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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곰팡이와 나무가 함께 만드는 숲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9. 19.


창 밖에 비가 내립니다. 정원에 자라는 동백나무와 복사나무도 비를 맞고 담장 너머에 있는 은행나무, 목련, 단풍나무와 배롱나무, 벚나무도 비를 맞습니다. 비는 온 대지를 적시고 흙과 나무들은 물을 잔뜩 머금습니다. 나무와 풀,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작은 생물들은 비를 기다립니다. 사람들 중에도 비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버섯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비가 내리면 옷과 신발, 카메라를 챙기고 다음날을 기다립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사람들은 피어나기 시작하는 버섯들을 만나러 숲으로 갑니다.


울산에는 생명의숲 회원들로 구성된 야생버섯탐구모임이 있습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버섯은 균계(菌界; Fungi)에 속하는 생물입니다. 술이나 빵을 만들 때 필요한 효모,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버섯, 우리의 음식을 훔쳐 먹는 곰팡이와 같은 친구들이 이 균계에 속합니다. 곰팡이는 식물과 달리 광합성을 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양분을 생산할 수 없어 다른 생물체나 유기물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곰팡이는 영양분을 얻는 방식에 따라 부생균, 기생균, 공생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생균(腐生菌; saprophite)은 낙엽, 나뭇가지, 죽은 나무의 줄기나 뿌리처럼 죽은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양분과 에너지를 얻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표고, 느타리, 양송이와 같은 버섯들이 부생균에 속합니다. 기생균(寄生菌; paratisism)은 곤충이나 동물, 나무와 같은 살아있는 숙주에 기생해서 살아갑니다. 동충하초와 같은 기생균은 숙주의 영양분을 흡수할 뿐 아니라 숙주의 행동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공생균(共生菌; symbiosis)은 숙주와 상호 이익을 주고받으며 생활합니다. 송이버섯처럼 나무와 힘을 합쳐 살아가는 공생균들은 나무가 광합성으로 만들어 낸 포도당을 얻는 대신에 질소(N)나 인(P)과 같은 양분을 나무에 공급함으로써 나무의 생장을 돕습니다. 버섯은 숲의 구석진 곳에서 살아있는 식물을 돕거나, 죽은 생물을 분해하며 숲 속 생태계의 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버섯은 왜 비가 온 뒤에 피어나는 걸까요? 우리가 만나는 버섯은 곰팡이의 자실체(子實體; fruit body)입니다. 자실체는 식물의 열매와 비슷한 기관입니다. 곰팡이는 다음 세대의 유전자를 멀리 퍼트리기 위해 바람에 잘 날아가거나 물에 잘 떠내려가는 포자를 만듭니다. 포자는 식물의 씨앗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소중한 포자를 만들고 보관하고 멀리 퍼뜨리기 위한 생식 기관이 바로 버섯입니다. 버섯을 만들고 피워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일부 버섯은 굉장히 빠르게 자라는데 물은 버섯 세포의 빠른 팽창을 돕고 세포벽을 통해 물질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합니다. 비가 내린 후의 높은 습도와 적절한 온도 조건이 버섯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 온 뒤에야 아름다운 버섯들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버섯은 열매, 포자는 씨앗에 해당하는 구조라면, 곰팡이의 입장에서 줄기나 뿌리에 해당하는 구조는 어디일까요? 숲의 바닥에 깔려 있는 낙엽을 들추었을 때 희고 가는 실과 같은 것들이 낙엽에 복잡하게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곰팡이의 핵심구조인 균사(菌絲; hyphae)입니다. 포자는 환경이 알맞은 장소에 도달하면 균사를 뻗기 시작합니다. 부생균의 포자라면 낙엽과 나뭇가지 등 죽은 동식물의 사체를 향해 균사를 뻗을 것이고, 기생균이나 공생균의 포자라면 살아있는 숙주의 몸속으로 균사를 뻗을 겁니다. 곰팡이는 균사를 통해 필요한 양분을 얻고, 그 양분으로 더 멀리 균사를 뻗습니다. 균사가 닿지 않을만큼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하거나 다음 세대의 유전자를 남겨야 할 때, 혹은 휴면에 들어가야 할 때 포자를 만들기 위해 자실체인 버섯을 틔워 내는 것이 일반적인 곰팡이의 삶입니다. 


숲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표면에 아름다운 균사체가 자랐습니다.

곰팡이가 없는 숲이 있을까요? 숲을 만드는 데 곰팡이는 왜 중요할까요? 숲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숲을 이루는 수많은 나무들은 모두 곰팡이와 함께 살아갑니다. 곰팡이는 나무의 잎과 가지, 줄기, 뿌리 등 모든 곳에서 나무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곰팡이들이 나무와 복잡하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곳은 뿌리의 표면입니다. 나무의 뿌리 표면에서 살아가는 곰팡이는 나무와 관계 맺는 형태에 따라 외생균근(外生菌根; ectomycorrhiza)과 내생균근(內生菌根; endomycorrhiza)으로 구분합니다. 외생균근은 주로 나무의 뿌리에서 관찰되는 공생의 형태입니다. 곰팡이의 균사가 나무 뿌리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외생이라 표현합니다. 반대로 내생균근은 곰팡이의 균사가 기주식물의 뿌리 세포 안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내생이라 표현합니다. 곰팡이와 기주식물은 균사를 통해 서로 필요한 물질들을 활발하게 주고받습니다. 식물은 잎에서 광합성읕 통해 만들어진 달콤한 포도당을 곰팡이에게 전해 줍니다. 곰팡이의 균사는 식물의 뿌리털보다 훨씬 가늘고 멀리까지 뻗을 수 있기 때문에 토양에서 식물의 뿌리만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상태의 물과 무기양분까지 흡수해 식물에게 전해 줍니다.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식물의 뿌리 표면은 곰팡이로 뒤덮여 있는데, 이로 인해 식물은 많은 혜택을 얻게 됩니다. 더위와 추위, 과습과 건조, 토양 산성도의 극단적인 변화, 토양으로부터 뿌리로 감염되는 병원균 등 곰팡이는 외부의 많은 요인들로부터 식물의 뿌리를 보호합니다. 더불어 물과 무기양분의 흡수까지 도와줍니다. 식물의 뿌리 입장에서는 곰팡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뿌리의 표면에서 공생하는 곰팡이들이 있어야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큰 숲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커다란 숲은 곰팡이와 나무의 공생관계 위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거대한 숲은 곰팡이와 나무가 함께 만듭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사람의 뱃속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뱃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은 우리의 소화와 영양소 흡수를 돕고, 병원균을 막는 등 면역체계에 깊이 관여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만이나 당뇨와 같은 대사 조절 기능에도 관여하며, 심지어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함으로써 우리의 정신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인간과 미생물과의 관계는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아주 천천히 다듬어져 왔습니다. 나무와 곰팡이와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사람도 나무도 각자 하나의 개체임과 동시에 거대한 서식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인간의 삶을 떠받치듯 땅속의 곰팡이는 초록의 숲을 떠받칩니다. 


비가 그친 다음 날, 튼튼한 신발을 신고 가까운 숲으로 나가보세요. 축축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의 바닥을 살펴보면 작은 버섯을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버섯의 아래로 연결된 균사체, 그 균사체와 이어진 식물의 뿌리, 뿌리에서 숲의 꼭대기에 있는 잎사귀까지의 연결을 느껴보세요. 작은 버섯이 여러분을 경이로운 숲의 입구로 안내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