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쟁과 탄소, 그리고 사라진 리더십…전 세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 4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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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글로벌 리더십은 군사력이 아니라 탄소를 줄이는 능력, 갈등을 줄이는 능력, 협력을 설계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카이스트(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전해원 교수 연구팀이 태평양북서부국립연구소(PNNL)와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는 기후위기를 재차 생각하게 한다. 연구팀은 기존 ‘누적 탄소예산(carbon budget)’이 아니라 질소 순환과 유사한 ‘연간 배출 한계’ 개념을 적용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재산정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두고 인류에게 허용된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4~17기가 톤(Gt)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인류는 연간 약 37기가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안전 범위를 두 배 이상 넘는 수치다.
인간 활동 자체가 지구 생태계의 허용 범위를 넘어섰다는 경고다. 탄소중립은 기술의 문제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문명의 운영 방식과 국제 질서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특히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거대한 탄소 배출원이 있다. 전쟁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전쟁은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가자 지역도 불안한 상태다. 2026년 들어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 충돌은 세계를 다시 군사적 긴장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역사의 종말’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다극화된 권력 경쟁 속에서 갈등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는 듯하다.
전쟁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넘어 거대한 탄소 배출 원인이다. 현대전이 과거보다 정밀해졌다는 인식은 착각이다. 미사일과 포탄, 전투기와 군함, 군수물자 생산과 병참까지 대개의 군사 활동은 막대한 화석연료를 소비한다. 군사 분야는 국가별 온실가스 통계에서도 상당 부분이 비공개로 처리되므로 실제 배출량은 공식 통계보다 훨씬 크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탄소 배출은 계속된다. 전쟁은 장기적인 생태 파괴를 남긴다. 파괴된 산림은 더 이상 탄소를 흡수하지 못하며, 오염된 토양은 회복에 수십 년이 걸린다.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 또한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시멘트 1톤을 생산하는 데 1톤에 가까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철강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은 미래의 탄소까지 당겨쓰는 셈이다.
전쟁은 지구 전체의 탄소 예산을 잠식하며 미래 세대의 생존력을 떨어뜨린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물, 식량,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진다. 기후위기가 전쟁을 유발하고 전쟁이 다시 기후위기를 악화시킨다. 인류가 직면한 ‘에코사이드(ecocide)’의 현실이다.
심각한 건 이러한 위기를 조정하고 관리할 글로벌 리더십이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탄소중립과 기후 정책을 선도했던 유럽은 경제 침체와 에너지 위기 속에서 영향력이 급감하고 있다. 재정 부담과 산업 경쟁력 문제로 인해 기후 정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기후 협력보다는 기술 패권 경쟁에 더 몰입하고 있다. 미중 경쟁은 세계를 다극 체제로 이동시키고 있다.
다극화된 세계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국제 규범보다 국익이 먼저고, 협력보다 경쟁이 강조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지역 단위의 분쟁과 군사 충돌이 더 자주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 기후위기 대응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군비 경쟁과 지정학적 갈등이 확대되는 이유다.
국제 협력의 상징이었던 국제연합(UN)의 지위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안보리는 강대국 간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후 협약 역시 선언적 합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국제연합의 권위와 실행력이 약화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는 공백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단일 국가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경제력, 군사력, 기술력 어느 하나만으로는 국제적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앞으로의 리더십은 군사 동맹이 아니라 기후와 에너지 협력 네트워크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도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제 규모가 세계 상위권에 진입하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지구 생태계가 무너지면 국가의 번영은 지속될 수 없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구분하지 않는다. 탄소는 국적을 갖지 않는다. 어느 한 나라가 탄소중립에 성공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비용과 부담의 공정한 분배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필수 과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책임 분담, 산업 구조 전환에 따른 고용 충격, 지역 간 경제 격차까지 기후위기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적 상상력과 제도가 없다면 탄소중립은 선언에 그치고 만다.
중요한 건 협력 경쟁이다. 탄소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혁신, 에너지 믹스는 국가 간 협력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기후위기는 군사적 패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군사적 긴장은 기후 대응을 지연시킨다.
전쟁은 일시적으로 국가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를 가난하게 만든다. 반면 기후 협력은 단기적으로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동 번영의 기반이 된다.
새로운 글로벌 리더십은 군사력이 아니라 탄소를 줄이는 능력, 갈등을 줄이는 능력, 협력을 설계하는 능력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강한 국가가 아니라 책임 있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
지구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섰다. 전쟁을 줄이는 게 탄소를 줄이는 일이다. 탄소중립은 기술이 아니라 평화의 문제다. 새로운 글로벌 리더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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