과 취사를 위해 장작을 사용하던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임산연료의 수요 역시 줄었다. 1959년 이후 산림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연료림조성사업은 1977년에 완전히 종료되었다. 더 이상 농촌사회에 연료림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1973년 황폐 산지의 ‘완전 녹화’를 내건 『제1차 치산녹화 10년 계획』(제1차 계획)이 시작되었다. 4월 5일 식목일은 산림녹화 사업의 출발이자 상징이었다. ‘국민 식수’라는 이름처럼 당시 나무를 심는 활동은 국민의 애국 활동으로 선전되었고 국민의 인식 속에 나무를 심는 식목일이 크게 자리를 잡았다. 제1차 계획 기간인 1973~1978년, 식목일 하루 동안 나무 심기에 참여한 사람만 1600만 명이었다. 매년 전국 인구의 7%에 해당하는 267만 명이 4월 5일 식목일에 나무를 심었다.
당시 식목일은 자발적 동원이라는 정부 주도의 국민 식수 운동 형식을 취하고 조림 면적과 같은 물량이 중요했다. 식목일 행사에 강제적으로 동원된다는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았지만, 점차 푸르러지는 산을 보며 내가 심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성과도 실감했다. 산림 황폐화의 악순환이 깨지면서 우리가 심은 나무는 숲이 되었다. 2020년 현재 전국 산림의 73%에는 그때 심고 보호된 31~50년생 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를 심는 목적, 산림을 바라보는 국민 인식 변해…경제적 기능보다 공익적 기능 우선
세상이 바뀌면서 나무를 심는 목적도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과거 식목일을 제정하며 꿈꾸었던 푸른 산은 현실이 되었다. 산림녹화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국민은 나무를 심는 데 과거와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국민경제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80년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이 확 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로 시작한 우리나라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었고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 선진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 마침내 간절히 원하던 선진국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자, 산림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도 변하였다. 『2023년 산림에 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이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산림 기능 1순위는 생활환경 개선(22.9%)이다. 다음으로 재해 방지(18.9%), 휴식공간 제공(15.6%), 온실가스 흡수(10.7%), 수자원 확보 및 수질 정화(9.0%), 목재 및 산림바이오매스 생산(6.6%) 등이 뒤를 잇는다. 국민은 삶의 질을 높이는 쾌적하고 안전한 공익 기능을 목재 생산과 같은 경제적 기능보다 높게 인식했다. 이러한 국민 의식은 1997년 처음 조사 이후 한결같았다.
기후변화와 국제 환경 변화…온실가스 배출량 줄이고 흡수량 늘리는 새로운 산림 관리 요구
국제 환경 역시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계속 커지고 있다. 1992년 브라질 리우 지구 정상회의로 만들어진 기후변화협약(UNFCCC), 생물다양성협약(CBD), 사막화방지협약(UNCCD)의 결정은 당사국인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국내법에 반영되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한다.
온실가스 배출원뿐만 아니라 흡수원인 산림·임업 부문도 2030년 2550만 톤의 흡수량 목표를 갖는다. 이는 국가 온실가스 목표 감축량인 291백만 톤의 8.7%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늘리는 산림 관리가 기후변화 완화를 위해 새롭게 요구되었다.
임업 활동으로 생산된 목재 역시 건축 자재와 펄프 원료 등으로 활용되는 경제적 기능뿐만 아니라 탄소를 저장하는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산림·임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안에는 국산 목재제품이 저장하는 150만 톤이 포함되었다.
식목일…내가 심은 나무가 잘 관리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기념일이 되기를
식목일은 이런 환경 변화와 국민의 새로운 바람을 반영하여 나무를 심는 의미와 운영 방식도 변화하였다. 과거 정부 주도의 하향식 동원과 획일적 나무 심기에서 현재는 참가자의 자발적 참여와 목적에 맞는 다양한 나무 심기로 변화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전환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나무를 심는 목적과 기대가 달라졌다.
어릴 때 나는 나무를 심으라고 해서 심었다. 대학 입학 이후 지금까지는 산림기관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해마다 제법 많은 나무를 심었다. 가끔 ‘내가 심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고 심은 나무가 목적에 맞게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모두가 나무 심는 데는 정성을 다하였지만, 나무 심기를 주관하는 기관이나 나 자신도 심은 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매일 살아가는 바쁜 일상 때문에 식목 이후의 과정까지 신경 쓰기 어려웠던 시절을 핑계 삼았다.
식목일을 제정한 지 어느덧 80년이 지났다. 선진국이 되었고 나무와 숲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변했다. 누가 시켜서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 자발적으로 나무 심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내가 바라는 '미래의 식목일'은 나무를 심는 의미에 더하여 '심는 목적에 맞게 잘 키우고 그 효과를 보여 주는 국가 기념일'이다. 식목일 행사를 모두 이렇게 추진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 지방정부, 학교 등 공공기관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실천하는 기업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가능할 것이다.
나무 심기에 참여한 사람이 나무와 함께 성장…식목일은 미래를 향해 변화하는 기념일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나무를 심는 목적이 다양하다. 소득이 되는 나무 심기는 물론이고,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고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나무 심기,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는 나무 심기, 산불에 강한 나무 심기, 마을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는 꽃나무 심기, 꿀벌이 모여드는 꿀샘 나무 심기 등 다양한 식수 수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목적에 맞게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심고, 그 효과를 장기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식목일로 기획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탄소 흡수 능력이 우수한 상수리나무를 심었다면 주관 기관은 상수리나무가 자라는 모습과 탄소 저장량의 변화를 주기적으로 참가자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려면 탄소 흡수 능력의 차이를 보이는 두 수종을 함께 심고 갈수록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현장에서 얻은 자료로 보여 줄 수 있다.
물론 이런 후속 작업이 이루어지려면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변화를 반영한 미래의 식목일을 바란다. 식목일이 하루 나무 심고 평생 잊어버리는 행사가 아니라 내가 심은 나무가 잘 관리되고 본래 목적에 맞게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기념일이 되기를 원한다. 식목일의 의미가 이렇게 변화면 나무 심기에 참여한 사람은 나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식목일은 미래를 향한 변화하는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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