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경제ㅣ기후 트라우마와 생태사회를 향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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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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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1 금민, 유승경
기후위기는 현실이다. 생물다양성 붕괴, 기후 난민, 식량 부족과 물 전쟁, 인류 대다수 생존 불가능이 기후 재앙의 전개 과정으로 보인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이 귀환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맞는 불안은 ‘기후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이는 감정 구조, 사고방식, 행동 패턴을 바꾸며 개인의 삶에 침투하고 있다. 기후 트라우마는 감정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정치적 상상력을 일깨운다. 생태 사회주의, 생태경제학, 탈성장론와 같은 대안 사회를 구상하고 지역 화폐, 공유주택, 태양광 도시 등 작은 실천들을 조직해야 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https://alternative.house/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유승경의 ‘화폐, 금융, 경제 이야기’ https://alternative.house/category/economy-story/
지난 기사
폭염이 반복되는 시대, 무언가 이상하다
올여름도 작년과 재작년처럼 유례없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날씨가 덥다’는 차원을 넘어, 지구에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기후위기를 ‘지적 사기’로 부른다. 이미 수많은 지구인들에게 기후위기는 더 이상 이론이나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지 않다. 현실이고, 경험된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폭염, 갑작스런 폭우, 해일, 해수면 상승 등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극단적인 기후현상들을 점점 더 자주 경험하고 있다. 2023년 파키스탄에서는 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길 정도의 홍수가 발생했고, 2022년 유럽의 가뭄은 댐과 강바닥에서 로마시대 유적을 드러냈다.
이런 현상들은 단순한 자연의 변덕이 아니라, 지구 시스템이 인간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이다. 지금처럼 아무런 변화없이 시간이 흐른다면 그 끝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기후과학자들이 실증적으로 예측하는 종착지는 다음과 같다. 생물다양성의 대규모 붕괴, 기후 난민의 급증, 식량 부족과 물 전쟁, 인류 대다수의 생존 불가능. 이것은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시작된 기후 재앙의 전개 과정이다.
‘기후 트라우마’: 오지 않은 재난에 대한 심리 충격
이처럼 불확실하고 위협적인 미래에 직면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집단적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이를 기후 트라우마(Climate Trauma)라고 부른다. 기후 트라우마는 우리가 이미 겪은 재난에서 오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 오지 않았지만 도래한다고 예상되는 파국적 미래에 대한 공포와 압박에서 발생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예측 트라우마(pre-trauma)’ 혹은 ‘미래 트라우마’라고 부르며, 이런 감정은 단순한 우려를 넘어 우리의 감정 구조, 사고방식, 행동 패턴까지 바꾸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 “이런 지구에 아이를 태어나게 해도 되는가?”라는 고민은 단순한 출산율 저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후 트라우마가 개인의 삶 결정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인류세: 인간이 지구 시스템을 바꾸는 시대
이 위기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인류세(Anthropocene)’다. 이 용어는 노벨상 수상자 폴 크뤼첸(Paul Crutzen)이 제안했으며, “이제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생태계와 지질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가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과거에 자연은 인간 바깥에 있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시스템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꿨다”고 말한다.
탄소 순환 면에서 석탄·석유·천연가스 사용으로 인한 CO₂ 농도 증가, 생물다양성 면에서 서식지 파괴와 기후 변화로 인해 제6차 대멸종 가속화, 지구의 기후 면에서 산업화 이후 평균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등, 한마디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흔드는 행위자가 되었다.

자연의 귀환: 통제할 수 없는 타자
인간은 기술을 통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오히려 자연이 통제할 수 없는 재앙적 존재로 귀환하고 있다는 신호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수천 년 전의 바이러스와 세균이 되살아나고 있다. 북극곰은 녹아내린 빙하로 인해 먹이를 찾아 북미로 이동 중이고, 기후변화로 인해 말라리아와 뎅기열 같은 열대성 전염병이 유럽과 미국에 등장하고 있다.
이런 자연은 이제 인간이 가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파괴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이 귀환하는 자연은 산업시대 이전의 조화로운 자연이 아니라, 파국을 몰고 오는 종말론적 자연이다.
기후 트라우마의 문화적 이해: E. 앤 카플란의 제안
기후 트라우마 개념을 문화적으로 이론화한 학자가 E. 앤 카플란(E. Ann Kaplan)이다. 그녀의 저서 『기후 트라우마: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미학적 상상』(2015)은 기후위기를 단지 과학적 문제로 보지 않고, 정체성, 감정, 문화 이야기 속에 스며든 위기로 분석한다.
카플란에 따르면, 기후 트라우마는 사람들의 심리 구조와 문화적 상상력을 변화시킨다. 이 변화는 두 방향으로 나뉠 수 있다. 첫째, 죄책감·좌절·무력감·무관심으로 이어지는 부정적 감정 구조이며, 둘째, 책임감·공감·연대감으로 이어지는 각성의 정서 구조이다.
그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며, 인간의 감정과 문화도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에서 원전에 대한 불안이 감정적 문화코드로 형성되었고, 이는 탈원전 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기후 트라우마 역시 이런 문화적 감정 구조의 재편을 촉발할 수 있다.
감정에서 정치로: 상상력을 조직하자
기후 트라우마가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상상력은 제도와 권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대안 사회에 대한 집단적 구상을 포함한다.
생태 사회주의는 생산과 소비를 생태적 원칙에 따라 재구성할 것을 구상한다. 생태경제학은 지속가능성을 경제 시스템의 중심에 두는 전환을 희구한다. 탈성장론은 GDP 중심의 경제성장을 넘어서 삶의 질 중심으로 경제를 재구성할 것을 바란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 구상은 모든 필수 생활 서비스를 도보 15분 거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시구조를 재편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고 공동체를 복원한다. 이것은 생태주의적 도시계획의 실천적 모델이다.
다양한 입장들, 공통된 과제들
물론 생태 전환을 향한 여러 제안들에는 차이가 있다. 생태 사회주의자들은 계획경제를 주장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이 국가 통제의 강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우리는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 다음과 같은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생태위기는 동시에 해결되어야 한다. 화석연료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를 단절시켰다(J. B. Foster). 맹목적인 GDP 성장 추구는 환경 파괴와 사회 불평등을 낳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이념을 따르느냐’보다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들: 전환도시와 지역 운동
정치적 상상력은 거창한 이론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작은 지역 운동과 생활 속 실천에서도 이미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토트네스(Totnes)에서는 주민들이 자체 화폐인 ‘토토네’를 발행해 지역 상권을 살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성미산 마을’이 생협, 공유주택,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생태적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태양광 도시로서, 공동체가 직접 에너지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들은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 시스템 전환의 씨앗이며, 다양한 생태사회 구상들이 실험되고 적용되는 현장의 출발점이 된다.
정치적 상상력의 실천: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적 상상력은 결국 현실로 이어져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 석탄발전의 단계적 중단, 재생에너지 보급) 생태적 전환과 사회경제적 전환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예: 녹색 일자리, 정의로운 전환)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 보호구역 확대, 생태회랑 구축)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다양한 생태사회 구상들은 구체적인 정책과 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념과 방법의 차이는 때로는 협력으로, 때로는 갈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후 트라우마를 넘어 진정한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정치적 상상력으로 조직된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설] 이제는 ‘녹색경제’가 아니고 ‘청색경제’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dac689_29447961546446a7915eae7ba02f61d9~mv2.jpg/v1/fill/w_980,h_714,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dac689_29447961546446a7915eae7ba02f61d9~mv2.jpg)




기후트라우마를 넘어서 정치적 상상력으로 조직된 실천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