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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경제ㅣ생태경제, 성장을 다시 설계하자

2025-07-04 금민, 유승경

"생태경제학은 성장을 전면적으로 배격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한한 양적 성장에 대한 경고이지, 모든 형태의 성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GDP를 낮추자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GDP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성장 구조가 지속가능한지를 다시 묻는 것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덜 자라는 경제’가 아니라, ‘다르게 자라는 경제’를 상상해야 한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https://alternative.house/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유승경의 ‘화폐, 금융, 경제 이야기’ https://alternative.house/category/economy-story/


성장은 정당한가


경제학은 이제까지 성장을 복지와 발전의 핵심 지표로 여기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논쟁을 벌였고, 어떤 성장 모델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 다양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예컨대, 수요를 중심에 둔 케인즈 학파나 임금 인상이 성장을 이끈다는 임금주도 성장론은 분배의 문제에 주목했지만, 이들 역시 경제성장 자체는 당연히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는 전제를 공유했다.


그러나 성장 자체가 항상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처음 던진 경제학의 흐름이 생태경제학이다. 생태경제학은 지구의 자원과 생태계가 유한하며, 그것들이 회복될 수 있는 능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관점에 따르면, 무한한 경제성장은 생태계의 붕괴와 자원의 고갈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게오르게스쿠 뢰겐과 허먼 데일리: 두 갈래 생태경제학


생태경제학의 이론적 출발점은 게오르게스쿠 뢰겐(Nicholas Georgescu-Roegen)의 엔트로피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경제 활동이란 본질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해 질서 있는 상태를 무질서한 상태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무한성장은 물리학적으로도, 수학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는 특히 신고전파 성장이론이 에너지와 자원을 무한하거나 끝없이 재활용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뢰겐은 경제가 작동하려면 필연적으로 자연 자원의 소모가 필요하며, 이 자원은 유한한 지구 생태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제자인 허먼 데일리(Herman Edward Daly)는 경제성장이 오히려 사회적, 생태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비경제적 성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상상태경제’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데일리에게 정상상태경제란 인구와 자원의 사용을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하고,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경제를 조절하며 운영하는 체계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 경제의 규모와 속도를 무한히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공정한 분배를 동시에 달성하자는 구상이었다.


반면, 뢰겐은 데일리의 정상상태경제조차 장기적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엔트로피 법칙, 즉 에너지가 점점 소모되어 더 이상 유용하게 쓸 수 없게 되는 자연 법칙에 따라, 결국 모든 경제 활동은 자원을 파괴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점에서 뢰겐은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주장했던 반면, 데일리는 현실적인 조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출간된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뢰겐의 『엔트로피와 경제』(2017, 한울)와 허먼 데일리의 『성장을 넘어서』(2016, 열린책)
국내에서 출간된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뢰겐의 『엔트로피와 경제』(2017, 한울)와 허먼 데일리의 『성장을 넘어서』(2016, 열린책)

무엇을 축소해야 하는가: 생태경제학의 핵심 질문


데일리의 생태경제학은 두 가지 전제에서 출발한다. 첫째, 경제는 생태계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며, 생태계는 인간 경제활동의 기반이자 지구라는 더 큰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경제는 결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생태적 한계가 분명한 지구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경제도 움직인다. 둘째, 지속가능한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용력을 고려해 경제의 규모 자체를 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관점에서 생태경제의 목표는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것을 줄이고 축소하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무엇을 축소해야 하는가? 단순히 GDP 성장률을 낮추는 것이 해답일까? 물론 인구 감소나 GDP 축소는 생태계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 구조는 성장과 불평등이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의 축소는 저소득층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GDP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보다 근본적인 사회구조의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문제는 기후위기라는 시급한 상황 속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구조 개혁이 과연 시간 내에 가능하냐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사실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탈성장'을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생태계 파괴로 인한 비자발적 탈성장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태적 한계를 넘는 경제성장은 결국 기후 재앙을 초래하고, 이러한 재앙은 다시 저성장을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경제학이 강조하는 ‘비경제적 성장’ 개념, 즉 효용보다 비용이 더 큰 성장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는 경고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GDP를 줄일 것인가?


생태경제학은 탈성장을 단순히 GDP의 감소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 이론에서 말하는 탈성장은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물리적 통과량, 즉 자원의 채굴, 생산, 소비, 폐기로 이어지는 물질과 에너지의 총 흐름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이 통과량의 축소가 GDP 자체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리적 통과량을 줄이면서도 GDP는 증가할 수도, 감소할 수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 GDP의 성장을 지속하려면 경제는 탈탄소화되어야 하고, 자원이 순환되는 방향으로 체질이 개선되어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혁신이 필수적이다. 오늘날 기술혁신은 생태위기 시대에 경제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가능성에만 기댈 수는 없다. 기술이 생태계 파괴를 막는 데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우리는 GDP의 성장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결국 생태적 전환은 GDP 성장에 대해 중립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의 총량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감소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생태계의 한계 안에서 인간의 경제 활동을 재조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탈동조화의 허상과 ‘좋은 성장’이라는 질문


최근 일부 선진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전환과 자원 효율성 향상 덕분에 경제성장과 탄소 배출이 분리되는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절대적 탈동조화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GDP가 증가하면서도 탄소 배출이 줄어드는 국가들은 매우 제한적이며, 이들조차도 생태발자국이 큰 해외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외부화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탈동조화가 상대적일 뿐이며, 지구 전체 차원에서는 여전히 탄소 배출과 경제성장이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조차 ‘성장 그 자체’보다는 ‘좋은 성장’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태경제학의 급진적 입장에서는 이러한 ‘좋은 성장’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본다. 생태계의 수용력 안에서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장’의 조건을 탐색하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성장 없는 번영으로 곧장 이동하기에는 현실의 저항이 크기 때문이며, 동시에 ‘좋은 성장’이 공허한 수사로 끝나지 않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성장은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성장일 것이며, 생태적 관점에서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성장일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 재생에너지 전환, 자원 순환경제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생태적 기술과 생태적 지혜: 함께 가야 할 두 길


그러나 우리는 기술만능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술혁신이 생태위기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은 현실의 긴박성을 가리는 환상일 수 있다. 기후 재앙의 시간표는 앞당겨지고 있으며, 점진적인 기술 발전만으로는 이를 따라잡기 어려운 국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혁신과 함께 생태적 지혜를 갖추는 일이다. 생태적 기술이란 재생에너지, 자원 순환, 탄소 저감 등 생태계의 한계를 고려하여 인간의 활동을 조율하는 기술적 해법을 의미한다. 반면 생태적 지혜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 자연에 공간을 양보할 줄 아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는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 가질 것인가를 성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기술과 지혜는 대립되는 선택지가 아니라, 함께 작동해야 할 두 개의 축이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생태적 전환이라는 문명의 전환점에 도달하기 어렵다.


문명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우리가 직면한 생태 위기는 단지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문명 전체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물음은 ‘경제성장이냐 탈성장이냐’라는 단순한 선택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성장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재설계이다.


생태경제학은 성장을 전면적으로 배격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한한 양적 성장에 대한 경고이지, 모든 형태의 성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GDP를 낮추자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GDP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성장 구조가 지속가능한지를 다시 묻는 것이다. 생태경제학이 말하는 탈성장이란 단순히 성장 관련 수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통과량을 줄이고, 생태계의 수용력 안에서 작동하며, 사회적 형평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경제 활동을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덜 자라는 경제’가 아니라, ‘다르게 자라는 경제’를 상상해야 한다.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은 가능하다. 그것은 단지 더디고 느린 성장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성장, 즉 생태적 가치와 사회적 정의를 포괄하는 포용적 성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성장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더 많은 소비와 생산을 지향하는 성장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공동체의 안녕과 인간의 품위를 높이는 성장, 다시 말해 생태적 전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성장의 비전이 필요하다.


성장은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생태적 지혜와 기술이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체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살아남는 번영’—은 여전히 가능하다.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성장이 아니라, 잘못된 성장의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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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07 jul

성장에대해 질문을 할 때다. 다르게 자라는 경제...성장의 방향...좋은 성장...지속가능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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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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