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ㅣ우리는 만나야 한다
- hpiri2
- 20시간 전
- 4분 분량
2025-12-19 안은영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사라지는 직접 경험의 가치를 조명한다. 대면 접촉, 손글씨, 감정 표현 등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안은영 작가, 책방 사이 대표
기자로 밥벌이를 했고 『여자생활백서』,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를 거쳐 강동구에 숲·생태·기후·환경 전문 독립서점 ‘책방 사이’를 운영 중이다. 지구에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변화의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무엇 때문에 지불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지인과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지인이 갑자기 생각난 듯 핸드폰을 열어 뭔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으니 궁금한 게 생겨서 챗GPT에 물어보느라 그렇단다. 그는 평소 카카오톡은 물론이고 SNS도 일체 하지 않는 소위 ‘IT 고인물’에 속했다. 그런 그가 인공지능과 열렬히 소통 중이라는 게 의아했다. 내 표정을 읽었다는 듯 그가 말했다. “어쩌겠어요, 따라가야지. 나 같은 아날로그 인간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누구와도 연결돼 있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는 세상
우리는 만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은 통계에 따른 처방전을 받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 정책이 우선시되고 있다. 10대들은 오프라인 친구 대신 헤드폰과 키보드로 연결된 세상 속에서 수많은 닉네임들과 만나, 게임을 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화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청소년의 53퍼센트가 자신이 선호하는 디지털 기술을 잃느니 영원히 후각을 잃는 편이 낫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곳은 경험이 거세된 기계화된 세상이다. 첨단장비들은 우리의 홍채와 눈의 깜박임을 점검하고 체온과 심박, 발열 데이터를 뽑아간다. 긴장할 때, 사랑할 때, 분노할 때, 평화로울 때의 신체반응은 물론이고 감각과 취향이라는 개인적 경험에서조차 우리는 내몰리고 있다. OTT와 휴대폰과 구글맵과 파파고는 우리의 경험을 편리와 바꿔 놓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친구에게 손 편지를 쓰고 시골역 대합실에서 잡지를 뒤적이며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만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는 세상에 도착해 있다.

문화비평가이자 역자학자인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어크로스)에서 직접 경험이 점차 소멸해가는 21세기의 현상을 신랄하게 풀었다. 그는 책에서 대중문화, 과학, 정치,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직접 경험이 처한 멸종 위기를 고발한다. 이를테면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는 순간에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은 직접 대면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분야보다 대면 접촉이 중요시되어 온 의료 분야에서조차 이미 상당히 진화된 로봇들이 근무 중이라는 얘기부터 펼쳐 놓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노스이스턴 대학의 로봇 루이스는 진짜 간호사보다 더 인기가 높다. 환자들의 질문을 짜증스럽게 여기지 않고,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지도 않으며, 지치는 법이 없는 데다 절대 사소한 일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업무 강도를 덜기 위해 투입돼 온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점차 인간들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런 의료 환경은 실제로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저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낡은 기술의 옹호자’라는 비난에도 대면진료를 주장하는 의학계의 목소리에 따르면 “환자의 얼굴만 봐도(얼굴을 봐야만) 많은 유의미하고 의학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체험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한자를 배울 필요성에 대해 분분한 우리나라의 형편처럼 미국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 교육의 ‘공통 핵심 기준’에 따르면 학생들은 더 이상 필기체를 배울 필요가 없다. 필기체를 쓸 수 없는 아이들은 당연히 읽을 수도 없다. 필기체로 쓰인 독립선언서와 같은 건국 문서들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아이들에게 필요할지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책은 이 내용 말미에 토론토의 한 제과·제빵 강사의 한탄을 덧붙였다. 요리를 배우는 대부분의 학생이 케이크 위에 글씨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필기체는 너무 엉망이고 알아볼 수조차 없다’면서 말이다. 생일축하 케이크인지 프러포즈 케이크인지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명확한 손 글씨는 의사소통만 돕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혜택도 준다.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의 한 신경과학자는 글을 모르는 5세 아동 그룹을 대상으로 학습스타일 비교실험을 했다. 타이핑, 덧쓰기, 손 글씨로 글자와 도형을 가르치고 훈련 전후에 MRI 스캔을 했는데, 뇌의 읽기 회로가 글자 인식에 동원된 것은 손 글씨를 이용했을 때뿐이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수공예품에 대한 단상은 제품력뿐 아니라 추억과 경험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저자는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를 이렇게 인용했다. “우리는 세상을 지각하고 경험할 뿐 아니라 분석하고 이해하는 존재다. 물건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아는 것이 그 물건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고양한다.”
감정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최근 풍자의 하나로 쓰이는 밈(meme)은 자연계에서 발견한 것을 모방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는 경향에 관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붙인 명칭이었다. 유전자(gene)라는 단어에 ‘모방한 것’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미메메(mimeme)를 결합했다. 유전물질이 반복 재생돼 전달되듯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전달되는 아이디어를 뜻하는 말이었다.
밈은 이제 Z세대 사이에서 점점 늘어나는 우울, 불안 등 반갑지 않은 감정상태를 대변하며 퍼져가는 중이다. 밈과 함께 감정을 규정하고 전파하는 도구로 이모티콘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둘은 인간 경험 중 감정이라는 측면을 화면에 옮기는 창의적인 시도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기술자들은 감정과 쾌락, 공공성에 대한 감각까지 조절하고 조직화하고 모니터링하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현대기술로도 길들여지지 않는 인간 감정의 야수성이다. 우리는 대면커뮤니케이션의 욕구를 가진 육체적 동물로서 물리적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땀을 흘리고 눈을 깜박이며 움찔거리고 미소를 짓는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러한 즉각적인 감정표현을 “무방비하게 자아를 드러내는 작은 경련”이라고 불렀다.
물성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요소다. 몸으로 직접 체득한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기계와 나눌 수 없는 동물적이고 물리적이며 인간적인 행위다. 이 경험이 멸종하지 않도록 우리는 만나야 한다.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우리 자신을 보여야 한다. 극장에 가고, 일부러 찾아서 만나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책은 단숨에 읽히고 메시지는 휘발되지 않는다. 우리 일상과 밀접한 주제들이 풍부한 사례와 함께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경험의 멸종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굳세게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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