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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66개 국제기구·협약·협의체에서 탈퇴하는 미국

2026-01-16 박성미 총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7일(현지시간) 미국이 참여·지원해 온 66개 국제기구·협약·협의체에서 탈퇴하도록 지시하는 대통령 각서(대통령 문서)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이들 기구가 “급진적 기후정책, 글로벌 거버넌스, 미국의 주권·경제적 강인함과 충돌하는 이념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66개 국제기구 탈퇴는 국제협력의 상징을 훼손한 사건이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후 규범의 중심축이 ‘합의’에서 ‘경쟁’으로 더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빠진 자리를 누가 채우느냐보다, 그 빈틈에서 어떤 규칙이 새로 굳어지느냐가 한국에 더 직접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1월  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공화당 의원들의 연례 정책 수련회에서 연설한 뒤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1월 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공화당 의원들의 연례 정책 수련회에서 연설한 뒤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기후 관련 국제 기구, UNFCCC·IPCC·IRENA 등 ‘핵심 3개 기구' 포함돼


이번 탈퇴 명단에 기후 분야에서 상징성이 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포함됐다. UNFCCC는 매년 열리는 유엔기후총회(COP)와 파리협정 이행의 ‘모체’이고, IPCC는 각국 정책의 근거가 되는 과학 평가를 생산하는 국제 과학기구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탈퇴가 포함됐다. IRENA는 미국의 탈퇴 의사를 공식 확인하면서 “미국이 재생에너지 국제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밝혔고, 회원국 이탈을 유감이라고 했다.


‘기후 재원’ 축도 흔들렸다. 미 재무부는 녹색기후기금(GCF)에서 미국이 즉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GCF를 “급진적”이라고 부르며,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가 성장과 빈곤 감소의 토대”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참고로 GCF는 한국 인천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다. GCF는 미국 탈퇴가 “운영에 즉각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트럼프가 ‘왜’ 이러나 … “주권·돈·화석연료”로 귀결


백악관과 국무부가 내세운 키워드는 일관됐다. “비효율·중복·관리부실”, “미국 이익·주권 위협”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해당 기구들을 “낭비적·비효율적·해로운 국제기구”로 규정하며 추가 탈퇴 가능성도 시사했다. 기후 영역에서 트럼프의 목표는 더 노골적이었다.


로이터는 트럼프 행정부가 UNFCCC·IPCC 탈퇴를 “석유·가스·광물 개발에 집중하는 미국의 국가 이익”과 연결해 설명했다고 전했다. 즉, ‘국제 기후 규범’이 국내 화석연료 정책과 충돌한다고 보고, 규범 생산(UNFCCC)·과학 근거(IPCC)·재원(GCF)을 한꺼번에 약화시키는 쪽으로 칼을 댄 셈이다.


가장 직접적인 파장은 UNFCCC 체제의 협상 동력 약화다. UNFCCC 탈퇴는 절차상 통보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하지만,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이탈할 경우 감축 목표(NDC) 상향, 기후 금융, 손실과 피해(Loss & Damage) 등 핵심 의제가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두 번째는 과학-정책 연결고리의 약화다. IPCC는 각국 정부가 승인하는 과학 평가 체계인데, 미국이 빠지면 미국 과학자·기관의 참여와 영향력이 줄고, 과학 평가의 ‘정치적 승인 과정’에서도 미국의 발언권이 약해진다.


세 번째는 개도국 기후 재원 불확실성이다. GCF는 개도국 적응·감축 프로젝트의 핵심 재원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의 탈퇴는 단순 분담금 문제가 아니라, 다른 공여국의 부담·정치적 정당성에도 연쇄 영향을 준다.


미국 안에서도 “합법성 논란”, “경제 자해”가 동시에 터졌다. 미국의 UNFCCC 탈퇴는 법적 논란도 불렀다. UNFCCC는 1992년 미국이 상원의 동의·비준 절차를 거쳐 가입한 조약인 만큼, 탈퇴도 같은 수준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로이터는 법률가·환경단체 인사들의 문제제기와 소송 가능성을 전했다.


국제사회 반응은 거칠다. UN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사이먼 스티엘은 미국의 이탈을 “미국 경제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로이터는 이를 “자해 행위”라는 평가로 전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납세자 돈이 비효율적 기구에 쓰이지 않도록 재배치한다”는 프레임을 고수했다.


‘미국 변수’는 외교가 아니라 산업 리스크다


한국에 이 사안은 ‘외교 뉴스’로 끝나지 않는다. 기후 규범은 곧 무역·금융·공급망 규칙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 정부는 다자 트랙을 “미국 없는 UNFCCC”를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 미국의 이탈이 장기화되면, COP 협상은 EU·중국·개도국 연합의 역할이 더 커진다. 한국은 감축(NDC)·메탄·RE100·CBAM 등 경제와 직결되는 의제에서 ‘연합전’ 전략을 다시 짜야 할지 모른다. 특히 기술표준·회계기준이 ‘클럽 규칙’으로 굳을 가능성이 커진다.


GCF는 운영 지속을 강조했지만, 미국 탈퇴는 공여국 정치지형을 흔든다.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기금의 신뢰”를 지키는 외교·재정 메시지가 필요하다. 동시에, 개도국 사업 파이프라인이 흔들리지 않도록 대체 재원(다자개발은행, 양자 ODA, 민간 전환금융)을 연결하는 ‘보완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계통·효율·산업정책’에 더 집중해야 한다. 미국 변동성이 커질수록, 각국은 결국 자국 산업경쟁력 관점에서 탄소 정책을 밀어붙인다. 한국은 전력계통 확충, 수요관리·효율, 재생에너지 인허가·입지 갈등 해소 같은 ‘실행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외 규범 변화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탈퇴 정치’가 촉발한 것은 역설적으로 “기후 정책은 경제 정책”이라는 현실이다.


트럼프의 66개 국제기구 탈퇴는 국제협력의 상징을 훼손한 사건이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후 규범의 중심축을 ‘합의’에서 ‘경쟁’으로 더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빠진 자리를 누가 채우느냐보다, 그 빈틈에서 어떤 규칙이 새로 굳어지느냐가 한국에 더 직접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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