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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신안 8.2GW 해상풍력발전단지의 교훈

2025-04-16 이담인 기자

‘분산형 에너지’를 표방한 신안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거대한 중앙집중식 구조에 머무르며, 지역 자급보다 외부 송전에 의존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송전망 부족, 주민 참여 부재 등 핵심 요소 없이 추진되는 현재의 방식은 ‘진짜 분산형’과는 거리가 멀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은 설치 규모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거버넌스의 철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앙집중적인 '분산형' 에너지의 모순


‘분산형 에너지’라는 개념은 오랜 시간 에너지 전환 담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수많은 국가가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기치 하에 중앙집중형 발전체제에서 벗어나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 자원을 지역 단위에서 활용함으로써, 생산과 소비가 동일 공간에서 이뤄지는 분산형 자급적 구조를 꿈꾼다. 한국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재생에너지 전환을 진행 중이다. 국가 전략 사업으로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신안 해상풍력발전단지 프로젝트(이하 신안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또 한 번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분산형 전원’을 목표로 하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여전히 중앙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의 연장선에 가까운 구조적 모순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전망 없이 무작정 세우는 풍력단지


정부가 발표한 신안 해상풍력발전단지 조감도. 사진 국무조정실 보도자료
정부가 발표한 신안 해상풍력발전단지 조감도. 사진 국무조정실 보도자료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 조성 중인 ‘8.2GW 해상풍력단지’는 2035년까지 총 8.2GW 규모의 해상풍력 설비를 26개 단지로 나눠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8.2GW는 원전 6~8기에 맞먹는 발전용량으로, 완공된다면 세계 최대 규모다. 2024년 11월, 정부는 신안 해상풍력1단지의 시운전 개시를 공식화하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의 첫걸음”이라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총 48조 원의 민간 자본이 투자되며, 목포신항을 중심으로 전용 부두 및 배후산업단지까지 조성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 

정부는 신안 프로젝트를 '지역에 뿌리내린 분산형 전원'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한 지역에 수GW 규모의 전력을 집중하는 구조는 사실상 분산이 아니라 집중에 가깝다. 전라남도의 최대 전력수요는 2020년 기준 3.3GW에 불과한데, 이보다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생산하려는 계획은 본질적으로 ‘지역 자급’이 아닌 ‘외부 송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상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요지로 송전할 수 있는 실질적 계통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신안 해상풍력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 인프라는 미비한 수준이고, 기존 송전망과 향후 계획된 선로마저 포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기를 보낼 계통망이 없으니 일부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출력제한(curtailment)이 반복되고, 설치는 되었지만 전력을 계통에 연결하지 못해 대기 중인 설비들이 쌓이고 있다. 송전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면 발전은 했지만 송전은 못하는 이른바 ‘잉여 전력’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11월 열린 해상풍력 관련 학술포럼에서 학계와 산업계는 공통적으로 ‘계통 리스크’를 가장 큰 난제로 지목했다. 광운대학교 송승호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20GW 규모의 공용접속망 신설계획이 3년째 진척이 없다”며 “한전의 재무 악화로 송전망 선투자가 지체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분산형 전원’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중앙집중형 풍력 단지를 만들고 있다. 


지역도, 주민 참여도 없는 지역 분산 에너지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지속되고 있다. 신안 주민들은 해상풍력으로 인한 어업권 침해, 전자파 우려, 경관 훼손 문제 등을 이유로 사업 중단을 요구해 왔다. 주민들은 “풍력발전은 지역에서 일어나지만, 전기는 외부로 빠져나가고,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배후단지 조성을 통한 지역 환원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이익공유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정책 설계의 방향성과도 직결된다. 현재 추진되는 해상풍력은 대부분 민간 주도 대형 프로젝트다. 민간의 자본과 기술력을 활용하는 점에서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동시에 공공성과 지역성과의 균형을 잃을 위험도 있다. 지역에너지 체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주민 참여, 거버넌스 설계, 분산형 계통 접속 등 핵심 요소들이 결여된 채 양적 확대에만 치중하고 있다.


분산형 시스템의 교과서, 쿼티어스트롬 프로젝트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구축된 분산형 재생에너지 사례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사람과 지역 위주의 전환이라는 점이다. 스위스 발렌슈타트에서 실현된 쿼티어스트롬(Quartierstrom)’ 프로젝트는 진정한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쿼티어스트롬 프로젝트는 2019년부터 1년간 시범사업으로 운영되었다. 총 37가구와 요양원 1곳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그 중 27가구는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한 ‘프로슈머’였다. 이들은 자신이 생산한 전력을 지역 이웃과 직접 거래(P2P)하며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참여했다.

쿼티어스트롬 프로젝트의 핵심은 거래의 자동화와 투명성이다. 15분 단위의 경매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가 각각 희망 구매가와 판매가를 설정하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최적의 거래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각 가구는 스마트미터와 연결된 소형 컴퓨터를 통해 블록체인 노드 역할을 수행하며, 에너지 거래 데이터를 안전하게 분산 저장한다. 개인정보보호 측면에서는 실명 기반 정보가 블록체인에 직접 저장되지 않도록 설계하여 프라이버시를 강화했다. 치밀한 설계 덕분에 참여 가구의 자가소비율은 프로젝트 전 평균 19%에서 33%로 증가했다. 전체 생산량 250MWh 중 약 70MWh가 지역 내에서 직접 소비되었으며, 이로 인해 송전 손실을 줄이고 전력망의 부담도 완화됐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프로슈머는 기존의 피드인 요금보다 높은 가격에 전력을 판매할 수 있었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가격에 에너지를 구매함으로써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가 마련됐다.

발렌슈타트 지역의 태양광 발전 시스템(PV). 사진 <Community energy network with prosumer focus> 보고서
발렌슈타트 지역의 태양광 발전 시스템(PV). 사진 <Community energy network with prosumer focus> 보고서

참여자들은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거래 주체로서 에너지 흐름에 능동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에너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프로젝트 후반으로 갈수록 거래의 자동화, 예측 기반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더 발전된 시스템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쿼티어스트롬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주민이 에너지 생산·소비·거래에 직접 참여하고 자율적인 에너지 시장을 형성하는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분산형 에너지 전환을 고민하는 한국 등 여러 국가에게 시사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선례로 기록되고 있다.



'얼마나 설치할 것인가'보다, '누가 결정할 것인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기술보다도 거버넌스의 문제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터빈을 설치하는 일은 시작일 뿐, 진짜 변화는 에너지를 둘러싼 권한과 역할, 그리고 철학의 재구성에서 비롯된다. ‘무엇을 설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결정하고, 누가 운영하며, 누가 이익을 얻을 것인가’다. 분산형 에너지는 결코 단순한 이슈가 아니다.

경희대학교 송유진 연구원은 분산형 지역 에너지가 단지 소형 설비를 나누어 설치하는 기술적 접근이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의 민주화이자 사회구조의 수평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에너지를 단순히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하고 선택하며 공유하는 과정’으로 바꾸는 것이 진짜 분산형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박진희 동국대 교수도 독일의 에너지 전환 사례를 통해 같은 맥락을 짚는다. 독일은 시민 협동조합과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풍력과 태양광 설비를 구축해 왔으며, 전체 재생가능에너지 설비의 절반 가까이를 시민이 소유하고 있다. 시민이 단순한 투자뿐만 아니라 지역 설비 운영과 정책 설계, 전력 판매까지 참여한다. 에너지가 정책을 통해 ‘전문가의 영역’에서 ‘시민의 권리’로 전환되고 확장된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설치가 아닌 '철학'의 문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양적 팽창보다도 질적 전환이다.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은 발전소의 분산은 물론, 에너지 시스템의 설계 철학 자체의 전환을 요구한다. 지역 주민과 지자체가 거버넌스의 주체가 되는 구조가 필수다. 누구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하려면 계통 접속권, 저장 장치, 실시간 가격 정보, 거래 플랫폼, 지역 수용성, 정책적 인센티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결국 ‘분산형’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유기성을 갖춰야 한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공급 목표 중심이다. 스위스와 독일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듯 진정한 전환은 공급의 양보다 구조의 방향에서 비롯된다. 신안 프로젝트가 기술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할지라도, 그 프로젝트가 지역과 주민, 시스템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거대한 ‘중앙집중식 설비’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분산형’이라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다. 에너지 민주주의, 에너지 시민권, 공동체 기반 시스템, 실시간 유연한 계통 설계, 지역의 참여와 결정권,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야 진짜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다. 전환의 시작이 철학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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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Apr 22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기술보다도 거버넌스의 문제다" 맞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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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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