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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칼럼 다짜고짜 기후 | 치킨과 한우 사이

최종 수정일: 9월 22일

매년 한국에서 닭 10억 마리 이상이 도축된다. 닭고기은 1칼로리에 사료 1칼로리, 소는 사료 6칼로리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닭은 ‘마리’ 단위로 팔아서 다른 나라보다 30% 일찍 도축한다. 소는 ‘마블링’을 좋아해서 사육 기간이 다른 나라보다 몇 개월씩 더 길다. 닭은 32일만에, 소는 950일만에 고기가 된다. 소의 소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배출되고, 사료를 수입해야 하며 더 오래 먹여야 하니, 닭보다 기후변화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2025-08-01 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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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여러분, B와 D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C가 있습니다. 이처럼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치킨(Chicken)이 있습니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을 떠도는 격언입니다. 치킨과 한우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꽤나 다릅니다.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치킨은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는 고기입니다. 반면 한우는 큰 마음을 먹어야 만날 수 있습니다.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우리는 한우를 냅니다. 저는 한우를 만나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치킨과 한우 사이에는 얼마나 넓은 강이 흐르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닭은 매년 10억 마리 이상 도축됩니다


닭은 놀라운 생물입니다.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조류의 개체수 중 70%는 닭입니다. 매년 500억 마리 이상의 닭이 도축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닭이 500억 마리 이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 닭의 수는 약 265억 마리 정도입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 길러지는 닭(肉鷄; Broiler)들은 6주 정도면 도축 가능한 크기로 자랍니다. 빠르게 기르고 도축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현재 살아있는 닭의 수보다 그 해 도축된 닭의 수가 더 많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만 한해 10억 마리 이상의 닭이 도축됩니다.


우리나라의 보통 규모 양계농가에서 한번에 키우는 닭이 평균적으로 5~6만 마리입니다. 일 년에 7~8회 정도 기르고 도축하기를 반복합니다. 양계농가 한 곳에서 일 년에 40만 마리 정도의 닭을 기르는 셈입니다.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 명이 조금 넘고 도축되는 닭이 10억 마리 정도니까 한 사람이 일 년에 스무 마리의 닭을 먹는 셈입니다. 우리는 닭을 사랑합니다. 치킨을 칭송하며 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지나치지 않습니다.


탐조를 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강변을 걷다 닭을 만났습니다. 닭도 새니까 탐조 성공입니다. 사진_김우성
탐조를 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강변을 걷다 닭을 만났습니다. 닭도 새니까 탐조 성공입니다. 사진_김우성

닭고기와 소고기의 생산 과정에서 효율 차이는 왜?


닭고기의 생산 과정은 소고기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더 작은 땅과 적은 물이 필요하고, 같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사료의 양도 훨씬 적습니다. 닭고기 1칼로리를 얻기 위해서는 2칼로리의 사료가 필요합니다. 돼지고기 1칼로리를 위해서는 3칼로리의 사료가 필요하고, 소고기 1칼로리를 위해서는 6칼로리의 사료가 필요합니다. 닭고기와 소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효율의 차이는 왜 발생할까요?


동물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아주 어린 시기의 동물들은 대체로 천천히 자랍니다. 소화와 흡수, 성장을 위한 준비가 온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자라 소화 기관이 튼튼해지면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게 되고, 이 시기부터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청소년기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몸이 커지고 빠르게 체중이 늘어납니다.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된 이후에는 성장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주어진 유전자와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최대로 자랄 수 있는 크기는 정해져 있습니다. 최대 크기에 도달하면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가끔 배가 나오는 아저씨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동물의 성장 과정은 이러한 느낌입니다. 큰 틀에서는 식물도 비슷합니다. 일러스트_김우성
동물의 성장 과정은 이러한 느낌입니다. 큰 틀에서는 식물도 비슷합니다. 일러스트_김우성

왜, 완전히 자라지 않은 닭을 도축할까?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닭고기는 완전히 자란 어른 닭고기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청소년기의 닭고기입니다. 도축되는 시점의 닭은 큰 벼슬이 달리거나 꼬끼오! 하고 울지 않습니다. 외모 또한 병아리와 닭의 중간 정도입니다. 왜 완전히 자라지 않은 닭을 도축할까요?


인간은 오래 자연을 이용해 왔습니다. 우리는 경험과 연구를 통해 최적의 도축 시점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도축 시점은 동물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기, 성장곡선의 기울기가 최대에 이르는 청소년기입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하면 같은 양의 사료를 먹여도 체중이 적게 늘어납니다. 축산농가의 입장에서 효율의 감소는 손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료와 시간, 전체적인 비용을 고려했을 때 청소년기의 닭을 도축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우리가 먹는 치킨은 최적의 시점에 도축될까요? 사실 우리나라의 닭은 최적의 시점보다 훨씬 빨리 도축됩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닭이 도축되는 시기의 체중은 1.5kg 정도라고 합니다. 중국 2.6kg, 미국 2.4kg, 브라질 2.2kg에 비해 30%정도 작은 닭이 출하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닭이 길러지는 시간 또한 32일 전후로 중국 55일, 미국 46일, 브라질 45일에 비해 훨씬 짧습니다.


왜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어린 닭을 먹게 될까요?


왜 우리는 더 어린 닭을 먹게 될까요? 도축되는 닭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구석으로 미뤄 두고 조금 더 건조하게 설명해 보자면 최적의 도축 시점은 단위시간당 생산되는 고기의 양이 최대값에 도달하는 순간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생산되는 닭고기의 무게, 다시 말해 닭고기를 생산하는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마리의 개념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닭고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한 근 단위로 거래하지 않습니다. 한 마리 단위로 거래합니다. 프라이드 치킨도 중량이 아닌 마리 단위로 주문합니다. 한 마리의 닭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우리나라에서 닭을 도축하는 시점입니다. 이 정도면 한 마리라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조금 더 작아도 한 마리의 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다 보니 다른 나라보다 훨씬 작은 닭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수요처인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사정, 한 그릇에 들어가는 삼계탕용 닭에 대한 수요 등등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닭은 최적의 시점보다 훨씬 빨리 도축됩니다. 


반대로 한우는 최적의 시점보다 훨씬 늦게 도축됩니다


국내 한우농가의 평균 사육기간은 31.6개월 정도입니다. 미국과 호주는 18~24개월, 유럽은 20~30개월로 우리보다 빨리 도축합니다. 왜 닭은 다른나라보다 빨리 도축하면서, 한우는 다른나라보다 늦게 도축할까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마블링이라고 부르는 근육 내 지방의 비율에 따라 소고기의 등급을 나눕니다. 지방이 많은 순서대로 1++, 1+, 1, 2, 3등급을 받습니다.


1++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살을 찌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른 소년이 나이를 먹고 배 나온 아저씨가 되는 것처럼 한우도 살을 찌우기 위해서는 오래 살고 많이 먹어야 합니다. 한우는 청소년기에 도축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 이후까지 곡물사료를 먹이면서 꾸준히 살을 찌워야 투뿔(1++) 한우가 될 수 있습니다. 한우는 투뿔(1++)이냐 원뿔(1+)이냐, 아니면 그 이하 등급이냐에 따라 납품 가격이 크게 달라집니다. 한우농가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걸리고 사료값이 더 들더라도 살찐 투뿔(1++) 한우가 될 때까지 길러야 합니다.


울주군 소호마을에서 만난 소 입니다. 우공, 죽어서 좋은데 가시게. 사진_김우성
울주군 소호마을에서 만난 소 입니다. 우공, 죽어서 좋은데 가시게. 사진_김우성

소가 닭보다 기후변화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이유


한우가 수입산 소고기보다 비싼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소고기 값이 저렴한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에서는 넓은 땅에 소를 방목하거나, 축산 농가가 사료를 함께 생산하거나, 자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사료를 먹임으로써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방목할 땅도 없고, 사료 작물을 기를 땅도 없습니다. 비싼 수입 사료를 더 오래 먹여야 하니 생산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료값을 비롯한 직접 비용 이외에도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환경 비용도 발생합니다. 반추동물인 소의 위장 안에서는 미생물이 섬유질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합니다.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로 알려진 메탄가스는 소의 사육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더 많이 발생합니다. 950일만에 생산되는 소고기는 32일만에 생산되는 닭고기보다 생산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기후변화에도 더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네가 닭뼈를 보았을때 먹은 치킨이 양념인지 후라이드인지 모르게 하라." 저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사진_김우성
“네가 닭뼈를 보았을때 먹은 치킨이 양념인지 후라이드인지 모르게 하라." 저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사진_김우성

“헉헉! 치맥, 치맥이 필요해. 허억허억!”


폭염 속의 하루 일정을 마치고 여름 밤의 오르막길을 걸어 집으로 향합니다. 이미 온 몸은 땀으로 세 번쯤 젖었습니다.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한 셔츠는 아침과는 다른 옷이 되었습니다. 종일 달아오른 아파트의 수도관에서는 미지근한 물이 나옵니다. 종일 쌓인 소금기와 기름기가 샤워기 물줄기에 녹아내리고 달아올랐던 몸과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샤워하는 동안 환기를 마친 거실의 에어컨을 켭니다.


소파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치킨을 주문합니다. 도착한 치킨을 커다란 접시에 옮겨 담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냅니다. 비어 있던 위장에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과 알코올이 들어갑니다. 수양을 통해 열반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치킨을 통해 행복에 도달했습니다. 오늘은 채식에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한우가 아닌 치킨을 먹었으니 조금 덜 나쁜 사람인 걸까요? 치느님께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라는 문장의 패러디입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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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8월 04일

고깃값이 비싼 가축일수록 단위 탄소배출량이 크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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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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