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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북ㅣ추석 명절에 부쳐: 죽음과 질병에 관하여

2025-10-03 안은영

호스피스 의사와 의료인류학자의 대담집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자가 나눈 편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을 소개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최우선 소망이 ‘따뜻한 물에 목욕’이라는 것과 스스로 아픈 몸을 기록하고 증명한 어떤 암환자의 적극성과 대담함을 전한다. 우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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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 작가, 책방 사이 대표

기자로 밥벌이를 했고 『여자생활백서』,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를 거쳐 강동구에 숲·생태·기후·환경 전문 독립서점 ‘책방 사이’를 운영 중이다. 지구에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변화의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무엇 때문에 지불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다.


죽음을 생각하기에 나쁜 시간은 없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모든 시간은 죽음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계기적으로 밀려오는 상념 또는 즉흥적으로 되뇌어 보는 호기가 아니라 우리는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삶이기를 소망한다. 햇과일과 성묘로 죽은 자를 기리는 추석 명절에 걸맞거나 또는 아이러니하게, 각각 죽음을 설계하고 웅변하는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송병기·김호성 지음,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프시케의 숲, 2024
송병기·김호성 지음,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프시케의 숲, 2024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용하다는 사주쟁이를 만난 적이 있다. 사주를 믿지 않는 나에게 재차 궁금한 것을 말하라기에 “나는 어떻게 죽나요”라고 물었다. 눈처럼 새하얀 저고리를 입은 그는 입술을 다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뒤 그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산 사람이 살아있는 얘기를 해야지, 다 죽어가는 얘기를 왜 하느냐”고 나를 핀잔했다. 하지만 나는 궁금한 것이 그것뿐이었다. 더욱이 그의 태도를 보자 아무것도 더는 묻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죽음에 관한 나의 최대 관심사는 내가 보게 되는 이생의 마지막 풍경이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예측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붙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생에의 집착일 것이다. 하물며 시시각각 나에게 주어진 생을 가늠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송병기·김호성 지음, 프시케의 숲)는 호스피스 의사와 의료인류학자의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두 사람은 말기 돌봄과 죽음의 현실에 관해 ‘이래도 되나’ 싶게 날카로운 메스를 댄다. 두 사람은 죽음에 관한한 합법적인 관찰자이자 집행자다. 가령 프랑스와 일본, 한국의 노인요양원을 두루 거치며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필요한 현대의학의 역할을 주창해 온 송병기는 사려 깊은 수호자다. 김호성은 말기 돌봄 현장에서 생의 끝에 선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호흡해 온 전투적인 발화자다. 둘의 대화는 의학 프로그램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다가 산 자의 마지막 호흡을 지키는 수호천사처럼 애틋하다.

     

환자란 ‘질병 때문에 아픈 사람이 아니라 질병을 경험하며 이전과 다른 삶의 서사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는 해석에서는 우리가 죽음을 순간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각성으로 머리를 숙이게 만든다. 출생이 삶의 과정이듯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100세 시대쯤 너끈하게 마케팅하는 세상에서 우리 몸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한 틀 안에서 통증과 의존, 노화는 죽음을 부르는 위험 요소다. 각종 의료기술과 금융상품은 죽음을 불건전한 것으로 만들고 생명은 남은 수명으로 낱낱이 평가된다. 이제는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은다.


말기 환자가 삶의 포기 선언을 하고 모든 치료를 거부할 때 의사의 의학적 윤리적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대담인은 죽음을 앞둔 이들의 1순위 소망이 진통제나 연명 치료가 아니라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는 것이라는 데에 주목한다. 모계의 자궁에서처럼 따뜻한 물속에 잠겨 있고 싶은 욕망을 알아차려 주는 것, 생을 부여받은 인간에게 필요한 의료와 돌봄의 정점이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다다서재, 2021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다다서재, 2021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일상이라면 지성 있는 두 여성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죽을 날을 받아 놓았고 남은 한 사람은 대화 도중 언제고 상대방의 삶이 끝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곧 죽을 사람과의 대화는 한정적일 테고, 몰아치는 통증과 일상의 비정형성 앞에서 지성이란 거추장스러운 쓰개치마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한 번 더 전복한다. 두 사람의 대화가 질병과 죽음을 테마로 한다면 어떤가. 이보다 더 뾰족한 긴장감은 없을 것이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다다서재)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과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는 ‘기획적으로’ 만난 편지 친구다. 책에서 미야노 마키코는 자신의 몸에 자라는 암 덩어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적었다. 질병을 앓는 삶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함께 짚어 봐 줄 적임자로 이소노 마호를 선택한 것도 그였다. 첫 편지는 이소노 마호가 부쳤다. 그는 자신의 편지 친구가 다발성 암이 전이되어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을 안 채로 첫 편지에 확률에 관해 썼다.


“어느 수학자가 만든 ‘일어날지도 모를 확률’은 한 개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서 미래의 가능성을 봉쇄해 버립니다”라면서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상태가 나빠지면, 암세포에 지지 말고 독감이라고 생각해 버리”라고 주문한다. 턱없는 그의 제안을 미야노 마키코가 적극 수용하면서 뜻밖에 활기를 찾는 등 두 사람의 성격과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 핑퐁게임은 이 책의 숨길 수 없는 미덕이다. 두 사람은 질병과 죽음의 상관관계, 의료와 선택, 삶과 죽음까지 의식의 추를 길게 늘였다가 되돌아온다. 신체의 질병을 앓고 있다는 두려움은 구체적인 질문 속에서 변화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다른 방식을 질병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독인다.


미야노 마키코는 암환자라고 믿기 어려운 적극성과 대담성으로 편지를 이어가고 이소노 마호는 사려 깊은 망각(우리 다음엔 뭘 해볼까요?)과 확인(당신은 암환자예요)을 오가며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을 밀도 높게 채운다. 아픈 몸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놀라운 일은 스스로 아픈 몸을 기록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제목처럼 우연히도 두 사람의 우정이 죽음과 질병이라는 아이러니한 토대 위에 쌓여갈 즈음 미야노의 질병이 악화했다. 둘이 적어 내려간 지적이고 신실한 편지 왕래도 정점에서 곤두박질쳤다. 육신의 암전은 해질녘 가로등이 켜지듯 암묵적으로 고요하게 진행되었다. 미야노 마키코는 죽기 직전 몸에 남은 힘을 그러모아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여러분이 보게 될 풍경이 그 인연 너머에 있는 ‘시작’으로 가득한 세계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내가 나의 마지막 풍경을 상상하면서 죽음의 꼴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형상화하거나 구체화하고 있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두 권의 충만한 책이 말하듯 죽음은 찰나가 아니며 질병은 두려움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이해했다. 이쯤에서 앞선 사주쟁이를 만난다면 새롭게 물어볼 질문이 생겼다. “죽을 때 나는 웃나요, 우나요?” 시답잖은 소리에 그가 헛기침을 웩 하면서 고개를 틀어버리겠지. 죽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나. 어처구니없는 방문을 받는 것.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어리석은 질문을 해대는 것.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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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10월 10일

긴 추석연휴에 잠시 멈추고 생노병사를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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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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