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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ㅣ탈인간중심적 존엄 개념의 가능성

 

최정호 교수는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며, 비인간 자연물에 대한 존엄 개념을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희정 기자 2024-12-06


'자연을 위한 법적 담론' 학술 대회에 참가한 최정호 교수
'자연을 위한 법적 담론' 학술 대회에 참가한 최정호 교수

자연의 본래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최정호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사업단 연구교수는 자연을 위한 법적 담론 학술대회에서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며, 비인간 자연물에 대한 존엄 개념을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 활동과 사고방식은 언제나 비인간 존재와 결합되어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가 직면한 환경위기와 같은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본래적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비인간 존재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 법학과 윤리 체계를 넘어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탈인간 중심적 접근


비인간 자연물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논의는 기존 법학 체계에서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자연의 권리론에서 주로 사용되는 의사설과 이익설은 비인간 존재를 법적 주체로 인정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의사설은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의지와 자율성을 가진 주체여야 한다는 접근이고, 이익설은 권리의 본질을 주체가 누리는 이익이나 혜택에서 찾는 관점이다. 최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존엄 개념을 자연물에까지 확장하는 새로운 법적, 철학적 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리 보유자의 범위를 자연물까지 포함하도록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120조의 의미


최 교수는 국제적 사례로 스위스 연방헌법 제120조 제2항(연방은 동물, 식물 및 다른 유기체의 배아형질 및 유전형질의 사용에 관한 법률을 정한다. 이를 통해 연방은 모든 피조물의 존엄과 인간, 동물, 환경의 안전을 고려하고 동식물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한다)을 언급하며, 이 조항이 비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시도의 선례라고 평가했다. 해당 조항은 유전공학 남용을 방지하고 동식물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최 교수는 스위스 사례는 비인간 존재의 존엄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시도지만, 존엄 개념이 형량의 대상으로만 취급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접근이 인간 존엄성과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동물보호법에서의 비인간 존엄 개념


최정호 교수는 한국의 동물보호법에서도 동물 생명의 존엄성이 언급되었음을 강조하며, 이를 발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법 제23조에 의하면, 동물실험은 인류의 복지 증진과 동물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해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최 교수는 동물 실험에 국한된 존엄 개념이 아니라 동물과 자연물 전반의 권리로 확대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법이었던 제3조 동물 보호의 기본 원칙에서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함에 있어서는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그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존엄 개념으로 재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자연물이 상호 존중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관계를 재정립하는 현대의 철학적 관점


최 교수는 탈인간 중심적 존엄 개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현대 철학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스트휴머니즘(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철학적 흐름), 신유물론(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를 물질적 상호 작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개념), 객체지향 존재론(모든 존재가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지닌 객체로서 동등하다는 철학적 관점 제시) 등 인간과 비인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철학적 관점을 언급하며, 이들 철학은 비인간 존재도 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동적 역할을 한다는 점으로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은 비인간 존재를 법적 주체로 인정하고, 이들의 존엄성을 논의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비인간 자연물의 존엄 확장을 위한 법적 구체화


비인간 자연물의 존엄성을 법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입법과 해석이 필요하다. 동물보호법과 같은 기존 법규에서 존엄 개념을 도입해, 단순한 보호를 넘어 권리로 인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 교수는 존엄 개념을 법적 정당화의 기준으로 삼아 기존 규정들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존엄 개념은 보호를 넘어 권리의 기초로 작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통해 비인간 존재와의 새로운 법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존엄 개념의 철학적 전환과 법적 확장


최 교수는 존엄 개념의 철학적 전환도 논의의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존엄 개념을 단순히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정의하기보다는, 비인간 존재가 인간과 맺는 관계 속에서 존엄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관계 중심의 접근이 법학적 논의에 적용될 때, 비인간 자연물의 존엄성을 법적으로 정당화할 가능성을 말해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인간 존재의 존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적 실효성과 정합성을 확보하는 한편,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학문적 논의도 지속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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