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중심의 세계 질서, 이제는 개편되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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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김사름 기자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는 단순한 지역 분쟁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한 세기 동안 형성된 화석연료 중심 세계 질서가 얼마나 좁은 통로와 불안정한 지정학에 기대고 있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연료를 바꾸는 일인 동시에, 해협과 유조선에 묶인 세계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다
화석연료 중심의 세계 질서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조건 위에서 형성됐다. 석유와 가스는 주로 중동, 러시아, 북미, 일부 아프리카와 남미에 집중돼 있고, 대규모 소비지는 유럽과 동아시아, 남아시아에 넓게 분포해 있다.
이처럼 생산과 소비가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에너지는 파이프라인이나 선박을 통해 장거리로 이동해야 한다. 그중 선박 운송은 대량 수송 비용이 낮아 세계 에너지 교역의 기본 경로가 됐다. 특히 대륙과 반도, 섬과 해안선이 맞물리는 곳은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좁아지고, 그 결과 특정 해협과 운하에 물동량이 집중된다.
대체 통로가 없어 병목이 되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의 산유국들이 바깥 바다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좁은 해상 통로다. 국제에너지기구(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석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거의 2천만 배럴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 수준이다.
더구나 이 물량은 단순히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체가 쉽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송유관과 아랍에미리트(UAE)의 푸자이라 송유관 등 우회 경로가 있더라도, 대체 가능한 규모는 하루 350만~550만 배럴 정도에 그친다고 설명한다.
즉, 해협이 막히면 다른 길로 일부를 돌릴 수는 있지만, 원래 지나던 규모 전체를 흡수할 수는 없다. 병목이 병목인 이유는 단지 좁아서가 아니라, 같은 규모를 처리할 대체 통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는 중동 생산지와 아시아 소비지를 잇는 동맥
호르무즈가 특히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 해협이 단순한 석유 수송로가 아니라 중동 생산지와 아시아 소비지를 잇는 최단·최대 동맥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5년 호르무즈를 통해 수출된 물량의 거의 90%가 아시아 시장으로 향했다고 밝힌다. 이는 아시아 전체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수입의 4분의 1 이상과도 연결된다.
다시 말해, 호르무즈는 중동과 세계를 잇는 통로라기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는 걸프 산유국과 아시아 산업국가를 연결하는 구조적 관문이다. 그래서 이 해협이 흔들리면 유럽보다 먼저 아시아가 압박을 받는다. 최근 전쟁 국면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 원유와 LNG 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위험한 곳은 호르무즈 해협만이 아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은 세계 주요 석유 수송 병목으로 호
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 바브엘만데브 해협(Bab el-Mandeb), 수에즈 운하(Suez Canal), 터키 해협(Turkish Straits), 덴마크 해협(Danish Straits), 파나마 운하(Panama Canal) 등을 제시한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은 넓은 대양과 바다를 이어주는 가장 짧은 통로이거나, 우회할 경우 항해 거리와 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지점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가장 짧은 해상 루트이고, 중동산 원유와 가스가 동아시아로 향할 때 사실상 표준 경로가 된다.
수에즈 운하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 교역의 핵심 축이고,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준다. 즉 병목은 지도 위에서 우연히 생긴 점이 아니라, 최단 거리, 최저 비용, 최대 물동량이 겹치는 지리적 결과다.
화석연료 중심 질서는 태생적으로 지리적 불안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병목 지역이 위기를 안고 있는 이유는 폭이 좁고 통항 공간이 제한돼 있어 사고, 충돌, 군사 행동, 봉쇄 위협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이런 장소는 여러 국가의 영해, 배타적경제수역, 또는 지정학적 긴장 지역과 겹칠 수밖에 없다. 물론 우회는 가능하다. 그러나 우회 경로가 길어질수록 항해 일수와 보험료, 연료비, 선복 수급 부담은 동시에 커진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는 홍해, 수에즈, 파나마 운하에 차질이 생겼을 때 운임과 공급망이 즉시 흔들렸다고 밝혔다. 이는 병목이 단순히 “좁은 길”이기 때문이 아니라, 좁고, 대체가 어렵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공간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화석연료 중심 질서는 태생적으로 지리적 불안을 안고 있다.
세계 석유시장 역사상 최대 수준의 공급 차질
석유와 액화천연가스는 대체로 생산지에 편재돼 있고, 소비지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사이를 잇는 수송로는 일부 해협과 운하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해협 하나가 흔들리면 가격과 물동량, 보험료, 재고, 외교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2026년 봄 이란 전쟁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이 세계 최대 공급 교란으로 이어진 것도 이 구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사태를 세계 석유시장 역사상 최대 수준의 공급 차질로 평가했다. 병목은 지리적 사실이지만, 그것이 세계경제를 흔드는 이유는 우리가 에너지를 그렇게 이동시키도록 세계 질서를 설계해 왔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장거리 이동의 필요 자체가 없어
재생에너지는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연료를 대량으로 장거리 이동시키는 필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와 액화천연가스는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선박이나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동해야 하지만, 태양과 바람은 소비지 가까이에서 바로 전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물론 송전망과 배터리, 핵심광물 공급망 같은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호르무즈 같은 해상 병목에 원유와 액화천연가스를 대규모로 의존하는 구조는 줄어들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도 에너지 전환이 전통적 연료 공급안보 위험 노출을 줄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재생에너지도 전력망과 핵심 광물이 새로운 안보적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협과 유조선이 주는 위험도는 낮아질 수 있지만, 전력망과 광물 공급망으로 위험이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전력망과 특정 광물에 대한 의존 생길 수 있어
국제에너지기구는 "전력망과 안전한 에너지 전환(Electricity Grids and Secure Energy Transitions)"에서 전력망이 청정에너지 전환의 병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태양광과 풍력 설비가 빠르게 늘어도, 이를 연결하고 수요지로 보내는 송전망이 충분하지 않으면 전환은 지연되고 전력 안보도 약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핵심 광물 공급망이 새로운 안보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태양광 모듈, 풍력 터빈, 전력망, 배터리, 전기차는 모두 구리, 리튬, 니켈, 흑연, 희토류 같은 광물에 의존한다. 국제에너지기구의 2025년 "세계 핵심 광물 전망(Global Critical Minerals Outlook 2025)"은 이들 광물의 채굴과 정제, 특히 정제 부문이 소수 국가에 강하게 집중돼 있다고 설명한다.
2024년 기준 구리,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희토류의 정제 시장에서 상위 3개국 점유율 평균이 86%에 이른다고 밝혔다. 화석연료 체계가 특정 산유지와 해협에 의존했다면, 재생에너지 체계는 전력망과 특정 광물에 대한 의존을 새롭게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더 나은 질서를 만들기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체계는 석유와 가스처럼 매일 대규모 연료를 해협과 유조선으로 실어 나르지 않아도 되는 구조임에는 틀림없다. 태양광과 풍력은 한번 설치되면 지속적으로 연료를 수송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호르무즈 같은 해상 병목에 대한 직접 노출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분산형으로 확대될 수 있어, 특정 해협 하나가 세계경제 전체를 흔드는 구조는 최소한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전력망이 촘촘하고 유연하게 확충되고, 핵심광물 공급이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다변화시키는 노력은 지금부터 수반되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6년 3월 발표한 공급망 분석에서 전력기기와 배터리, 송전 관련 기술 공급망에 여전히 약한 고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대세이지만, 새로운 체계에 맞는 안보 설계를 동시에 해야만 더 나은 질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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