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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픽션 '더 체인'ㅣ#2화. 분초

최종 수정일: 8월 8일

2025-07-18 정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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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대만 해협의 포성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중 함대가 동아시아로 집결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2화. 분초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한 순간, 그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전쟁 행위'라는 북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러시아 함대.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아시아에서 재현되면서, 일본은 80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과 마주하는데...


“요격 명령을 하달해 주십시오.”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일본 통합막료장 가쓰야가 하시타로 총리에게 건의했다. 동해에 배치된 일본의 이지스함 두 척은 한국의 경북 성주에 배치된 AN/TPY-2 레이더와 미국의 군사정찰위성으로부터 조선이 발사한 미사일이 일본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받았다. 일본의 최신예 이지스함인 아타고급과 마야급은 해상 요격 미사일인 SM-3 Block IIA를 운용하고 있다. 이 요격 미사일은 미일동맹이 공동으로 개발한 것으로 대기권 안팎에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이들 이지스함은 요격 태세를 갖추고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타깃에 대한 정보는 아직도요?”

하시타로의 물음에 채 끝나기도 전에 가쓰야는 답한다.

“아직 저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낙하까지는 5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분, 아니 초 단위로 다투는 일입니다. 결단해 주십시오.”

“요격을 하면 그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북조선이 추가적으로 발사하면?”

“요격과 함께 북조선의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정밀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

가쓰야의 말에 하시타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전쟁 아니오.”

     

스마트 폰에서 눈을 못 떼고 있던 후쿠오 기자의 핸드폰에 ‘J-Alert 발령’이라는 긴급 문자가 들어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열차 안 승객들은 일제히 핸드폰을 응시했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려는 순간 열차가 멈췄다.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북조선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입니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열차를 멈춥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다음 방송이 나올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요격하시오.” 하시타로의 지시를 받은 가쓰야는 이지스함 함장에 전화를 걸어 지시를 전달했다. 두 척의 이지스함은 각각 네 발의 요격미사일을 순차적으로 발사했다. 아타고급 이지스함은 처음 두 발의 요격 미사일로 조선의 미사일을 잡는 데 실패했지만, 곧바로 두 발을 추가로 발사해 요격에 성공했다. 미사일 잔해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 앞에 떨어졌다. 하지만 마야급함은 연이어 네 발의 SM-3로 요격을 시도했지만, 대기권에 재진입한 조선의 미사일은 회피 기동을 하면서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의 공해상에 떨어진다.

“총리님, 텔레비전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총리에게 관방장관이 말했다.

     

“우리 공화국의 정당하고 방어적 목적의 훈련으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한 일본의 행위는 전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시간부터 벌어지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적들에게 있다.”

조선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본의 요격 작전 10분 만에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중대 발표‘를 내놨다.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던 차에, 이즈메 방위상이 보좌관과 귀엣말을 나누고 황급히 말했다.

“러시아의 극동함대가 동해 쪽으로 진입하고 있고 전략폭격기 편대가….”

말을 마치려는 순간, 유키코 외무상이 “러시아의 국방부가 방금 내일부터 북조선과 동해에서 합동군사훈련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라는 주러시아 대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들의 의도가 뭡니까? 러시아도 개입하겠다는 뜻이오?”

하시타로의 물음에 이즈메는 답했다.

“북조선이 공격당하면 상호방위 조항에 따라 러시아도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일미연합정보체계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이미 러시아는 북조선에 미사일 조기 경보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뒤늦게 본사에 복귀한 후쿠오 기자는 마감 시간에 쫓기듯 서둘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다른 모니터 화면에는 서울·워싱턴·베이징·타이베이·모스크바 특파원이 올리는 보고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후코오는 잠시 눈을 감고 2년 전에 도쿄의 한 술집에서 이한결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이한결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한 것을 계기로 친분을 맺었다.

     

“자칫 1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진 일이 동아시아에서도 벌어질 수 있어요.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맹의 체인에 엮여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것처럼, 대만 해협에서 불꽃이 튀면 동맹의 바람을 타고 동아시아 전체로 전화(戰火)가 번질 수 있어요. 동아시아인들이 몽유병자처럼 전쟁으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전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후쿠오가 물었다.

“후쿠오 기자님도 알겠지만, 국제정치 용어에 ‘안전과 불안의 패러독스(security and insecurity paradox)’라는 게 있습니다. ‘핵 대 핵’의 대결 상태에서는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큰 전쟁이 억제되는 경향은 강하지만, 그 핵의 위력 때문에 작은 전쟁은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대만 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고 미국과 중국이 상대의 영토를 핵미사일로 공격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겠죠. 하지만 대만 사태가 곧 일본 사태라는 입장을 견지해 온 일본,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중국용으로 바뀌고 있는 한국 등으로 확전되는 일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동맹인 조선, 조선과 동맹인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고요.”

     

다시 모니터를 응시한 후쿠오는 서둘러 기사를 써내려갔다. 다음날 『아사히』 조간신문의 머리기사로 나갈 예정인 기사의 후반부는 이랬다. 후쿠오는 이 기사를 온라인판으로도 올리고 누군가를 향해 전화를 걸면서 서둘러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러시아와 북조선은 이번 훈련이 철저하게 방어적 훈련이라고 밝혔지만, 이들 나라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는 극동 함대에 소속된 함정 10여 척과 전략폭격기 및 전투기를 10여 대를 동원하고 있고, 북조선에선 2025년 진수식을 거쳐 2026년에 실전 배치된 최현호와 강건호 등 20여 척의 함정이 동원된다고 발표했다. 5천 톤급에 달하는 북조선의 이들 함정은 핵 순항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미사일을 탑재한 상태인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일미한 정부는 러시아-조선의 합동군사훈련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자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행위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하는 한편, 경계 태세를 일제히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러시아·북조선이 사전에 조율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하시타로 총리는 ‘대만 유사는 곧 일본 유사’라는 입장을 천명했고, 주일미군은 대대적인 출격 태세에 돌입했다. 이로써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쟁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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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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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1일

웹소설 '더 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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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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