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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중단된 농업교류, '한반도 토종종자은행' 설립으로

2025-05-23 최민욱 기자

지구 온난화로 인한 극심한 기온 변화와 예측 불가능한 기상 이변은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 농업 시스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유례 없는 폭염과 가뭄, 기록적인 집중호우와 강력한 태풍은 남북한 모두의 농작물 생육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와 취약한 농업 기반 시설에 놓인 북한에게 기후변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이 농업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상호 협력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교류를 넘어선다. 한반도 주민들의 기본적인 먹거리 주권을 확보하고 평화의 기반을 다지는 핵심 과제다. 기후변화에 잘 견디는 농작물 품종을 함께 개발하고, 환경 친화적인 선진 농업 기술을 교류하며, 농업 재해 예방 시스템을 공동으로 구축하는 남북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협력은 한반도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 직격탄 맞은 북의 농업, 식량 부족 심화


북의 농업 환경은 농업 생산에 불리한 자연 조건을 갖고 있다. 북은 냉대 기후와 온대 기후의 경계에 위치해있어 자연재해가 잦고 농작물의 생육 기간이 짧다. 이러한 특성은 북한 농업의 만성적인 불안 요인이다. 북한의 농업 기반시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심각하게 노후화되었으며, 비료와 농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무분별한 산림 벌채로 인한 토지 유실까지 더해져 북한 농업의 어려움이 극심해졌다. 최근 수십 년간 한반도의 기온 상승폭은 지구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다. 북한 지역의 기온 상승은 더욱 두드러진다. 2021년 유엔에 제출한 북한의 '자발적 국가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0년 사이 북한 전역에서 홍수, 태풍,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매우 빈번하게 발생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는 거의 매년 하나 이상의 심각한 자연재해를 겪었다. 2016년에는 함경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10만 명당 522.8명의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하는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다.

북한의 기후변화 관련 주요 변수를 살펴보면, 과거 30년 평년 대비 폭염과 열대야 일수는 증가했지만 한파 일수는 2.7일 감소했다. 이는 북한에서의 온난화 경향성을 명확히 보여 준다. 이러한 극한 기후 현상들은 북한의 주식 작물인 벼와 옥수수 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는 가뭄은 파종과 작물의 정상적인 생육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예기치 않은 홍수는 농경지를 침수시키거나 토양을 유실시킨다. 지속적인 고온 현상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병해충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있다. 갑작스러운 냉해는 작물의 등숙을 심각하게 방해하여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을 국제사회에 경고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북한의 식량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6년 기준 5870만 8734톤으로 남한의 약 9.72%에 해당하며 세계 53위 수준이다. 에너지 부문, 특히 석탄 연료 연소로 인한 배출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농업 및 폐기물 부문에서의 배출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의 교류와 한계, 미래 협력을 위한 교훈


과거 남북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농업 분야에서의 협력 사업을 추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측은 북측에 대해 비료, 농기계, 종자 등 필수적인 농자재를 지원했다. 선진 농업 기술 교류 및 병해충 공동 방제 사업 등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2005년 8월 개최된 제1차 남북농업협력위원회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토지 및 생태환경 보호를 위한 양묘장을 조성하고 산림병해충 방제에 협력하기로 합의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했다. 2007년 10·4선언 이후에는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분야의 협력 사업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분과위원회가 가동되는 등 협력의 틀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간의 농업협력은 대부분 인도적 지원의 성격이 강했다. 남북 관계의 정치·군사적 상황 변화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명확하고 공동된 목표를 설정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협력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2년 '6.13조치'를 통해 기존의 집단영농체제에서 벗어나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하려 했다. 2019년에는 '농업발전 5대 요소'로서 종자혁명, 과학기술 도입, 농지 확대, 증산 영농, 그리고 정책적 지도 강화를 제시하며 농업의 과학화와 현대화를 국가적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우수 품종 개발과 새로운 재배 기술 개선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높아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2021년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는 농촌발전전략을 별도 의정으로 상정하고 농업 생산력 증진과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 개선을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미래 식량 안보의 핵심, '종자' 협력에서 희망을 찾다

경기도(당시 도지사 이재명)는  도내 곳곳의 토종종자를 모은 '토종종자은행'을 설립하고 2019년 11월 28일 운영을 시작했다. 2만여 종자를 보관할 수 있는 씨앗보관실은 전국 최대 규모이고 토종종자은행은 국내 최초다. 사진 경기도
경기도(당시 도지사 이재명)는 도내 곳곳의 토종종자를 모은 '토종종자은행'을 설립하고 2019년 11월 28일 운영을 시작했다. 2만여 종자를 보관할 수 있는 씨앗보관실은 전국 최대 규모이고 토종종자은행은 국내 최초다. 사진 경기도

'종자'의 공동 개발과 보존은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남북 협력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시급한 분야이다. 종자는 모든 농업 생산의 시작점이자 한 국가의 식량 주권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 작물의 재배 환경이 예측 불가능하게 급격히 변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 조건에 잘 적응하고 각종 병해충에 강하며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우수 품종의 개발과 보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다행히 남북은 각기 다른 독특한 기후 조건과 오랜 농경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토종 종자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북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외부 신품종의 유입이 적었기 때문에 고유한 유전자원을 다수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북이 공동으로 각 지역에 산재한 토종 종자를 수집, 분류하고 그 유전적 특성을 정밀하게 평가하는 협력 사업이 필요하다. 유전자 정보를 상호 교환하고 이를 활용하여 기후변화에 잘 견디는 새로운 우수 품종을 공동으로 육종하는 협력은 한반도 식량 안보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건조한 기후에 강한 북한 지역의 밭작물 토종 품종과 특정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이 높은 남한 지역의 벼 품종을 교배하여 복합적인 환경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2년 1월 31일 '종자혁명'을 더 강력히 추진하자고 말했다. 종자혁명은 농업 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는 북한 농업부문에서 올해 주력하고 있는 사업이다. 신문은 "나라의 농업생산 구조를 바꾸고 재해성 이상기후의 영향을 극복하자고 해도 종자문제 해결을 근본열쇠로 틀어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진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2년 1월 31일 '종자혁명'을 더 강력히 추진하자고 말했다. 종자혁명은 농업 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는 북한 농업부문에서 올해 주력하고 있는 사업이다. 신문은 "나라의 농업생산 구조를 바꾸고 재해성 이상기후의 영향을 극복하자고 해도 종자문제 해결을 근본열쇠로 틀어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진 평양 노동신문=뉴스1

남북 공동으로 '한반도 토종 종자 은행'을 설립하여 귀중한 유전자원을 외부 유출 없이 안전하게 보존하고 이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종자를 보관하는 것을 넘어선다.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심각한 식량 위기와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한반도 차원의 핵심 전략적 자산을 확보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국제기구나 관련 연구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선진적인 종자 보존 기술과 첨단 육종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남북의 농업 연구자들의 상호 교류와 공동 연구를 활성화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한반도 농업, 구체적인 협력으로 길을 열다


종자 분야의 협력 외에도 남북이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협력 사업은 다양하다.

환경 친화적인 농업 기술의 공동 개발 및 보급이 필수적이다. 화학 비료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을 줄이고, 유기농법, 윤작, 혼작 등 전통적이면서도 환경 친화적인 농업 기술을 남북이 함께 연구해야 한다. 각 지역의 특성과 조건에 맞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 북한의 풍부한 유기물 자원을 활용한 양질의 퇴비 생산 기술을 남측과 공유하고, 남측의 선진적인 병해충 친환경 종합관리 기술을 북측에 적극적으로 전수하는 등의 구체적인 협력이 가능하다.

농업용수 관리 시스템의 현대화와 공유하천의 공동 이용이 시급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빈번해지는 가뭄과 홍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안정적인 농업용수 확보가 농업 생산의 성패를 좌우한다. 남북은 주요 공유하천인 임진강, 북한강 등의 수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상설 협의체를 시급히 구성해야 한다. 북한의 노후화된 관개시설을 현대화하고, 물 절약형 첨단 농업 기술을 도입하며, 가뭄에 대비하기 위한 중소 규모의 저수지 및 양수 시설을 확충하는 데 남측의 기술과 자본이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 기상 정보의 실시간 교환 및 농업 재해 예방 시스템의 공동 구축이 필요하다. 정확하고 신속한 기상 정보는 과학적인 농업 생산 계획 수립과 농업 재해 예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북은 각 지역의 기상 관측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한반도 특성에 맞는 정밀한 기후변화 예측 모델을 공동으로 개발하여 선제적인 농업 재해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태풍, 홍수, 가뭄, 냉해 등 심각한 농업 재해를 유발하는 극한 기상 현상 발생 시 공동으로 대응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긴밀한 협력 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북한 농촌 지역의 종합적인 개발 및 농업 인프라 개선을 위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 농업의 전반적인 생산성을 높이고 농민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낙후된 농촌 지역의 종합적인 개발 계획 수립과 체계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다. 남측은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경지 정리, 농로 확충, 현대적인 농기계 보급, 농산물 저장 및 가공 시설 현대화 등 북한 농업 인프라 개선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밥상에서 움트는 평화, 기후위기 극복의 한반도 공동체


남북 농업 협력은 단순한 경제 교류를 넘어선다. 한반도 주민의 식량 안보를 함께 지키고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는 인도주의적 협력이자 평화 구축의 핵심이다. 척박한 땅을 함께 일구고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경험을 통해 남북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굳건한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이 엄중한 정치·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남북 농업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에는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파괴적인 위협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는다. 한반도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남북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달성하기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남북은 농업 분야에서만큼은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인도주의적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멈추지 말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시범 사업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인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협력의 범위와 수준을 점차 확대해 나가는 실용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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